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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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을 보내며
  • 이남규 수필가
  • 승인 2019.10.1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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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규 수필가

팔십이 되는 생일을 맞이하여 그간의 지내온 것에 감사하고 앞으로 살아갈 것에 길을 잡아본다.

어린 나이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도 모르고 여기까지 무탈하게 살아온 일 들이 주마등같이 가슴을 파고들어 온다. 먹고 살기가 어려웠던 춘궁기란 말이 있듯이 보릿고개를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온 일들이 가슴을 파고들어 새롭게 회자가 된다.

먹고살기 위해 뚝 밀가루 국수로 만들어 묽게 칼국수를 해서 먹었던 일이 머릿속에 담겨 지금도 국수는 그리 쉽게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된다.

헐벗고 벌벌 떨며 겨울을 넘기려면 머리와 옷에는 이가 저희들 보금자리인양 득실대던 그때가 가슴 쓰리게 들어온다.

지금은 휴지란 게 있어 큰일을 보고 난 후 맘대로 닦기도 하지만 어렸을 때는 쌀 나무라고 하는 집을 구겨서 밑을 닦으니 제대로 닦이지 않고 궁둥이에서는 구린내가 진동하여 여럿이 한방에 있으면 메탄가스가 퍼지기도 하던 세월를 이기고 왔다.

신발은 짚신이라는 것으로 신고 다니다 보면 겨울에는 눈이 기어 올라와 발가락은 얼음이 박히는 게 일쑤였다. 여름에는 나무 신발인 게다가 있던 시절이 지금도 생생하게 머리에서 놀고 있다.

무명바지를 입고 다니며 솜을 넣어 만든 것은 있는 집에서나 가능하고 홑바지를 입으면 추위를 이겨내기가 힘들었다. 배가 고파 고기 냄새라도 맛보려고 미군 부대에서 먹다 버린 찌꺼기를 끓여 한 그릇씩 사먹던 일이 지금은 그저 추억이 됐다. 지금의 개밥보다도 못한 먹거리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공무원이 돼서 월급이 6,800원을 받아 생활한다는 게 한심한 일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오다 보니 서장도 하고 본부장도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나이가 64살이 돼 은퇴를 하고 시골에서 텃밭도 일궈가며 살다보니 인간 70이라는 나이가 들게 돼 고맙다고 하였다. 그동안에 많은 모임도 서서히 멀리하게 되고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대전에 있는 한밭대 사진반에 등록하여 열심히 활동하다 보니 나이도 들고해서인지 회장을 하라고 해 외국에 사진 촬영하러 가기도 한다. 또한 국내 좋은 곳을 찾아 오밤중에도 가기도 하며 지내고 있다.

늦은 감은 있지마는 이제서라도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옥천평생학습원에서 시행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에 다니며 시와 수필을 작성하는데 열심히 참석하고 있다.

음력으로 12월 9일이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생명을 지탱해온 것이 80년이 되는 날이 됐다. 가만히 생각하니 벌써 이런 나이가 이마에 붙었다는 게 옛말에 일장춘몽이라고 하는 것이 새롭게 느껴진다. 하루 전이 일요일이라 가까이 있는 자식들이 찾아와 팔순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노래도 불러주었다. 꼬맹이같이 어린 손녀딸이 이제는 다 큰 처녀 같게 자라서 할아버지 진심으로 팔순을 축하합니다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시골에 같이 살고있는 숙모님과 식구랑 옥천으로 가 소고기를 구워 먹으며 하루를 보낼까 하였다. 그런 것보다는 동네 경로당에 여러 이웃들과 간단하게 점심이나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아 옥천읍내에 있는 식당의 소내장국을 사와 함께 정을 나누며 먹으니 “벌써 팔순이 되셨어요”라고 한다. 많은 걸로 정을 나누는 것도 괜찮지만 적은 것이라도 함께 하는 것이 좋다.

75살이 되니 머리 색깔이 백색으로 변했었지만 그래도 젊어 보이려고 염색을 하고 다녔는데 이젠 염색 안 하니 산신령 같다고도 하고 백발노인 같다고들 한다. 그러나 마음도 그렇지만은 육체적 활동도 청년 못지않게 한다는 자부심이 팽배하게 지내고 있다. 하루에 산골길을 두 시간 정도 걸어 다니니 다릿심이 좋기도 하지만 외모로 봐서도 팽팽한 근육이 보인다. 그리고 팔 굽혀 펴기도 70번은 거뜬하게 하니까 심신이 강건하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내가 얼마나 살았나하며 계산을 해보니 80년을 살았고 이를 날짜로 계산하면 28.000일 이란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참말로 이렇게 많은 세월을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잘살아 왔구나’ 생각해본다.

어머니는 5살 때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56세에 작고하셨으니 어른들이 다 못 사시고 간 세월을 내가 살아간다고 엉뚱한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이제는 오늘이 지나면 은 81살이라는 숫자가 잘 살아왔다고 호응을 해준다. 고맙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거울삼아 외롭고 쓸쓸하다는 생각일랑 버리고 새 인생을 야무지게 살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자식들에게 어려움을 절대로 주지 않고 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산골 정기를 받아 가며 이웃들과도 정을 듬뿍 나눠야겠다고 힘차게 다짐해본다.

친구로 함께 늙어가는 태기에게도 허물없는 삶을 나누면서 지내자고 다짐해본다.

1월 21에는 7박 9일간 한밭대 호인들끼리 네팔의 풍광을 촬영하러 가기로 했기에 날짜는 좀 지나갔지만 팔순의 의미 있는 출사라고 마음을 희망차게 담아본다. 태기와 큰딸이 각각 여비에 보태라고 금일봉을 줘서 한결 가볍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는 헤어짐의 아픔을 당하기도 하면서 이것이 인생인가 하는 마음을 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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