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글자로 소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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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글자로 소통하기
  • 박은주 시인
  • 승인 2019.08.2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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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시인

몰라
싫어
아니
별로
관둬

딸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쯤부터 중2가 된 지금까지 내 말에 대답할 때 거의 두 글자를 사용한다. 이 외에 설마, 없어, 내 맘, 뭥미, 개뿔, 어쩔, 미워, 그닥, 됐고, 뭐래…… 같은 말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존댓말도 잘 쓰고 예의를 차리는데 유독 엄마인 나한테만 답이 짧다. 처음에는 다른 부모들처럼 사춘기 자식의 성의 없는 대답을 괘씸하게 여겼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이 두 글자로도 충분히 의사전달이 되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 글자로 되어 있다는 글을 보았다. 나, 너, 삶, 물, 불, 숨, 논, 밭, 땅, 씨, 밥, 쌀, 벼, 꽃, 강, 산, 숲, 몸, 길, 꿈, 낮, 밤, 해, 달, 별, 빛, 돈, 똥, 말, 약, 옷, 잠, 집, 책, 피, 흙, 힘, 넋, 응, 끝 등등.

중요한 것을 한 글자로 표현할 수 있는데 아이는 두 글자를 쓰니 최소 단위에서 한 글자를 더 쓰는 것이 아닌가. 적어도 나와 소통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가 대답할 때마다 적어놓았더니 사전으로 만들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가 답을 짧게 던져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주위 사람에게 들어보니 사춘기 자녀가 ‘몰라’라는 말을 달고 사니까 들을 때마다 기분 나쁘다고 했다. ‘몰라’ 한 번에 한 대씩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하나 생각 중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두 글자라도 대답하는 게 어딘가 그런 생각을 했다.

적당한 범위만 정해주고 내버려두면 스스로 자리를 찾아간다. 지금은 말이 짧아도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제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으니까. 어른들이 하는 모든 말이 꼰대 같고 잔소리 같아 대꾸조차 하기 싫었다.

직장 내 소통방식에서도 세대 간의 차이를 많이 느낀다.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윗세대는 생일을 음력으로 따지고 젊은 층은 모두 양력으로 생일을 따지는 것도, 자연스럽게 더치페이를 하는 것도 달라진 양상이다. 사소한 차이 외에도 일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서도 생각이 많이 다르다. 그러다보니 못마땅해 하는 어른들이 많이 있는데 사람은 다 똑같아서 인정받고 칭찬받기 원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신입사원을 받아보면 자격 있는 사람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대체 어떻게 저런 사람이 들어왔지 싶은 경우도 있다. 아무리 시험을 까다롭게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대기업 인사담당자들도 그렇게 말하니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정작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당히 시험에 합격했으니 적절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각의 간격이 점차 벌어지면서 몇 번의 실수가 전부가 되고 그 직원은 점점 더 무능해진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직접 본인에게 말하는 것을 꺼려하고 알아서 눈치채기만 바란다.

오래전 퇴직한 직장 선배는 내 행동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 이러이러한 점이 문제라고 지적해주었다. 나이 차이가 많아도 스스럼없이 의견을 말할 수 있고 농담도 하는 분위기여서 선배의 말을 들으며 나에 대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주위에 그런 사람이 없어 몹시 아쉽다. 우리나라 조직문화의 특징이겠지만 해야 할 말은 감추고 문제는 덮으려 한다. 그냥, 글쎄, 그저, 뭐, 아, 저…… 같은 말로 끝을 흐린다. 그런 것보다는 차라리 두 글자만 사용하더라도 확실히 대답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싶다.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열심히 한 만큼 보상받기를 바라고 잘한 일에 칭찬받기를 원한다. 변하지 않는 것만 골라내면 공통점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소통에 어려움이 있다지만 서로 자기 입장만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두 글자로 대답하느냐 완전한 문장을 쓰느냐 보다는 상대를 바라보는 태도가 어떤가가 더 중요하다. 상대를 보는 시선과 자세만 올바르다면 언젠가 스스로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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