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그 이름 ‘육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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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그 이름 ‘육영수’
  • 김영훈기자
  • 승인 2019.08.22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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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육영수 여사 45주기 추모제
“사랑·봉사·희생정신 되새기자”
故 육영수 여사 45주기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1974년 광복절 기념식 도중 문세광 저격에 의해 희생당한 故 육영수 여사 45주기 추모제가 옥천군애향회(회장 박문용)가 주관한 가운데 광복절인 지난 15일 여성회관 육영수여사 동상  앞에서 열렸다.

이날 김재종 군수, 김외식 군의장, 육동일 육씨종친회장 및 주민 110여 명이 참석해 故 육영수 여사의 사랑·봉사·희생정신을 되새기고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식전행사로 소프라노 홍다현의 ‘마중’이 울렸다.

박문용 회장은 “故 육영수 여사는 어린이, 장애인, 노인, 여성 등 약자의 편에서 많은 봉사를 해왔다. 수많은 역경과 시련 속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복지에 심의를 기울였던 故 육영수 여사는 대한민국의 표상이자 귀감”이라며 “역사적 가치를 지닌 옥천의 인물로써 대한민국의 국모”라고 상기했다.

이어 “故 육영수 여사의 숭고한 뜻과 넋을 기리며, 故 육영수 여사의 명복을 빌면서 삼가영전에 경건한 마음으로 추도애를 받친다”며 추도했다.

이어진 홍다현의 ‘목련화’는 육 여사가 생전에 즐겨 듣던 곡으로 추모제의 분위기를 더 했다.
故 육영수 여사는 1925년 11월 29일 옥천에서 육종관과 이경령의 1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죽향초등학교와 배화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45년 옥천공립여자전수학교(현 옥천여중)에서 1년 3개월간 교사로 근무했으며 1950년 6·25전쟁 부산 피난 중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나 12월 12일 대구시 계산동 성당에서 결혼했다. 1969년 4월 14일 어린이 복지사업 목적으로 육영재단을 설립, 1970년 7월 25일 서울 남산 어린이회관 건립했고 1973년 서울 용산 정수직업훈련원을 개관했다. 1974년 7월 15일 소록도 양지회 회관을 설립하고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 도중 문세광 저격에 의거 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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