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영의정의 삶?…신윤복 ‘평생도’를 통해 본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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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의정의 삶?…신윤복 ‘평생도’를 통해 본 일생
  • 임요준기자
  • 승인 2019.10.30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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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박물관 박희구 관장
신윤복 평생도 10폭짜리 병풍 소장
출생에서부터 노년까지 화폭에 담아
“들어보지도 못한 그림이 옥천에 있다”

250여 년 전 조선 후기 양반가의 삶은 어떠했을까?

최고의 관직 영의정의 일생을 그린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1758년~1814년경)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평생도가 안내면 가산박물관(관장 박희구)에 소장돼 있다. 신윤복은 단원 김홍도, 긍재 김득신, 오원 장승업과 함께 조선 4대 풍속화가로 손꼽힌다. 이 평생도를 통해 조선 후기 양반가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평생도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기념이 될 만한 경사스러운 일들을 골라 그린 풍속화다. 조선 유교사회에서 사대부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이고도 부귀한 인생행로를 형상화한 것이다. 높은 벼슬을 지내고 오복을 누뤘던 사대부의 일생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출생에서부터 장수한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린 그림. 내용은 크게 평생의례(平生儀禮)와 관직생활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평생도는 크게 8폭과 10폭, 12폭 병풍으로 돼 있다. 돌잔치, 혼인식, 삼일유가, 최초의 벼슬길, 관찰사부임, 판서행차, 정승행차, 회혼례 8폭을 기본으로 한다. 10폭 구성에는 돌잔치와 혼인식 사이에 서당에서 공부하는 장면이나 소과에 응시하는 장면이, 회혼례를 전후해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는 치임(致任) 장면이나 관직에 오른 지 60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회방례 장면이 추가돼 있다. 박 관장이 소장한 평생도가 바로 10폭으로 구성돼 있다. 12폭 구성은 다시 10폭 구성을 기본으로 해 서당과 소과 응시 장면이 모두 첨가된 후 회혼례를 전후로 치임이나 회방례 장면이 첨가돼 있다.

현존하는 평생도 형식에 영향을 받은 범본에 의해 분류해보면, ‘모당평생도(慕堂平生圖)’ 계열과 ‘담와평생도(淡窩平生圖)’계열, 이외 특별한 범본에 의거하지 않고 길상(吉祥)·진경(進慶)적 요소가 강화돼 그려진 평생도 계열로 나눌 수 있다. 모당평생도 계열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김홍도의 화풍을 따라 그려진 평생도이다. 모당평생도는 김홍도의 1781년 작으로 알려져 왔으나 김홍도풍으로 그리는 후배 화가에 의해 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까지 평생도의 가장 대표적인 형식으로 그려지고 있다.

담와평생도 계열은 19세기 초·중엽경 김홍도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은 화가군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평양감사 부임 장면이 특징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단순한 지방관 부임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당시 평양으로 대표되는 물질적 풍요와 번화함에 대한 동경을 담았다.
특별한 범본에 의거하지 않고 그린 평생도는 사대부의 한평생이 아닌 반평생을 소재로 하거나‘백동자도(百童子圖)’나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 등 다른 민화와의 습합이 나타나는 특징을 지닌다.

박희구 관장은 평생도에 대해 “농경도, 미인도, 안견의 몽유도원도,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는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지만 평생도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림을 통해 평생을 기념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닌 듯 싶다. 일생에 평생도를 그릴 수 있는 위치라면 가장 위대하고 행복한 사람일 것”이라며 “남아있는 평생도가 그리 많지 않아 귀할 수밖에 없다. 그런 평생도가 옥천 가산박물관에 있다”고 의미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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