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땅 미얀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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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땅 미얀마(1)
  • 김은주 ㈜디에스퍼니처 대표
  • 승인 2019.10.3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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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디에스퍼니처 대표

한 장의 사진을 보고 10년 전 미얀마로 떠났다.
사진을 찍기 시작하고부터는 캐리어에 멋진 여행을 꾸며줄 옷, 가방, 액세서리 대신 그 자리에 카메라와 렌즈, 주변기기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카메라 풀세트의 무게를 견딜 만큼 젊음과 열정이 있었기에 카메라의 무게 따윈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길고 복잡한 역사를 가진 미얀마
13세기에는 몽골과 포르투갈의 침략을 받기도 했다. 19세기 말에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에 3년간 점령당했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였다. 미얀마는 버마족이 70%를 차지하고 그 외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자는 오랜 역사를 가진 버마문자를 쓰고 있다. 미얀마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는 없는 인물이 아웅산 장군인데 1940년대에 미얀마의 독립을 위해 일본군과 싸웠다. 그의 딸 아웅 산 수지 여사는 군부 정권과 싸운 공을 인정받아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지만 가택 연금되어 시상식에는 참석할 수 없었다. 2013년에는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황금의 도시 양곤
미얀마에서 가장 큰 도시 양곤에 도착했다. 공항에 내리면 버릇처럼 냄새를 맡는 습관이 있다. 각 나라마다 독특한 냄새가 있는데, 미얀마는 불어오는 바람 속에 눅눅함만 묻어 있었다.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고 환전을 하러 택시를 탔다. 문을 여는 순간 정말 놀랐다. 차 바닥은 녹이 슬어 발을 올려놓는 순간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았다. 시트는 벌거벗은 채로 골조가 보였다. 우리나라 폐차도 이보다도 훨씬 나을 지경이다. 시동을 켜는 순간 부스러질 것만 같은 택시에 몸을 싣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환전소로 향했다. 시내 주위를 살펴본 뒤, 미얀마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황금사원이 있는 ‘쉐다곤 파고다’로 향했다. 불상이 상당히 크고 장소가 넓다는 것, 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있다는 것 외엔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쉐다곤 파고다는 밤이 더 아름답다는데 아쉽게도 보지 못하고 양곤을 떠났다.

미얀마의 심장 바간
굳이 비교를 하자면 우리나라 경주 같은 곳이랄까..
매일 아침 열기구가 떠오르고, 여행객들은 맘에 드는 석탑에 올라 일출을 맞이한다. 어두웠던 하늘이 서서히 푸른빛으로 바뀌고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 얼굴은 주홍빛으로 물든다. 햇살이 퍼지면서 주변에 낮게 깔린 안개 사이로 수많은 석탑들은 가부좌를 틀고 있다. 지금은 석탑에 오르는 것을 원칙적으로 막고 있다고 한다. 밀려오는 관광객들마다 석탑에 오르려 하니 당연한 조치라 생각되지만 여행자 입장에서는 무척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사진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아난다 파고다’를 찍기 위해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그곳으로 가려면 마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하루 종일 이용하는데 4000원 정도였다. 마차를 가질 수 있는 자격은 왕족의 피가 흘러야 한다는데 동행한 마부는 점잖고 말과 행동에 깊이가 있었다. 왕족답게...내가 방문했던 바간의 시기는 11월이었는데 장마 끝 무렵이었다.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그곳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고요해서 난 더 좋았다.
하루 종일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는 어둠이 살포시 내려앉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노래가 흘러나왔다. ‘10월에 어느 멋진 날에’ 마부가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더니 묻는다.
힘들지 않냐고. 전혀...
행복한 하루를 동행했던 마부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수고비로 두 배의 값과 저녁 식대를 드리고 숙소로 돌아왔다.
사진 찍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준 바간에서 만난 한국 여행객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큰 나무 밑에 놓인 나무 식탁 위로 호롱불이 켜지고, 그 위에 미얀마 전통음식과 술과 티가 차려졌다. 간간이 식탁 위로 낙엽이 떨어졌다.
오고 가는 즐거운 대화, 끈기지 않는 웃음 소리...
우리를 충분히 행복하게 했던 바간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저녁을 같이 했던 J가 새벽에 방문을 두드린다. 손이 너무 가렵다고 호소를 한다. 손목부터 손가락 끝까지 얼마나 긁었는지 피가 나고 있었다. 진료소에서 의사를 만났다. 거리의 동물을 만진 일이 있냐고 의사는 물었다. J는 미얀마에 오기 전 태국의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는데 그곳에서 기르는 개를 오고 가며 만졌다고 한다. J는 다니던 방송국을 그만두고 세계 일주 중이었다. 도중에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갈 뻔한 사건이었다. J는 5일분의 약으로 가려움증을 해결했다.
우린 서로의 여행이 안전하고 성공적이길 빌며 각자의 길에 올랐다.

하늘의 호수 인레
인레 공항에 내렸다. 비행기에서 내려진 캐리어는 소달구지에 운반되고 있었다. 이미그레이션은 공항 한쪽에 자리 잡은 달랑 책상 하나였다. 외교부 직원이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낡은 공책에 여행자들의 여권을 펼쳐 인적사항을 적고 있었다.
그래 여긴 미얀마지...
인레 호수 근처 마을로 가는 트럭 택시 뒤에 앉아 지나가는 소떼를 만났다.
천진스러운 아이들과 손인사를 나누며 인레 속으로 들어갔다.
사실 이 지역은 ‘냥쉐’라는 지명이 있지만, 하늘의 호수라고 불리는 인레 호수의 아름다움으로 알려진 곳이라 인레로 더 알려져 있다. 호수에는 17개의 수상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호수를 중심으로 다채로운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른 아침, 작고 긴 배를 타고 물안개가 자욱한 몽환적인 분위기의 호수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물안개가 걷히니 고기 잡는 어부들이 보인다.
호수의 아들이라 불리는 인따족들의 노 젓는 방법은 참 독특하다. 발로 노를 젓고 손으로는 통발로 고기를 잡는다. 넓은 호수에서 방향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신기하고도 아슬아슬하다. 발로 노를 저어 열심히 고기를 잡는 것을 한참 보고 있노라니 삶의 엄숙함마저 느껴진다. 인따족의 독특한 고기 잡는 모습으로 세계의 여행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인레 호수에는 또 ‘쭌묘’라는 독특한 수경재배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대나무와 갈대, 부레옥잠을 이용해 물 위에 밭을 만들어 토마토와 채소를 재배해 전국에 공급한다고 한다. 방울토마토보다는 크고 일반 토마토보다는 작은데 그 맛은 일품이다.
물 위에 떠 있는 파웅도우 사원으로 가던 중, 배를 타고 마을로 탁발을 하러 가는 동자승들도 만날 수 있었다. 배 위에서 바루를 안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인사를 한다.  밍글라바...
운이 좋았다. 인따족의 성지 ‘파웅도우 파고다’에서 열리는 축제 기간 마지막 날에 참석하게 되었다. 불상을 실은 황금 배 행렬은 장관이었다. 마을 대표로 뽑힌 젊은 남자들은 배에서 춤을 추며 흥을 돋우었다. 마을 사람들은 공양할 꽃과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5개 중 4개 불상이 18일간 여정을 마치고 파고다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의미심장한 나눔과 베풂의 축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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