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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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향
  • 현산 강민 화가
  • 승인 2019.10.1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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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산 강민 화가

귀향하면 왠지 개선장군이 나팔 불며 개선문으로 들어오는 것같이 객지에서 돈 많이 벌어 늘그막에 편안하게 살려고 귀향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겠지만, 패잔병이 고개 숙이고 축 늘어져 돌아오는 것 같이 늙어 형편이 어려우니 고향에서 조용히 검소하게 살려고 돌아와 외로워 보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살벌한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하고 퇴직 후 늘그막 향수의 그리움에 젖어 그저 고향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고 또 젊은이들이 복잡한 도심지의 닭장 같은 콘크리트 생활을 벗어나 자연과 어우러져 촌에서 살고 싶어서 귀향하는 분들도 많다. 이러나 저라나 모두가 한 고향 사람들이요 모두가 어우러지며 환영하고 보듬어야 고향이 발전하는 것이다.

나도 무엇이 되었건 그중에 한 사람으로 늦은 나이에 고향으로 돌아와 흙내음 풀냄새를 맡으며 새로운 직업 정원수를 기르고 평생 직업으로 삼았던 그림 예술 작가로 여생을 살아가려고 몇 년 전에 그토록 그립고 그리웠던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직은 고향이 도로 낯선 객지같이 사람들도 서먹서먹하니 더욱 조심하게 되고 왠지 이유 없이 부끄럽다고 해야 하나 까치가 남의 감나무에 새 둥지를 튼 것만 같은 느낌이지만 그래도 정든 고향이 너무 좋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물 많고 기름진 땅 먹거리가 많으며 인심 좋고 양반고을로 소문난 살맛 나는 옥천군. 우리나라 최초 묘목 단지가 조성된 곳으로 옛날 시골장이 섰던 이원면(구장 터) 이원리 현남이다. 대성산, 달의산, 장령산이 둘러싸여 병풍 같은 산세에 금강물이 굽이쳐 흐르고 국도 철도가 뻗어가 교통편도 좋으며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룬 온화한 동네로 봄이면 복사꽃이 만발하여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놓고 여름이면 복숭아 포도 옥수수 감자 등 먹거리가 흔하지 가을이면 황금 들녘에 고개 숙인 곡식들이 풍요롭지요. 겨울이면 과수원에는 눈꽃과 서리꽃이 피어 눈부시게 아름답고 동네 앞 도랑에서 물고기 잡아 매운탕에 어죽 끓여 먹고, 논배미 얼음판에서 친구들과 썰매 타고 놀다가 밤이면 늦게까지 밀린 숙제하며 새벽마다 뒷산 넘어 금강철교 건너오는 기관차 화통 소리에 눈 비비며 일어나 할아버지 밥상머리 교육에 밥은 먹은 둥 만 둥 책보자기 들쳐 매고 학교 가는 길 물레방앗간 돌아 징검다리 걸터앉아 고양이 세수하며, 피라미 중태기떼 모여 반갑게 인사하고 학교 종이 울릴세라 뜀박질로 학교 갔다 오면 책가방 마루에 내던지며 대문 옆에 걸려있는 풀 망태 등에 매고 나가면 하루해가 금새 저물어 해거름 집에 돌아올 때 황혼빛에 물든 도랑 물결 위로 물고기 떼 널뛰며 하루살이도 떠나기가 싫은지 눈가에 달라붙으려 성가스럽게 굴고 무거운 풀망태 등에 메고 둑 잔디밭 길 따라 걸어오면 멀리서 꼬리치며 마중 나온 자그마한 바둑이와 같이 큰 대문 들어서면 풀내음이 나는지 쇠양간 껌싱이와 누렁이는 입맛을 다시며 요란스럽게 구새통 긁어대고, 수고했다 하시며 도랑 가서 씻고 오라시는  어머니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담뱃대 뒷짐 지시고 사랑방서 나오시며 호박고지 걷어오라시는 호랑이 할아버지. 많은 형제 중에 꼭 나만 보시면 유난히 미워하셨던 기억들이 눈에 선하다.

일찍이 멀리 바닷가 경남 마산 객지로 나간 건 30여 년을 그림 그리는 전업 작가로 살다 몇 년 전 옥천 동이면 석화리로 귀향하여 미술관을 갖고 이원 묘목과 어울린 조경수를 기르기 시작하였다.

햇살이 따사롭고 황혼빛에 나뭇잎들 단풍 물들어지는 계절 삽자루 깔고 앉아 푸른 하늘 바라보니 인생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바람 따라가는 구름이요 색바래 떨어지는 낙엽이다.
이제 고향에서 뿌리내리고 여생을 보내다 눈 감으면 썩어 문드러져 흙이 되겠지. 귀향은 인생의 끝자락 종착역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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