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언제까지 최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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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언제까지 최선일까
  • 박은주 시인
  • 승인 2019.07.25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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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시인

A형 간염이 유행할 때 안전안내 문자가 왔다.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1970년 이후 출생자(20~40대)가 특히 A형 간염에 취약하므로 A형 간염 예방 접종 권고’

주변 환경이 깨끗해지고 개인위생을 철저히 해서 오히려 항체가 생성되지 못한 것을 알고 놀라웠다. 내가 어릴 때는 교실마다 커다란 주전자 하나와 컵 두 개가 있어서 당번은 매일 아침 수돗물을 담아 놓고 그것으로 반 아이들이 같이 물을 마셨다. 그런 환경에서 나도 모르게 증상이 지나가고 자연스레 항체가 생성되었던 것이다.

딸아이가 네 살 때 어린이집에 여자아이가 새로 들어왔다. 그 아이는 찰흙놀이도 안 하고 손에 물감도 안 묻힌다고 했다. 모래, 풀, 색종이 등 손으로 하는 모든 활동을 거부했다. 아이의 엄마는 자신의 잘못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손에 뭐든 묻기만 하면 바로바로 요란스레 닦아낸 까닭이었다. 손으로 하는 활동이 불가능하니 단체생활이 될 수 없었고 아이는 한 달도 안 되어 어린이집을 그만두었다. 아이 엄마는 깔끔하고 청결하게 아이를 키우려는 생각이었지 자신의 행동이 아이의 결벽증을 만들 줄은 몰랐던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라고 결정한 생각이 언제까지 최선일 수는 없다. 어느 한쪽이 전부 맞고 다른 한쪽이 전부 틀리는 일도 없다. 정확한 답이 하나 있어서 그 외에는 모두 틀리는 것은 수학 같은 학문에서나 가능할까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욕을 먹는 정치인이라도 한 가지 정도는 잘한 일이 있듯 사람이 살면서 전부 맞거나 전부 틀린 행동을 할 수 없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둘도 많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라며 출산억제정책을 펼치다가 인구절벽과 만나 출산장려정책으로 돌아서기까지 20년도 걸리지 않았다. 출산장려금과 다둥이에 대한 각종 혜택을 제시하지만 실제 출산율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혈세만 낭비한 꼴이 되었다. 급격한 인구감소와 이주민의 유입으로 약 350년 후에는 한민족이 없어질지 모른다는 의견도 있다. 이전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환경이 된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덩달아 바뀌는 교육정책도 그렇고 부동산 투기를 막는다며 발표하는 경제정책도, 청년 취업에 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리저리 돌려막다가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는 식이다. 많은 바이러스를 막을 수는 있어도 모든 바이러스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현재의 판단에 자만하고 그것만이 옳다고 고집한다. 때로는 그럴듯해 보인 것이 바로 다음 순간 잘못이었음을 깨닫는 경우도 있다.

좋게만 보아온 것이 다른 문제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의학이 발달하고 의료보험제도가 정착되어 손쉽게 약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비용이 저렴하니 감기 정도의 증상으로도 약을 짓는다. 감기는 약을 먹으면 2주일, 안 먹으면 14일이 걸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는데 어쨌든 온 국민이 약을 애용한다. 그러다보니 내성이 생겨 웬만큼 먹지 않으면 효과를 못 보는 상황이 되었다. 진통제도 처음에는 반 알만 먹어도 효과가 있다가 점차 적응하면서 두 알은 먹어야 효과가 생긴다. 세균에도 내성이 생기고 변종이 생겨 갈수록 독한 약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손쉽게 구할 수 있다고 모두 좋은 일은 아니다. 체질을 먼저 만들고 문제가 생기기 전에 예방에 신경 써야 하는데 우선 편한 것만 보고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조직이나 개인이나 일단 자리를 잡으면 그 위치에서 나아가려 하지 않고 방관하면서 임시방편을 갖다 붙인다.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만나면 서둘러 긴급대책을 내놓지만 그때 내딛는 걸음이 언제 어떤 식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사람이 하는 일은 시간이 지나면 허점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언제까지 옳은 것일 수 없다. 현재에 대한 집착이 전체를 놓치고 한 곳만 보게 하니 수많은 변수를 보지 못한다. 다음 순간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르므로 나도 틀릴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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