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도 사람의 표정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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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도 사람의 표정을 읽는다
  • 동탄 이흥주 작가
  • 승인 2019.09.19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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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 이흥주 작가

우리 밭가는 길가 언덕 위엔 검정색 멍멍이가 두 마리나 있다. 밭 주인이 개를 두 마리나 밭에 매어 놨기 때문이다. 이 녀석들은 전에도 내 글에 출연한 적이 있다. 내가 워낙 동물 특히 개를 좋아하는지라 그 녀석들과 갈 때나 올 때 서로 반갑게 맞고 장난도 한다. 내가 이뻐해 주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두 녀석 다 검은 수컷인데 작은 녀석은 밭 위쪽에 매어 놓아 마주치지 않지만 큰 녀석은 바로 길가라 지나갈 때마다 보게 된다.

길가 녀석은 털 색도 누런 게 무섭게 생기고 덩치도 제법 커 처음 보면 위압감이 생길 수 있다. 한데 녀석과 나는 강아지 때부터 서로 알고 지내는 터라 그런 건 없다. 녀석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좀 멍하고 험상하게는 생겼지만 저를 이뻐 하니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반긴다. 절대복종의 몸짓으로 자세를 낮추고 황송해하면서도 좋아 어쩔 줄을 모른다.

여기서 나는 아주 중요한 걸 발견했다. 개도 사람의 표정을 읽는다는 것이다. 내가 언덕길을 올라가며 바라보면 저를 반가워하는지 아닌지를 살피는 것처럼 머뭇거릴 때가 있다. 이때 내가 이를 드러내며 만면에 웃음을 띠면 대번에 몸짓이 달라진다. 네 발을 종종거리고 꼬리를 흔들며 어쩔 줄을 모른다.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내가 환하게 웃으면 몸짓이 확 달라지니 신기하다. 이런 대 발견(?) 후로는 언제나 녀석을 대할 때마다 나는 함박웃음으로 다가간다. 내가 웃어서 즐겁고 녀석이 더욱 반가워해주니 즐겁다.

이렇게 하며 녀석과 나는 더욱 친밀해졌다. 난 언제나 웃음으로 다가가고 녀석이 나를 반가워하는 몸짓은 더욱 강렬해졌다. 내 집 개 이상으로 우린 친하다. 얼굴 표정만으로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읽게 되니 만날 때마다 더욱 반갑다. 난 특별히 바쁜 때가 아니면 꼭 녀석을 쓰다듬거나 두드려 주고 간다. 한데 녀석이 무더운 여름을 나느라고 지쳤는지 살 한번 통통히 오르지 못하는 게 마음이 아프다. 요즘 부쩍 수척해지고 기운도 없는 것 같아 안됐다. 여름엔 털갈이도 말끔히 해야 하는데 털갈이도 제대로 안 돼 모습이 초라하다. 그래도 우린 누구보다 반가운 친구이고 내가 이 멍멍이를 좋아하는 마음엔 변함이 없다.

밭 위쪽에는 이 녀석보다 좀 작은 검둥이가 있다. 며칠 전 목줄이 풀어져 밑에 큰 녀석 있는 데로 내려왔다. 그래서 두 녀석이 나를 맞는다. 녀석을 쓰다듬으며 이뻐 했더니 우리 밭까지 쫄랑쫄랑 따라온다. 그러더니 심어놓은 어린 김장채소를 밟고 온 밭을 뛰어다니며 말썽을 부린다. 간신히 쫓아내어 네 집으로 가라고 손짓을 하니 매우 아쉬운 듯 뒤를 자꾸 돌아보며 저희 집 쪽으로 갔다. 한데 한참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이 녀석이 또 와서 밭을 휘젓고 다닌다. 녀석을 다시 쫓아 제집으로 가게 하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언젠가 식물도 저를 정성껏 돌보고 위해주는 사람을 감지한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오래 돼서 여기 자세하게 옮길 순 없지만 그로 보면 집에서 화분 하나를 돌보더라도 정성을 다해서 할 일이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진심과 사랑은 통하는가 보다.

농사를 짓다 보면 자라는 곡식이 자식처럼 보인다. 작물 하나하나 귀중하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게 자라는 걸 보며 느끼는 감정은 농부가 아니면 모른다. 자식을 키워낸 마음으로 작물을 돌보기 때문에 하나라도 꺾이고 상하면 그 상심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난 밭엘 가면 작물과 반갑게 인사를 한다. 풍작을 이룬 고추에게는 “얘들아 고추를 많이 따게 해주어 너무 고맙다!” 이렇게 고추나무를 어루만지며 대화를 한다. 한데 주변엔 농부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도 참 많다. 손주들 주려고 땅콩을 조금 심었다. 심어놓은 땅콩 씨앗도 비둘기나 꿩이 파먹어 농약을 뿌리고 근근덕신 싹을 틔우고 가꿔 놓으니 이제 또 채 여물기도 전에 마구 파먹는다. 망으로 땅콩 골을 덮고 양쪽을 핀으로 고정을 하고 흙으로 눌러 놓아도 파먹는 걸 못 막는다. 끝을 어떻게 쳐드는지 한쪽에서 모조리 파먹어 들어온다. 그놈들도 잘 익은 것만 골라 먹는다. 반 이상을 그들의 먹이로 내주고 여물지도 않은 걸 캐고 말았다. 내가 기른 곡식, 이 아픔을 어디에 호소해야 하나.

봄부터 가을까지 하나하나 큰 사랑으로 기르는 작물, 그들이 주인 맘을 알아주고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주면 농부는 행복하다. 동물도 농작물도 진실을 갖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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