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 조헌은 시인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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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 조헌은 시인이셨다”
  • 김영훈기자
  • 승인 2019.10.1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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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중봉충렬제 기념 학술세미나
제44회 중봉충렬제 기념 학술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제44회 중봉충렬제 기념 학술세미나가 지난 11일 충북도립대학교 미래관에서 열렸다.

중봉충렬제의 일환으로 열린 이번 세미나에서는 중봉 선생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토론이 이어졌다. (사)중봉조헌선생선양회 이하준 이사장(김포문화원장)이 좌장을 맡았으며 발표자로 충남도립대 곽호제 교수, 충북도립대 김종구 교수, 토론자로 옥천향토사연구회 이재하 지도위원, 옥천향토전시관 전순표 명예관장이 나섰다.

옥천문화원 김승룡 원장은 환영사에서 “학술세미나에 참여하면서 또 한 가지 옥천문화원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조헌 선생이 의병 활동만 하신 게 아니라 대단한 군인이시고 시인이셨다”며 “자료를 찾고 번역해서 현대 시로 만들어내는 작업들을 해야 될 때가 된 것 같다”고 의지를 밝혔다.

곽호제 교수는 “조헌은 유학자, 관료, 교육자, 의병장의 길을 걸으면서 모순을 해결해 질서를 확립하려고 했다. 외부 세력의 위협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했던 철저한 경세가였다”며 “통치제도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상소를 통해 개혁안을 제시하였고, 특히 국방문제에 대해서는 민생의 안전을 바탕에 두고 다양한 의견을 피력, 조헌 자신 스스로가 몸소 실천하고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조헌의 인물과 생애, 군사문제에 대한 현실인식, 군정확보 등에 대해 설명했다.

이재하 지도위원은 상소가 중간에 차단된 이유, 충원된 군졸들에 대한 폐단 등 다양한 토론을 펼쳤다.

김종구 교수는 “중봉 조헌 선생은 도학의 계보를 잇는 진유(眞儒)로 학문과 문장 연마에도 부지런한 학자요 시인이었다”며 “의병장 조헌이 너무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보니 실제 문인(文人)으로서의 중봉은 마치 거목(巨木)의 그늘 속에 가려져 그 전모를 파악하지 못한 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봉시집(重峯詩集)에 수록 된 시는 권1에 103제 165수, 권2에 112제 167수로 총 332수가 된다”고 말했다.

전순표 관장은 “옥천이 문향의 고장으로 거듭나기 위해 조선시대 옥천 선현들의 유적지와 고향 등에 그 분들의 한시 시비 건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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