‘기분 좋은 피로’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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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피로’의 의미
  • 정일규 한남대학교 스포츠과학과 교수
  • 승인 2019.07.1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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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규 한남대학교 스포츠과학과 교수

사람에게는 쉼이 필요하다. 하지만 철학적 의미에서 우리 인간에게 진정한 쉼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온갖 욕심과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피로사회’ ‘소진사회’라고 한다. 저마다 입버릇처럼 ‘쉬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도 정작 쉼이 없는 생활을 이어나간다. 

때로는 나를 촘촘히 옭아매고 있는 것 같은 삶의 그물망을 잠시 잊게 해주고 쉼을 주는 것들이 있다. 아마 여행, 음악듣기, 숲속 길 걷기, 찻집에서의 한 잔 커피를 곁들인 좋은 사람과의 대화 같은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어느 시간의 한계 내에서만 ‘쉼’의 의미를 갖는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머무른다면 그것은 진정한 쉼이 되지 못하고, 결국은 더 큰 삶의 짐으로 지워지게 될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한 한계 내에서라도 쉼의 목록을 갖고 있는 것은 중요하다. 쉼이란 단순히 직업이나 일에서 벗어난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참다운 쉼은 삶에 리듬과 생기를 불어넣고 고갈된 내적 에너지를 회복시킨다. 고든 맥도널드는 ‘하나님은 일과 쉼의 리듬을 자신의 창조세계에 심어놓으셨으며 그 리듬이 깨지면서 내면세계의 질서가 무너진다’라고 하였다. 결국 일과 쉼의 균형, 소위 워라밸(work and leisure balance)이 우리의 정신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쉼이 잘못 이해될 때 그 균형은 깨지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일과 쉼을 대립적 관계로만 이해하고 ‘스트레스해소’라는 깃발 아래에 모여 언뜻 다르게 보이지만 결국은 똑같은 일상을 내달린다. 쉼을 잠들지 않는 휘황찬란한 밤의 문화에서만 찾으려고 하지만, 피로는 해소되지 않고 악순환에 들어선다.

그러므로 건강한 삶의 리듬 안에서 제대로 된 쉼을 찾아보자. 우리가 쉬어야 할 필요를 느낄 때는 몸과 마음이 지칠 때이다. 그런데 지친 심신을 무조건 안락과 나태의 손에 맡기면 더 무겁게 짓누르는 피로의 포로가 되고 삶은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기분 좋은 피로’의 의미를 깨닫는다면 좋겠다. 예를 들어 좋은 이들과 어울려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린 후 샤워를 하면서 느끼는 피로를 연상해보자. 이는 ‘쉼’을 앞두고 ‘쉼’을 기대하는 가운데 느끼는 피로이다. 그리고 그것은 육체가 피로라는 현상을 통해 우리 마음에 주는 희소식이다. 즉, 이러한 종류의 피로는 더 큰 에너지로 충전될 것이라는 회복의 메시지를 우리 마음에 전달한다.

이 기분 좋은 피로를 생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몸이 고갈된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미세하게 균열이 된 조직을 보수, 회복하는 가운데 마음은 ‘기분 좋은 피로’를 맛본다. 그런데 운동으로부터의 회복은 단순한 원상복구를 의미하지 않는다. 원상으로의 회복을 넘어서서 ‘성장’을 의미한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인체는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를 경험한다. 쉽게 확인되는 변화는 심장이 더 빨리 펌핑하고, 기관지가 확장하고, 횡격막은 더 강하고 빠르게 수축하며, 근육혈관과 피부혈관이 확장하고, 땀샘이 열리고, 뇌혈류량이 증가한다. 그러나 현미경수준에서 발견되는 세포단위의 변화는 더욱 극적으로 일어난다.

이러한 변화는 신경과 호르몬이 주도한다. 거의 모든 신경과 거의 모든 호르몬이 이 천지개벽에 관여한다. 중추신경과 말초신경, 운동신경, 감각신경, 자율신경.., 아드레날린, 코티졸, 부신피질자극호르몬, 항이뇨호르몬, 성장호르몬... 그리고 엔돌핀. 이 변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장’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성장은 운동이 끝난 뒤 ‘쉼’에 들어가면서 이루어진다. 운동이 끝나고 쉼을 기대하는 그 시점에서 ‘기분 좋은 피로’가 찾아온다. 이때 우리 뇌의 뇌하수체에서 흘러나오는 ‘엔돌핀’이라는 친숙한 이름을 기억해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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