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간 타국에서의 향수, 이젠 만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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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간 타국에서의 향수, 이젠 만끽
  • 도복희기자
  • 승인 2019.07.25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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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생활에 푹 빠진 정현목·유동마리아 부부
정현목·유동마리아 부부가 150년 된 고택 마당에서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150년의 세월이 묻어있는 집이었다. 본채, 아래채, 행랑채까지 보존되어 있었다. 뜨락에는 백일홍이 한여름 태양빛에 만발하고 능소화가 담장 아래로 꽃잎을 떨구었다. 거실 벽면에 사각모를 쓰고 찍은 형제자매들의 사진이 시간을 뒤로한 채 어제인 듯 생생하게 거기 그대로 있었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까지 한 집안에 4대가 살던 시절도 있었다.

4남 3녀 7남매 중 다섯째인 정현목(69) 씨는 1989년 미국으로 발령(현 SK하이닉스)이 나서 23년 동안 미국에서 거주하다 2012년 고향인 옥천으로 귀향한다. 2011년 아버지가 작고하신 후 어머니를 그 넓은 집에 홀로 둘 수 없었다. 집안의 전답과 150년 가옥도 누군가는 돌아봐야 했다.

그는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바뀌었다”며 “당연히 후손 중 누군가는 와서 조상들의 혼이 깃든 전답과 농토, 가옥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어 “나서 자란 집에 다시 돌아와 조상 옆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생의 이치”라고 담담하게 심정을 전했다. 그는 이곳 옥천에서의 생활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유년의 기억과 조상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이 공간이 정서적으로 더없이 편안하다고. 정현목 씨는 6대 종손이다. 남자 형제로는 셋째다. 큰 형은 돌아가시고 둘째 형은 미국에 있어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이유로 셋째이지만 자신이 옥천 고향으로 오게 됐다고 귀향의 이유를 밝혔다.

그는 뜨락의 나무와 잔디를 가꾸고 집안 관리를 하며 종중 일에도 발 벗고 나선다. 1957년 죽향초등학교에 입학하고 3학년까지 다니다 4학년 때 서울로 전학해 타지에서 학교에 다녔지만 방학이나 휴일에 자주 옥천 집에 와서 지냈다. 유년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옥천읍 수북길 16-2에 위치한 고택은 내부는 현대식으로 바뀌었지만, 대문과 외형은 그대로 보존되었다. 그는 이곳 마을이장도 초등학교 동창이라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아내 유동마리아(67) 씨는 결혼 후 시댁의 집안 행사에 간간 찾아오긴 했지만 2~3일 집안에서 머무르다 갔기 때문에 옥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2012년 미국에서 이곳에 정착한 후 옥천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그녀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다, 결혼 후 미국에서 23년간 지낸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어려운 이웃을 돕고 나누는 삶에 눈을 뜨게 된다. 이곳 옥천에 내려와 처음 찾아간 곳이 옥천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다. 다문화여성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곳 방문 이후 아기 돌보미로 일하기 시작했다. 또한, 2013년부터 대한적십자 옥천부녀봉사회에서 김장, 빨래, 반찬나눔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옥천군평생학습원에서 기초영어, 팝송으로 배우는 영어 프로그램 강사로도 6년째 일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2017년부터는 옥천군노인장애인복지관에서 영어교실 프로그램 강사로 일한다. 그녀에게 가르치는 일은 삶의 활력이다. 중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하는 그녀는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고 들으시는 분들도 좋아하셔서 행복하다”며 “아직까지 나누고 베푸는 이웃 간의 정이 살아있는 옥천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럽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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