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 만고충신 정립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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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 만고충신 정립 선생
  • 전순표 시인·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 승인 2019.08.2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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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표 시인·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조선중기 문신인 고암 정립(鄭雴)은 1554년(중종 39년)에 옥천군 동이면 적하리 지시레 마을에서 태어나 1640년까지 87세를 산 인물로 대대로 관직에 나간 선비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는 학문과 덕행을 쌓았고 성리학의 근본 가치인 극기복례의 인의의 덕목을 실천한 유학자이며 늦게 관직에 나가서는 청백한 목민관이었다.

그는 조선 중기 인조 때인 62세의 아주 늦은 나이에 1615년(광해군 7) 대과에 급제하여 70대 후반에 군수물자를 담당하였던 정3품 군자감정 당상관에 올랐던 끈질긴 투지와 학문 연구를 갖춘 보기 드문 옥천의 성리학자이자, 청백한 관리이었다.

『고암선생유고』는 정립 선생이 일생동안 남긴 기록을 모아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종중 후손이 발행한 유고집으로 6권 3책이다. 일기에는 정립 선생이 1세부터 87세까지 일기와 메모 형식의 연보, 그리고 詩와 사(詞)와 부(賦), 상소문, 잡저를 모아 엮어서 조선 중기의 정치와 사회상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옥천문화자산이다.

△임진왜란, 정묘호란 의병 일기, 보물급
특히 이 유고집의 『고암 일기』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당시 충청지방의 전쟁 전개와 의병활동 등이 자세하여 충청지역사를 연구에 매우 사료적 가치가 있어 옥천향토전시관에 소장 된 『고암기』는 국가 보물급으로 인정받는다.

정립 선생의 선배 유학자에 대한 숭현 의식은 성균관 유생 시절 그 당시 국정을 농단하였던 대북파의 영수인 정인홍의 탄핵상소를 작성하였던 일이나, 1606년(선조 39년)에는 문경공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선생을 문묘에 제향 돼야 한다는 상소와 1610년 10월에 조헌의 스승인 우계 성혼 선생의 충심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련의 상소문에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정립 선생은 충신으로 임진왜란, 정묘호란 등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의병으로 참전해 충의정신을 발휘한 행동하는 성리학자이다. 그는 임진왜란 때 조헌, 이충범 의병장 휘하에서 의병 참모로 활약했다. 또 정묘호란 때 김장생 의병장 휘하에서 도유사와 소모관으로 의병에 참가했다. 더불어 정묘호란 때 세자를 전주까지 호종한 일은 그가 충심을 다해 군주와 백성을 위한 보국위민을 실천한 정립 선생의 충의정신은 후세에 큰 귀감이 된다.
 
△끝없이 학문 몰두, 62세 대과급제
정립 선생은 강건한 의지로 국가의 전란과 가정의` 어려움 겪었어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환갑이 지난 62세의 노인으로 각고의 노력 끝에 1615년(광해군 7년) 마침내 대과에 급제하였다. 처음 관직에서 성균관 학유를 지냈고 이어 성균관 도서관장인 전적, 병조좌랑, 진해현감을 거친 뒤 낙향하였다. 그 후 77세에 다시 등용되어 교서관 교리, 경상도 도사 등을 거쳐 정3품인 군자감정, 판사를 지냈다.

그는 관직에 나가서도 정립은 청백함과 올곧은 목민관의 자세로 진해현감에 부임하여 임란 후 복구사업과 백성 사랑을 인자한 교화로 몸소 실천한 목민관으로 애민정신을 발휘했다. 특히 진해현감을 마치고 돌아갈 때 가마 안에 털방석이 설치된 것을 보고 관물이라며 돌려보낸 일화는 청백한 그의 인품을 말해준다.

벼슬을 마치고 낙향하여 고향 금강 기슭인 옥천군 동이면 적하리 삼락재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삼계서원 건립」과 「서원의 위전 찾기」상소를 통해  옥천지방 유학자의 숭현 위선사업에 앞장섰다. 그리고 옥천군 백성의 「삼정(三政)」세금 탕감 등  주민들이 민원해결과 「지방사림의 천거」, 「충신, 효, 열녀의 정려」 등을 위해서 관찰사, 군수, 어사, 관련 조정 부서 등에게 친히 서신을 내어 호소하므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준 일이 많았다. 1640년(인조 18년) 마을 동편으로 금강이 흐르는 고향인 옥천군 적하리에서 87세에 생을 마감한다.

정립 선생의 면학정신과 숭현, 정충보국 정신에 대한 선양사업은 물론 옥천향토전시관에 소장 ‧ 전시되고 있는 정립 선생의 임진왜란 의병일기인 『고암기』가 국보급 보물로 지정되길 희망한다.

△조헌 선생과 숙박, 왜란을 걱정한 옥주사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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