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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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유감
  • 동탄 이흥주 수필가
  • 승인 2019.10.1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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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 이흥주 수필가

설과 추석을 명절이라고 한다. 명절은 평일과 달리 좋은 날이다. 음력 1월 1일과 8월 15일을 명절로 정하고, 이날은 조상께 제례를 올리고 좋은 옷을 입고 가족이 모두 모여 즐겁게 노는 날이다. 어릴 때 우리는 얼마나 이날을 기다렸는가. 이날은 떨어져 사는 부모님을 찾아 뵙고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고 흩어져 사는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즐거운 날이다. 한데 요즘 와서는 이 명절이 단지 휴일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내가 젊을 때까지는 설이나 추석 말고도 명절이 두 개나 더 있었다. 동지로부터 105일째에 드는 한식(대개 양력 4월 5일이나 6일), 음력 5월 5일 단오까지 명절에 들어갔다. 실제 우리 동네, 우리 집도 한식 차례를 하고 단오까지 챙겼다. 단오는 보리수확기라 바쁜 때다. 그래도 음식을 장만해서 차례를 올리고 뒷산 소나무에 그네를 매고 온 동네가 명절로 설레었다. 단오에는 그네를 탄다. 보통 이틀 정도, 최소한 하루만이라도 동네가 명절 분위기로 들떴다. 그러던 한식과 단오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바쁘고 귀찮다는 이유였다.

이제는 두 개만 남은 설과 추석도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제례를 올리고 함께 즐기는 날이 아니라 귀찮은 제사 같은 건 잊어버리고 외국에 관광이나 가는 날로 돼버렸다. 굳이 명절이란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어차피 제례도 올리지 않고 모처럼 가족이 모여 즐기는 날이 아닐 바엔 이제 골치 아픈 ‘명절’이란 이름은 빼고 그냥 연휴란 개념만 달아 ‘노는 날’ ‘쉬는 날’로 해야 한다. 명절로 하면 선물을 해야 하고 차례를 올리려면 힘들게 음식 장만해야 하니 아예 ‘명절’이란 이름은 빼고 그냥 연휴로만 해야 한다. 내 생각엔 추석명절, 설 명절에서 명절을 빼고 ‘설 연휴’ ‘추석연휴’로 하면 어떨까 한다.

지금 와서 미풍양속이니 전통운운 해봐야 아무 의미도 없다. 신경만 쓰이는 일이다. 명절연휴만 되면 공항이 미어터지고 제사라는 개념조차도 사라진 지금 설이나 추석을 명절로 ‘묶어’둘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이 두 날을 ‘명절’에서 해방시켜야 할 때가 됐다. 우리같이 나이든 사람들은 아쉽고 서운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이든 사람들조차도 이제 명절을 ‘귀찮은 날’ 정도로 생각한다.

사실 옛날에나 명절을 기다렸다. 모든 게 궁핍한 시절이었으니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이 있는 명절이 왜 안 기다려졌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매일이 명절이다. 명절에나 입었던 옷을 매일 입고, 명절에나 대했던 음식이 매일 즐비하다. 요즘은 토요일까지 휴무이므로 부모님 찾아뵙는 건 그런 때 하면 된다. 금요일 저녁에 출발하면 하루나 이틀을 부모님과 같이 할 수가 있다. 특별히 명절을 기다릴 이유가 사라졌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오늘에 와서는 갈수록 명절의 의미는 퇴색해 갈 것이다.

요즘은 나이든 사람들도 자기 바로 위 할머니 할아버지 묘는 잘 보살피지만 그 위 조상은 산소 벌초도 하기 싫어하고 안하는 지가 한참 됐다. 잘 있는 산소도 파헤쳐 조상님 유골을 불에 태워 산에다 뿌리고 마는 세상이다. 무섭다는 생각까지 든다. 귀찮은 일, 하기 싫어하는 일은 나이든 사람이나 나이가 적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되레 나이든 사람들이 앞장을 서기도 한다.

지금은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화장터로 향한다. 꽃상여 메고 요령 흔들며 선산 장지로 가던 모습도 역사의 뒤안길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살아서 화장터 가기 싫다고 했건 안 했건 화장터를 가야 한다. 자식들이 힘든 일은 싫고 귀찮은 일은 하기 싫어 간편하게 하기 위해서다. 화장을 해서 납골당엘 가거나 한 줌의 재를 뿌리고 나면 산소 돌볼 일이나 벌초 걱정이 없다. 선산에 묻는다 해도 삽 한 자루만 갖고 가면 순식간에 끝낸다. 내가 편하게 갈 수 있는 게 관례가 되고 상식이 된다.

명절은 예나 지금이나 여자들이 힘들다. 남녀의 차별이 사라진 요즘 명절을 쇠고 안 쇠고, 차례를 올리고 안 올리고는 여자들 마음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자들이 굳이 어렵다고 하면 남자도 거기 응할 수밖에 없다. 남자들도 명절날 여자들 손에 물 마를 새가 없는 걸 보기가 애처롭다. 이래저래 명절을 쇠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대세가 될 것이다. 앞으론 자식을 하나만 낳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는데 명절의 의미가 유지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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