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전 독일 대학에 한국어강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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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전 독일 대학에 한국어강좌가?
  • 김명순 약사
  • 승인 2019.10.24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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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순 약사

“선생님! 너무 어려워요.”라고 하면서도 한글을 열심히 배우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일제강점기시대 우리말 수호를 위해 목숨 바치신 분들이 하늘에서 보고 계신다면, 얼마나 감개무량하실까? 특히 이극로 선생님이 보시면 감회가 남다르실 듯하다. 그분은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입니다.”라는 대사가 압권인 영화 <말모이>의 주인공 실존 모델로, 1923년 독일 유학 중 프리드리히 빌헬름대학(현 훔볼트대)에 한국어강좌 개설을 요청하고 허가를 받아 1주에 3회 강의를 했었기 때문이다. 귀국 후엔 그 경험으로 말모이(1910년대 편찬된 최초의 현대적 우리말 사전 원고) 제작과 <조선어 큰사전> 편찬에 주축이 되셨다고 한다.

1942년 발생한 조선어학회사건 전후의 일들과 인물을 각색한 영화 <말모이>는, 일제에 강력히 저항했던 어문운동의 역사를 생생하게 재현해 벅찬 감동을 선사한다. 일본은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우리말을 금지시키며 민족정신을 앗아가려 도 넘는 일들을 획책했었다. 그러나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우리말을 지키면 반드시 민족을 보존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으로 일제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작성한 말모이는 영화와는 달리, 회원들이 경찰에 체포될 때 증거물로 압수되었다가 항소심을 위해 서울고등법원으로 보내진 상황에서 분실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광복 후 서울역 운송창고에서 찾아냈고, 그 원고를 바탕으로 <조선어 큰사전>이 편찬되었던 것이다. 어렵게 말모이를 작성하고 사전을 편찬한 어문운동은, 이념적인 독립운동이자 국권회복운동이었다.

만약 우리말을 수호하지 못했다면, 우리도 식민지를 경험한 다른 나라들처럼 피진(Pidgin)이나 크리올(Creole)이 된 이상한 말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유한 우리말을 지켜내신 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거듭 경의를 표해도 부족한 이유이다. 과연 이 세상에 자신의 민족 언어를 지키기 위해 죽음도 불사한 사람들이 얼마나 존재할까?

요즘은 한류 등의 영향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래서 대학교 부설 언어교육원, 정부산하기관,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비롯해 외국에선 세종학당 등을 통해 96년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의 많은 외국인들이 한글을 배우고 있다. 한편 성균관대학교는, 10년 넘게 중국·동유럽·중앙아시아·동남아시아 등의 지역에서 ‘성균 한글 백일장’을 개최해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 유학의 길도 열어주고 있다. 

유네스코에선 1990년부터 문맹퇴치에 헌신하는 이들에게 ‘세종대왕 문해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수여하는데, 세계적으로 한글의 우수한 가치가 인정받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상은 백성들의 문맹을 안타까이 여겨 훈민정음(음성언어였던 국어를 발음대로 표기할 수 있는)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높은 뜻을 기리고자 제정되었고, 우리나라가 지원하고 있다. 한글은 세계 여러 문자 가운데 유일하게 글을 만든 사람, 반포일, 창제원리까지 밝혀져 있다.

1940년에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국보70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한글은 발음기관을 형상화한 과학적 원리로 창제되었음을 증명하였다. 세종대왕이 직접 서문을 쓰고 신하들이 글자에 대한 설명을 적어 둔 그 책을, 몸 바쳐 지키신 간송 전형필 선생님과 <직지>를 세계에 알린 박병선 선생님도 역시 우리말을 지켜 낸 훌륭한 분들이다. 한글의 지난한 역사가 감사와 자부심, 우리말의 소중함을 깊이 깨닫게 한다.

외국의 어떤 교수는, 멋진 문자 한글이 나온 날을 그냥 보낼 수 없다며 제자들과 한글날에 자축연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우리말을 외국인들이 배울 때, 그 안에 담긴 우리의 얼과 문화도 함께 학습하므로 가치 있고 귀감이 되는 정신문화를 함양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또한 언어를 변화시키는 언중의 힘을 인식하며 기본을 지키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며 바른 언어생활에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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