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伐草) 시즌
상태바
벌초(伐草) 시즌
  • 곽봉호 옥천군의회 의원
  • 승인 2019.08.29 16: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곽봉호 옥천군의회 의원

열대야에 시달리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절기의 변화는 참으로 오묘하다.

처서가 지나면 날씨가 마법처럼 선선해진다고 해서 ‘처서 매직’이라는 말도 생겨났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이르다. 한낮에는 최고 기온이 30℃를 넘나들고 있으니까. 처서는 가을을 알린다고 하는 입추와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 사이에 끼어 있는 24절기 중 하나다. 이때부터는 풀들이 더 이상 자라지 않거나 자란다 해도 그 정도가 고만고만할 것이다. ‘벌초 시즌’이 열리는 이유이다.

벌초(伐草)란 조상 묘의 풀을 베어 정리하는 풍속으로 금초라고도 한다. 벌초는 1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진행을 한다. 봄에는 한식에 가을에는 추석 무렵에 해 왔다.

한식· 단오· 칠석· 백중 등의 명절이 시대 변화에 따라 차츰 쇠퇴하고 있으나 한식과 추석 모두 전통적으로 성묘를 하는 명절이다.

봄에 벌초할 때는 한식에 성묘와 함께 진행하는 경우가 많지만, 가을에는 추석 전 미리 벌초를 해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8월에 벌초하는 사람은 자식으로 안친다.” 라는 속담이 있다. 추석이 음력 8월 보름이기에 음력 8월에 벌초를 하는 것은 늦게 벌초를 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벌초를 하려면 8월전, 추석 2주 전에는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제주도 속담에 “추석 전에 소분(掃墳)을 안 하면 조상이 덤불을 쓰고 명절 먹으러 온다.” 라는 말이 있다. 추석 전에 벌초를 하라는 얘기이다. 무슨 일에 정성을 드려 하지 않을 때, "처삼촌 묘 벌초하듯 한다." 또 “제사 안 지낸 것은 남이 몰라도 벌초 안 한 것은 남이 안다.”라는 말도 있다. 제사는 지내지 않아도 남이 모르지만, 벌초는 안하면 금방 남의 눈에 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자손이 귀한 집안은 조상님들이 하나같이 묘지 앞에 비석을 세우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대(代)가 끓기는 일이야 있으랴만 행여 사정이 있어 벌초를 못해 산소가 묵히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손가락질이라도 할까 봐서 그랬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이맘때면 50대 이상 중·노년층은 물론이고, 20~40대 젊은 층과 어린 학생들까지 벌초 길에 줄줄이 동행하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벌초는 제례의 한 절차지만, 손위 어른이 모처럼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다.

‘토요일 아침 9시까지 벌초 집합’이라는 문자 한 통이면 전국 각지 후손들이 새벽을 가르며 모여든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마디 훈계도 섞어 넣을 수 있다.

봉분에 잡풀이 무성한 것 자체를 불효로 인식하는 관행이 아직도 뿌리 깊다.

집안 행사에 끌려온 모양새지만 젊은이들의 계산서도 그다지 손해는 아니다. 벌초를 끝내면 마음속에 ‘뭔가 할 일을 했다’는 알리바이를 갖추게 돼 정작 추석 연휴에는 해외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의례라는 것은 그렇게 우리 마음속에서 하나의 굴레 역할을 한다.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고향에 남은 문중 사람들이 벌초를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농촌 어른들이 직접 벌초를 하지 못하게 되자, 그나마 젊은 마을 사람들에게 술값이라도 쥐어 주고 부탁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이런 행태도 잠깐, 최근엔 벌초 대행업자에게 맡기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도시에 살던 사람이 직접 벌초에 나섰다 공연히 벌집을 건드리는 등의 사고나 당하는 것도 벌초 대행 문화를 확산시켰다.

문제는 비용이다. 올해는 최저임금인상 여파가 여기까지 미쳐선지 벌초 대행비용은 부르는 게 값이다. 산소 한자리를 벌초하는 데 최소 15만원에서 많게는 20~30만원을 요구한다.

서너 자리를 맡기려면 50만 원 이상 든다니까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사촌들 간에 계를 모으고, 그 덕에 친목이 다져지는 긍정적 변화도 있다고 한다. 벌초는 매장문화의 하나지만 묘를 쓰게 된 것이 그다지 오랜 풍습은 아니다.

불교국가였던 고려시대에는 화장이 주류였다. 매장 제도가 확산된 것은 성리학적 세계관의 사림파가 득세한 16세기부터다.

주말 고속도로는 벌초 행렬로 만원사례였지만 오래지 않아 사라질 풍경이 될 것 같다.

망자를 봉분 대신 납골당으로 모시고, 수목장 등 다양한 장례 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불과 몇 년이면 벌초도 지나간 풍속이 될지 모른다. 막상 사라지고 나면 그리워질 것이지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