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에 찢기고 화재위험까지…빛바랜 귀중한 유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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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에 찢기고 화재위험까지…빛바랜 귀중한 유물들
  • 임요준기자
  • 승인 2019.07.25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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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 지정 안내면 가산박물관
고려 불경 ‘대반야바라밀다경’과
조선 첫 옥천서 발간한 유생 교과서
‘상설고문진보대전’ 등 고서만 1만권

설립자, 수장고 절실하나 경제적 부담

郡 “사립박물관은 개인이 알아서 할 일”

가산박물관 박희구 관장이 ‘대반야바라밀다경’을 펼쳐 보이며 소개하고 있다.

“이깟 문자, 주상(임금) 죽고 나면 시체와 함께 묻어버리면 그만이지”

영화 ‘나랏말싸미’가 개봉하면서 한글 창제과정의 숨은 이야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문자와 지식을 양반이라는 권력으로 독점했던 시대. 모든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세종과 신미대사가 만나 백성을 위해 뜻을 모아 나라의 글자를 만들었던 숨겨진 이야기들. 그 신미대사가 쓴 것으로 추측된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12권이 옥천군 안내면 가산박물관(관장 박희구)에 있다. 세종이 쓴 동명의 월인천강지곡과는 다르다. 세종의 월인천강지곡은 소헌왕후 심씨가 죽자 석가모니 일대기를 시의 형식으로 읊어 만든 책이다. 보물 제398호로 상권은 현재 대한교과서(주)에 소장돼 있다. 가산박물관에는 신미대사의 월인천강지곡이 소장돼 있다. 

박희구 관장은 “제대로 된 처방약도 없는 시대에 질병으로 고통 받으며 죽어가는 백성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불심으로 고치려 한 애민(愛民)이 담긴 글들”이라며 “당시 한글연구에 중요한 자료”라고 소개했다.

이곳 박물관에는 월인천강지곡과 같은 역사적 학문적 가치가 높은 귀중한 고서들이 수두룩하다. 유생들의 교과서 ‘상설고문진보대전’도 그중 하나다. 상설고문진보대전은 송(宋)나라 황견(黃堅)이 엮은 시문선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말 전녹생(田祿生)이 원(元)나라로부터 가지고 와 원본에 산증(刪增)하여 합포(현 경남 마산)에서 간행하였고‚ 그 후에 관성(현 옥천)에서 다시 간행하였다. 조선시대에는 1420년(세종 2) ‘선본대자제유전해고문진보(善本大字諸儒箋解古文眞寶)’가 충청도 관찰사 강회중의 명을 받아 옥천군수 이호가 목판본으로 간행했다. 그 책이 이곳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뿐 아니다. 이곳 박물관의 소중한 유물 ‘대반야바라밀다경’은 ‘무구장광다라니경’에 이어 고려 불교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박 관장은 소중한 문화유산인 상설고문진보대전과 대반야바라밀다경을 군민들과 공유하고자 지난 6월 문화재 지정 신청을 했다.

문제는 보존이다. 이곳 박물관에는 고서만도 1만 권. 그림과 조각품 등을 다하면 수만 점에 이른다. 하지만 건물 내 습기와 화재 및 도난방지 시설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온전한 보존이 어려운 상황. 게다가 박 관장은 고령인데다 경제적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그는 “아내는 가스렌지 불을 켜고 깜빡 잊은 게 몇 번인지 모른다. 자칫 대형화재로 이어질 뻔했다. 만약 불이 났다면 이 소중한 고서들은 지금쯤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전적류 문화유산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라고 다급한 심경을 토했다.

보은군은 박 관장이 소장하고 있는 월인천강지곡에 눈독을 드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신미대사를 관광산업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군 입장에서 군침이 돌만도 하다. 그에 반해 옥천군은 별 관심이 없다. 박 관장은 군에 수차례 보존방안을 제안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옥천에 뿌리를 둔 박 관장으로선 어떻게든 군민과 나누기를 원해 보은군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어려운 상황이 계속될 경우 그 결심은 언제 바뀔지 모를 상황. 한글 관련 역사적 유산이 전무한 옥천군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회지만 군은 사립박물관이란 이유로 뒷짐만 지고 있다.

군 관계자는 “향토전시관도 수장고가 부족한 형편이다. 사립박물관은 개인이 (박물관) 등록까지 했으면 개인이 알아서 관리해야 한다”며 보존지원에 난색을 표했다.

보은군 한 관계자는 “이곳 박물관을 방문해 보니 보존상태가 매우 심각했다. 무엇보다 항습, 항온과 보안·소방조치가 시급해 보였다”며 “우선 전수조사를 해 서적류만이라도 목록화해서 관리해야 한다. (법적 지원) 근거를 따지기 전에 보존이 우선돼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도내 한 사립한글박물관을 운영하는 관장 A씨는 “개인이 박물관을 운영하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러기에 국가는 ‘박물관 미술관 진흥법’을 통해 지자체 차원의 지원이 가능하도록 법제화 했다. 그 좋은 예가 청주의 옹기박물관과 조치원의 향토사박물관”이라며 “지자체는 개인 소유물이라고 뒷짐만지지 말고 법적 근거가 있는 만큼 선조들이 남긴 소중한 문화유산이 소실되지 않도록 거국적 차원에서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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