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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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금식
  • 김명순 약사
  • 승인 2019.07.2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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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순 약사

서랍 깊숙이 낡은 알람시계, 전자계산기, 소형 카메라, 수첩을 구시대의 유물처럼 박아놓고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 물건들에 나만의 이야기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손때 묻은 아날로그적 감성의 물건들도, 스마트폰에 밀려 거의 안 쓰는 집전화도 서서히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있는 반면, 급속히 발전하는 디지털 기기 특히 스마트폰은 마치 분신처럼 우리와 밀착되어 있다.

특히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디지털 기기와 동고동락해온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또는 ‘i세대’들은, 스마트폰을 제외하면 삶의 의미조차 논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

그들은 친구들과 모여서도 각자의 휴대폰에 빠져있느라 대화를 못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하는데 기성세대들은 그저 의아할 뿐이다. 영유아시기부터 스마트폰을 접하며 눈앞의 즐거움에만 익숙하게 자라면 공감능력·현실지각능력이 저하된다는 연구결과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까? 머지않아 행복의 의미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의 의미마저 변할 듯하다. 스마트 기기 개발을 주도했던 스티브잡스조차도, 집에서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미국 소아과 학회에선 다양한 심신의 부작용을 방지하고자 유아와 학생의 스마트폰 이용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신조어로 등장한 ‘노모포비아(nomophobia)’, ‘초미세 지루함(micro-boredom)’, ‘퀵백세대(Quick-back)’ 등은 스마트폰 사용자들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겼음을 증명하고 있다.

커피 광고 카피조차 ‘하루 평균 3시간을 스마트폰에 투자하는 우리들은 과연 이 순간 어머니의 생신을 기억할 수 있는가?’라며 경각심을 일깨우는 상황이다. 현재 우리는 스마트폰에서 굳이 안 봐도 되고 몰라도 되는 ‘잡동사니’들로 인해 예민해지고 심신이 피로한 ‘정보비만’ 상태에 있다.

또한 손 안의 컴퓨터에 극도로 의존한 나머지, VAT증후군(Visual Display Terminal Syndrome. 거북목, 안구 건조증, 시력 저하, 주의력 결핍, 불면증, 우울 등)과 같은 부작용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필요한 정보를 기억하기보다는 그 정보가 있는 곳만 알면 된다는―구글 효과(Google effects)―생각으로, 뇌의 기억력을 스스로 감퇴시켜 디지털 치매의 위험성도 가중시키고 있다. 게다가 과도한 전자파의 영향으로 인간 건강은 물론 도시에서 꿀벌이 점차 사라져 전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  

결국 디지털 기기 사용을 스스로 절제하며, 눈은 사람과 자연·책 등을 향하자는 ‘디지털 금식’과 ‘디지털 디톡스’, ‘디지털 미니멀리즘’이 확산되고, 미국에서는 ‘라이트폰(Lightphone)’의 인기가 치솟을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이미 종교계도 ‘스마트 쉼 문화운동본부’에 참여하며 앞장서고 있고, 세계 곳곳에서도 디지털 과다 사용에 경종을 울리는 ‘언플러그드의 날’, ‘디지털 디톡스 캠프’, ‘로그아웃-디지털 프리’ 캠페인이 일고 있다. 

이러한 캠페인에 대해,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뉴 러다이트((New Luddite)운동’을 하고 있느냐며 비아냥거릴지도 모른다. 물론 디지털 기기의 영향으로 세상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며 생활도 편리해지고 지구촌도 확장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오면서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공존하고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덕분에, 지금이라도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금식’에 동참하며 기기의 종속에서 벗어나야만, 가치 있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건강한 미래를 꿈꿀 수 있다고 본다.

더 나아가선 새로운 기술을 무분별하게 수용하기 보다는 과감하게 필요한 것과 장점만을 선택하는 지혜와 결단력으로, 부지불식간에 상실한 취사선택의 자유의지와 변질된 인간관계(‘人’의 의미를 되새기며)도 회복시켜야 할 것이다. 

이번 여름휴가에는, 가족 모두 스마트폰을 집에 놔두고 떠나는 ‘디지털 디톡스’ 여행을 경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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