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져간 초가집이 문화재 된 ‘무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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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져간 초가집이 문화재 된 ‘무섬마을’
  • 임요준기자
  • 승인 2019.08.2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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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 3면이 물로 둘러싸인 물돌이마을
둘러보는 부석사와 달리 대표 체류형관광지
청마리 제신탑·옻체험관 연계 관광코스개발 시급

수km 펼쳐진 낙동강 상류 하천 백사장 모래알이 8월 뜨거운 태양빛에 눈이 부신다. 하천 폭만 해도 100여m 됨직한 가운데 백사장은 20여m를 차지하고 있다. 하늘의 별이 모래알 같다라는 표현이 왜 생겼는지 실감날 지경이다. 강을 건너려면 길이 150m 폭 30cm의 길고도 좁은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를 건너다 낯선 이라도 마주칠 양이면 “이렇게 외나무다리서 만나다니...우린 전생에 웬수였나 보네요”라며 우스개 인사를 건네며 깔깔거린다. 마을 전체가 문화재로 지정된 경북 영주시 무섬마을 풍경이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을 누가 거들떠보기라도 했을까? 그저 초라하기만 했던 옛 초가집이 영주의 대표 체류형관광지가 됐다. 유네스코 지정 천년고찰 부석사도, 우리나라 최초 서원 소수서원도 둘러보는 관광지에 불과하지만 오두막과 옛 기와집이 관광객의 발길을 묶었다. ㅁ자형 가옥과 전통 기와지붕 곡선은 여느 건축사가 컴퍼스를 대고 그려도 이렇게 아름답지 않으리. 동이 청마리 제신탑과 그 옆 수억 원을 들여 만든 옻체험관이 잠을 자고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많은 돈을 들이지 않아도 전국 대표 체류형관광지가 될 수 있다는 것. 그 진실 속으로 들어간다.

△지형적 무섬마을은....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 안동 하회마을, 예천 회룡포, 영월 선암마을과 청령포와 같이 마을의 3면이 물로 둘러 쌓여 있는 대표적 물돌이 마을이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과 영주천이 합수돼 태백산과 소백산 줄기를 끼고 마을의 삼면을 감싸듯 휘감아 돌아 마치 섬처럼 육지속의 섬마을로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다. 강변에 넓은 백사장과 그 건너편 울창한 숲은 자연스레 입을 벌리게 한다.

△마을의 탄생
이곳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중반으로 반남박씨인 박수가 처음 들어왔다. 이후 조선 영조 때 그의 증손녀 사위인 예안김씨(선성김씨라고도 함)인 김대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두 집안이 집성촌을 이뤄 살고 있다. 현재 43가구 4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매혹적 전통가옥
가옥중 38동이 전통가옥이고, 16동은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이다. 경북도 민속문화재 제92호 해우당은 마을로 들어가는 수도교를 건너면 바로 왼편에 있다. 19세기 말 의금부 도사를 지낸 김낙풍이 지은 집으로, 해우당은 그의 호다. 김낙풍은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조언자였다. 해우당 고택에 있는 현판은 흥선대원군 직접 쓴 글씨다. 안채에는 역시 흥성대원군이 쓴 '대은정'이라는 현판이 보관돼 있다. 만죽재는 반남박씨의 입향조인 박수가 1666년(헌종7년)에 지은 집으로 무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이다. 이 마을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만죽재의 편액은 석운 박기양의 글씨이다. 또한 마을의 중앙에는 19세기 초반에 지어진 만운고택이 있다. 민속자료 제118호로 지정돼 있다. 이집을 지은 만운 김휘걸의 호를 붙여지었다. 바로 시인 조지훈의 처갓집이다. 조지훈은 시 ‘별리’에서 이곳 무섬마을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이외 무섬마을의 대표적 부잣집 가옥인 김위진 가옥(문화재 자료 제360호), 담장 없이 지어진 김정규 가옥(문화재 자료 제 362호), 실학자 박규수의 글씨가 남아 있는 박재연 고택도 있다. 무섬마을은 중요민속문화재 제278호로 지정돼 있다.

△웬수는 외나무다리서....
이 마을 빼놓지 말아야 할 볼거리는 350여 년간 마을과 강 건너를 연결시켜준 외나무다리다. 1979년 수도교가 놓이기 전까지 무섬마을의 유일한 통로 역할을 한 외나무다리는 길이가 무려 150m, 폭은 30cm에 불과하다. 폭이 좁아 긴 장대에 의지한 채 건너야 한다. 외나무다리는 장마철이면 불어난 강물에 다리가 떠내려가 매년 새로 만든다. 수도교의 건설로 사라졌던 외나무다리는 최근 옛 모습 그대로 복원돼 매년 10월 ‘외나무다리축제’를 연다. 원래 외나무다리는 3개. 농사지으러 가는 다리, 장보러 가는 다리, 학동들이 학교 가는 다리. 지금은 농사지으러 가는 다리만이 전통을 잇고 있다.

△무섬에서 배워 동이 청마리를 개발하자
영주에는 유네스코 지정 2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신라 때 세워진 천년 고찰 부석사와 최초 서원 소수서원이 그것이다. 이곳들을 둘러본 관광객들은 무섬마을에서 한옥체험 관광을 하며 하룻밤을 묵는다. 부석사도, 소수서원도 하지 못하는 체류형관광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젊은 날 도시인으로 살다가 6년 전 다시 돌아온 김진호 이장은 “조상님들께서 물려준 마을이 전국적 관광지가 될 줄 몰랐다. 주민들은 마을을 지키는데 일심으로 함께 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물돌이 마을은 아니지만 옥천엔 삼한시대 마한의 전통을 잇고 있는 동이면 청마리가 있다. 마한의 민속신앙 탑신제당이 남아있고 해마다 정월대보름 탑신제를 한다. 조산탑, 추악대, 장승, 산제당의 4개 신앙대상이 온전히 보전돼 있어 충북도 민속자료 1호로 지정돼 있다. 마을 앞엔 금강이 흐르고 제신탑 옆엔 옻체험관이 들어서 있다. 폐교를 리모델링해 숙박을 하며 옻체험도 할 수 있는 곳이지만 연계관광이 되지 않아 찾는 사람은 전무한 상황. 수천 년 전통이 살아있고 옻체험도 할 수 있는 청마리는 폐업상태나 다름없다. 있는 자원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옥천관광의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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