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 가족” 무회리 사람들
상태바
“우리는 한 가족” 무회리 사람들
  • 도복희기자
  • 승인 2019.10.30 18: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성면 무회리 폭주족 할머니들의 인생길
60년 희로애락 함께한 내 인생의 동반자

18, 19홉에 시집와 한동네에서 살아온 지 60여 년이 다 되어간다.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남편 대신 시부모 모시고 자식들 키우느라 안 해본 것이 없다. 철마다 산에 나는 고사리며 산나물 꺾어 이고지고 청산장에 내다 팔았다. 고추, 담배농사 자식들 입에 먹을 것 챙기려면 구석진 땅이라도 모조리 일궈야 했다. 가난하고 가진 것 없던 시절 이웃이 있었기에 굽이굽이 산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 험난한 인생길에 큰 힘이 되었다. 이제 80을 바라보는 나이, 자식들은 독립해 외지에 나가 살고 무회리에 남은 어르신들은 노인회관에 한 끼의 식사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비록 반찬은 호박된장국에 김치와 김, 장아찌가 전부지만 같이 먹을 수 있어 편안하다. 혼자 먹으면 도통 입맛이 나지 않아 한두 숟가락 뜨다가 내려놓을 것도 같이 먹으니 맛나다. 지나간 얘기로 웃음 한 보따리 얹어놓으니 점심은 배부르게 먹게 된다. 얼굴빛만 봐도 무엇이 불편한지 알고 있단다.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한평생 이었듯이 앞으로도 서로를 챙기며 살아갈 거란 그분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가을 하늘이 유난히 푸르고 드높은 날 청성면 무회리를 찾아갔다. 주홍빛 감이 가지마다 풍성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무회리 4총사 그리고 유길석 어르신
청성면에 귀촌한 권종현 씨로부터 몇 장의 사진을 받았다. 전동차를 타고 가을날 도로를 달리는 네 분 어르신들의 환한 얼굴을 담은 사진이었다. ‘무회리 폭주족 할머니들’이라고 제목을 달았지만, 그분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사진이었다. 최영림, 신삼순, 박정순, 최팔순 어르신들 모두 무회리로 시집와 지금까지 마을을 지킨 장본인들이었다.
최영림(75) 어르신은 18살에 7남매 맏이로 시집와 3남2녀를 두었다. 남편이 50세 되던 해 하늘로 돌아가고 시할머니, 시아버지 시어머니까지 모시며 자식들을 키웠다. 이제 5남매를 출가시켜 손자 손녀가 11명이다.
최 어르신은 “살아 있으니까 살았다. 사는 거라니까 살아온 세월이었다”며 “깨농사, 담배, 고추 농사는 물론이고 올뱅이(다슬기) 잡고 고사리 꺾고 칡 캐고 안 해본 것이 없다”고 힘들었던 지난날을 회상했다. 이어 “애들도 같이 고생해서 늘 가슴이 아팠다. 지금은 자식들이 우리 엄마같이 고생한 사람 없다고 알아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전했다.
신삼순(78) 어르신은 19살에 시집와 43년간 담배 농사를 지었다. 남편은 73세에 돌아가시고 3남2녀 자식들은 교사로, 회사원으로 직장생활을 하러 도시로 나가 지금은 무회리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손자, 손녀에 증손녀까지 모두 7명이 있다.
신 어르신은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행복한 시절이었다”며 “무회리는 복 받은 동네다. 친구들과 같이 있으니 좋고, 귀촌한 분들이 이곳에 들어와 북 치고 장구치고 노래도 하며 재밌게 산다”고 말했다.
박정순(82) 어르신은 21살에 시집와 2남3녀를 두었고 손자, 손녀가 10명이다. 혼자 살고 있지만 큰아들(김재섭·56)이 자주 와서 돌봐 주고 친구들도 옆에 있으니 편안하게 지낸다고 했다. 박 어르신은 “우리 아들, 사랑하고 손자 손녀들 모두 사랑한다”며 “모두들 건강하면 된다. 더 바랄 게 없다”고 전했다.
최팔순 (85) 어르신은 고향인 대한리에서 19살에 시집와 2남1녀를 두었다. 손자 손녀 6명이 있다. 최 어르신은 “무회리는 공기 좋고 인심이 좋다. 아침마다 지팡이 짚고 와서 죽었나 살았나 서로 들여다보고 안부도 묻는다”며 “이렇게 살다 누구 하나 먼저 가면 날개가 떨어진 것 같이 슬플 거라고 죽기 전에 지금처럼 재밌게 살고 싶다”고 했다.
네 분의 인터뷰가 끝나고 돌아서려고 하자 마을회관에 가장 나이 드신 유길석(90) 어르신이 자신은 빼놓았다고 붙잡는다. 18살에 시집와 3남2녀를 두었고 손자 10명에 증손 5명을 두었다고 하신다. 유 어르신은 “일정 때 태어나 콩깻묵 썩은 것 먹고 맨발로 다니며 일본에서 나무까지 공출해 가서 한겨울 방안의 물이 얼 정도로 춥고 배고프게 살아온 세월이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마을봉사자 신명희·정태선 씨
신명희(69)·정태선(63) 씨가 노인회관에서 점심식사 준비를 도왔다. 호박잎 된장국을 끓이고, 고들빼기 김치에 무장아찌와 김, 삭힌 고추가 반찬으로 차려졌다. 신 씨는 10일간은 군 지원수당을 받고 일하지만 25일은 봉사로 점심 준비를 하고 있다. “경로당 살림은 정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해 고춧가루며 들기름, 간장, 고추장 등은 각자의 집에서 가져오고, 시골이니까 채소는 돌아가면서 어르신들이 있는 대로 가져와 해 먹는다”고 말했다. 이어 “혼자 사시는 분들은 혼자 먹으면 입맛이 없어 점심, 저녁을 이곳에서 여럿이 해 먹으려고 한다”며 “부식비 지원이 되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신 씨는 “어르신들이 잘 드셔서 행복하다. 잘 드시고 건강하게 지내시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무회리
무회리는 장수리 북부에 위치한다. 보청천이 동쪽에서 유입해 무회를 휘돌아 서쪽으로 흘러가는 반도 같은 지형이다. 동쪽은 산계리와 장수리, 남쪽은 광주리산을 경계로 양저리 북단과 삼남리, 서쪽은 양저리, 북쪽은 보청천을 경계로 구음리 구비와 거포리 남단과 접한다. 석회석 동굴인 강절굴과 게르마늄 약수공장이 있다. 이곳은 산이 높고 물이 맑아 그대로 지나쳐도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노자의 모든 것을 비우고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 무위자연과 같은 고장이라 무회로 지었다고 한다. 자연마을은 무회, 소그리미(소운동), 점동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