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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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판타지
  • 박은주 시인
  • 승인 2019.10.24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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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시인

요즘 결혼식에 가보면 드라마 세트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화려하고 우아하다. 높은 천장에 샹들리에가 휘황찬란한 불빛을 뿜어내고 꽃으로 장식된 기둥이며 풍성하게 주름 잡힌 테이블보에 간접조명까지 분위기를 더한다. 결혼식 내용은 몇 십 년 전이나 다를 바 없지만 분위기는 압도적으로 세련되어졌다. 웨딩사진으로 병풍을 만들어 세우고 향초와 장미꽃잎, 반짝이는 구슬로 입구를 장식해 마음을 들뜨게 한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한 번의 이벤트를 위해 각고의 노력이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경락마사지는 기본이고 전신 피부미용을 받고 몇 백만 원을 들여 웨딩사진을 찍는다. 적당한 가격의 드레스를 입을 거라고 장담해도 일단 직원이 제일 비싼 것부터 보여주면 영업 전략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 눈이 호강하고 나면 낮은 레벨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요즘은 부케 받은 친구가 그것을 잘 말렸다가 조명을 장착한 유리 상자에 담아 신부에게 다시 전달하는 것이 유행이라니 웨딩시장의 아이디어 상품과 소비촉진 마케팅은 끝을 모르고 달려나간다.

나는 아직도 프러포즈 이벤트를 왜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결혼해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날짜까지 잡은 다음에 남자가 여자에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 하면 여자가 두고두고 원망한다나. 필요불가결한 것도 아닌 일회성에 돈을 쏟아붓는 것이 아까운데 이런 것들이 드라마의 영향이란다.

드라마야 환상을 그리는 것이 본분이니까 그렇다 해도 일상을 살아가는 서민들이 환상을 쫓아 한 달 생활비를 한 번의 이벤트로 날리는 것이 안타깝다. 왜 갈수록 결혼과 관련된 이벤트는 점점 규모가 커질까.

결혼 관련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많은데 결혼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예식장 뿐 아니라 드레스, 메이크업, 폐백, 여행사 등 관련 업체와 거기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인구는 계속 줄고 자발적 독신주의자가 늘어나고 어쩌다보니 혼자 살게 된 사람들까지 결혼 자체가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그러니 한 건의 결혼식에 최대한의 돈을 쓰도록 유도할 수밖에. 인생에서 단 한 번 겪는 사건이기에 적금을 털어 넣어도 아깝지 않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 아깝다고 느끼는 건 2~3년 정도 지나야 찾아온다.

내가 결혼할 때 모든 친구들이 웨딩사진은 절대 찍지 말라고 했다. 보지도 않을 거라 짐만 되고 나중엔 이불장 맨 밑에서 자리나 지킬 것이니 너무 아깝다고 했다. 몇 년 지나 사진을 보게 되면 어쩌다 이런 남자와 결혼했는지 울화가 치민다는 것이다. 나는 드레스를 입기 싫어서 전통혼례를 했고 웨딩사진도 찍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예식장에서 서비스로 준 여섯 장짜리 앨범을 나 역시 이불장 맨 아래에 넣어놓았으니까. 남편 친구가 찍어준 비디오는 한 번도 돌려본 적이 없고 지금은 어디 있는지 찾을 수도 없다.

왜 결혼식을 화려한 이벤트로 만들고 싶어 할까. 결혼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서로의 삶에 후원자가 되어주는 약속의 시간이 아니라 겉모습만 나날이 화려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와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 아닐까.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고 속이 꽉 차지 않으면 겉모습에 치중하게 된다. 결혼한 4쌍 중 1쌍이 이혼하는 세상이고, 내 집 마련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이고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져 당장 내일이 불안한 세상에 살고 있으니 공허하고 팍팍한 현실에서 찬란한 마법 같은 시간을 갖고 싶어 한다. 사회와 조직의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현실에서 그 순간만큼은 주인공이 되어 짜릿한 쾌감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결혼식에 다녀오면 뭔가 허전하다. 분명히 밥도 먹고 좋은 구경을 했는데 공허해진다. 시끌벅적하고 어수선한 뷔페에서는 밥이 어디로 들어갔는지도 알 수 없고 예식장 문을 열고 나오면 방금 전에 지나간 일련의 쇼가 신기루처럼 느껴진다. 밥을 먹었는데도 허기진다. 빚을 갚듯 봉투를 내밀고 뷔페로 직진하는 결혼식 말고 좀 더 소박하고 좀 덜 형식적인, 정말로 신랑신부를 아끼는 사람들이 모여 축하하는 결혼식이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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