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웃들의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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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웃들의 천사
  • 최성웅 충북일보 전 논설위원
  • 승인 2019.10.1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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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웅 충북일보 전 논설위원

어느 날 천사가 우리 마을에 찾아 왔다. 천사는 초라하고 헐벗은 걸인의 모습으로 마을의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저마다 보기 흉한 걸인이 문 앞을 서성이자 문을 꼭꼭 걸어 잠그기에 바빴다. 천사는 그 마을에서 갈 곳이 없었다. 다만 가난하게 살고있는 한 소녀만이 걸인이 된 천사의 방문을 열어주고 따뜻한 밥과 국을 제공했다. 천사는 그날 밤 소녀의 집을 축복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천사는 내내 걸인의 모습으로 우리가 사는 마을을 서성이며 돌아다니고 있다. 천사는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손을 내밀어 도와주어야 할 회생(回生)의 길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여름에 나는 선배 가족과 함께 낡은 차를 한대 빌려 강원도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오래된 미니봉고였는데 이 차가 낡아도 보통 낡은 차가 아니라서 여행 초반부터 우리는 마음이 불안했다. 그래도 여행을 겨우 끝내고 밤 10시쯤 마지막 숙박지를 찾아 대관령 고개를 넘어가려는 순간 그만 덜컥 차가 길 한복판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의 난감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달은 밝아 주위는 대낮처럼 밝고 길가 개울을 따라 흘러가는 물소리만 요란한데 왜 그리도 밤 개구리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어대던지 아내와 나는 플래시를 밝혀 들고 고장 난 봉고 뒤편에 멀찌감치 물러서서 스쳐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말하자면 당신이 달려가는 차 앞쪽에 고장 난 차가 있으니 주의하라고 미리 신호를 보내는 뜻도 있었지만, 아울러 가능하다면 차를 세워서 고장 난 차를 봐주고 기술이 있으면 고장 난 부분을 고쳐달라는 구원요청의 몸짓도 담겨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나도록 한밤중 국도 위의 차량들은 무서운 속도로 지나가기만 할 뿐 한 대의 차도 우리들 앞에서 발길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내처 손을 흔들면서도 이게 무슨 부질없는 짓인가 싶어 쓴웃음만 나왔다.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지역이라 정말이지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몇 시간쯤 손을 흔들고 있을 때 갑자기 트럭 한 대가 와서 멈추더니 운전사가 대뜸 상의를 벗고 차에서 내려 우리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오히려 적극적인 모습이라 지레 우리가 겁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운전사는 겉보기만 우락부락하게 생겼을 뿐 참으로 세심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는 낡은 봉고의 뚜껑을 열고 이것저것을 들춰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아무래도 내 기술로는 안 되겠소. 고장도 보통 큰 고장이 난 것이 아니요” 그때 또 캄캄한 어둠 속에서 헤드라이트를 밝히며 택시 한 대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택시기사 또한 차의 엔진을 이리저리 손보더니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우리의 얼굴을 한동안 쳐다보더니 갑자기 차 밑에까지 기어들어가 한참을 부스럭거리며 무언가를 보는듯했다.

그사이 갈 길이 바쁜 트럭 운전기사는 떠나고 우리는 택시기사가 문제의 원인을 찾아 고쳐주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택시기사가 차 밑에서 나와 우리에게 말했다. “안 되겠소 더 늦기 전에 이차를 정비공장에 갖고 가서 고쳐야겠소. 내 차에 체인을 달고 이차를 천천히 정비공장에 끌고 갖다 놓고 다시 오겠소. 그동안 도로에 앉아 계시오. 그러면 내가 다녀와서 당신들의 목적지인 용평스키장까지 데려다주겠소” 그날 우리는 그 친절한 택시운전사의 약속대로 안개 낀 대관령을 무사히 넘을 수가 있었다. 안개가 무성하게 피어있는 대관령 산자락을 넘어가는 순간 나는 그 운전기사의 인간적인 따뜻함에 깊은 감명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정말 평범하고 소박한 우리 주변에 있는 이웃 중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천사란 그리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천사를 날개 달린 성스러운 모습으로 표현하고. 악마를 눈이 충혈되고 두 개의 뿔을 가진 흉측한 모습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실제의 천사는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천사가 실제로 날개를 가진 거룩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모든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그를 기꺼이 맞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악마가 혀를 날름거리는 흉측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우리는 악마에게 속지 않고 그를 먼저 피해버릴 것이다, 모든 천사들도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모든 악마들도 평범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예수가 다시 태어난다면 아마도 그는 내 곁에 살고있는 아저씨의 모습으로 태어날 것이며 부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천사들은 우리 주변에 있다. 바로 우리 이웃들의 얼굴에. 함께 부대끼며 이 복잡한 속세지옥을 견디며 살아가는 우리의 어깨 위에 천사는 언제든지 그 날개를 접고 쉬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조금 마음을 열어 이웃을 돕는 미덕(美德)으로 생활한다면 그것이 바로 천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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