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寄附) 앤 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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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寄附) 앤 테이크
  • 박은주 시인
  • 승인 2019.10.30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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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시인

새벽 운동을 마치고 샤워기 아래 서면 나도 모르게 참 고맙다는 말이 나온다. 한 겨울 추위에 떨다 따뜻한 물을 만날 때는 그 온기에 고마움이 더해질 때가 많다. 수돗물이 내 집 욕실까지 올 수 있도록 손을 보탠 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물이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수도를 설치하고 보일러를 만들고 에너지를 공급하는 수많은 손길과 노고도 생각한다. 예전에는 따뜻한 물을 쓰기 위해 솥에 물을 데우고 바가지로 퍼서 썼으니 그때에 비하면 놀랍도록 좋아졌다. 그런 때면 마실 물이 없어 죽어가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생각나 마음이 아프기도 한다.
매달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몇 군데 사회복지단체에서 소식지를 보내오기 때문에 먼 나라 이야기 같은 사정을 잊고 있다가도 바라보게 된다. 소식지를 우편으로 받는 것이 아깝다고 느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요즘은 메일로 받기를 선택할 수 있다. 기온이 낮아지고 바람이 차가워지면서 우리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부를 유도하는 홍보활동이 많아졌다.

기부금 체계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는 비율이 전체 기부금의 20%도 안 된다고 소용없는 짓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기부금을 조성하는 한 TV 프로그램도 회선 사용료, 출연료, 제작비 등을 제외하면 남는 것이 없다고 하면서 방송국 이미지를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복지재단이 많아도 건물 유지비, 인건비 같은 것을 계산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20%라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매달 꼬박꼬박 기부금을 보낸다. 기부금 사기 사건처럼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악용하는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누군가의 생명을 지탱할 소중한 양식이 될 것이라 믿는다.

나도 성금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는 연말연시를 맞아 직원들이 모은 성금을 어려운 동료 직원에게 전달하는 행사가 있었다.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지 3년쯤 되었을 때 아버지도 폐암 말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검사비와 치료비, 입원비로 돈을 다 써 버린 데다 다른 형제들은 부모님을 모실 형편이 안 되어 내 집으로 모셔왔다. 아버지의 병은 갑작스레 발견된 것이었다. 기침 때문에 동네 병원 세 곳을 다녔지만 모두 감기라고 했고 X-ray도 찍었지만 어디서도 암을 발견하지 못했다. 사무실 일도 힘들고 여러 가지 신경 쓸 일이 많아서 나도 몸이 몹시 안 좋았는데 그런 사정이 알려져 성금을 받게 되었다. 그때의 기분이란 고맙기도 하지만 역시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낫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내가 받은 많은 것들을 생각한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처럼 무수한 사람들의 수고로 지금은 편하게 살고 있다. 밤새워 옷을 지어입거나 개울로 빨래를 하러 가지 않아도, 물을 길러 우물을 찾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되었다. 힘들다고 투정하고 싶어지면 성금을 받았을 때 느꼈던 마음을 떠올리며 자신을 가다듬는다. 수도요금을 내니까 당연히 쓸 수 있는 것 아니냐, 매년 구세군 냄비에 얼마간 넣으니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 사회 전체를 통해 도움을 받는 기분이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나 혼자서 댐을 만들고 지하수로 공사를 하고 보일러를 만들어 설치할 수는 없다. 대그룹 회장이라 해도 직접 바퀴를 교환하고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해 집하장까지 갖다놓을 수 없으니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껴야 한다. 내가 나로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손길이 꼭 필요하다.

보상을 바라지 않는 도움이라도 일단 받으면 마음에 빚이 생긴다. 꼭 그 사람에게가 아니라도 도움이 필요한 다른 이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든다.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을 찾아 일하기를 원한다. 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제공할 노동력이 있고 거기 맞는 정당한 대가를 받는 일이다. 주위 사람들의 격려와 지원이 그들을 일으켜 세운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면 샤워하는 짧은 시간마저도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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