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외면한 사람이었다. 술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씻지 않아 가까이 가면 악취가 코를 찔렀다. 손과 발은 물론이고 얼굴도 새까매 사람의 형상이라고 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대로 두면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은 열악한 상황이었다. 마을 주민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주민 A씨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넨 건 이원면 칠방교회 전명선(61) 목사다.
전 목사는 의료보험공단 옥천군지사를 찾아가 요양시설로 모실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봤다. 서류상 아들이 있어 타인이 신청하는 건 성립되지 않는다는 답만 들을 수 있었다. 불가능해 보일 것 같은 요양등급 신청이 전 목사의 끈질긴 두드림으로 성사되었다. 현재 A씨는 요양원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른 사람이 못 알아볼 정도로 건강도 호전되었다. 시아버지가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던 며느리가 뒤늦게 사실을 알고 A씨의 손주를 데리고 요양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전 목사는 “처음에 도움을 주고자 다가갈 때 폭력성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서 많이 걱정했다”며 “이 모든 것이 기우였고 지금은 술도 안 드시고 담배도 찾지 않는다”고 기뻐했다.
이어 “단지 눈에 보여서 그대로 지나칠 수 없어서 행한 것뿐”이라며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는 동생들의 도움으로 서로 상의해서 진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요양원에 가면 “‘목사...목사’ 하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어떤 이유로라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거부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맘먹고 작정해서 하는 것은 없다. 다만 눈에 보여서 하는 것으로 특별한 것은 아니”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눌 수 있는 것을 나눈 것뿐인데 그분들은 더 크게 기뻐하고 마음을 내어주니 내가 더 기쁘더라”고 했다.
전 목사의 선행은 이번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홀로 거주할 수 없는 독거노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동사무소를 찾아가 협조를 얻고 시설에 모신 분이 몇 분 더 있다.
전 목사는 대전에서 전도사역을 7~8년 하다 목사 안수를 받고 2014년 청성면 금강유원지 부근으로 귀촌했다. 대전에서부터 전도사로 있을 때 홀로 사는 독거노인을 찾아가 반찬, 김치 나눔 봉사를 실시했다.
또한, 도배, 장판 등 집 고쳐주기 도움 봉사를 꾸준히 해 왔다. 2015년 칠방교회 담임목사로 오게 되면서 “이곳에서 지역민을 섬길 수 있어 더없이 기쁘다”며 “많은 분들의 마음이 열리기”를 소망했다. 앞으로의 계획이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계획이 없다”며 “하늘이 허락한 삶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는 전 목사의 눈빛이 온화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곧 가장 낮은 곳에 처한 사람을 섬기는 일임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눈빛에서 온화한 기운을 읽은 건 ‘곤경에 처한 이웃을 돌봐준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