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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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의 추억
  • 동탄 이흥주 수필가
  • 승인 2019.11.08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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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 이흥주 수필가

동이면 가덕여울은 보통 더디기여울이라고 불렀다. 이 여울은 더디기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여울로 나에게도 더디기여울을 빼고는 강 이야기가 안 될 정도로 나와 가까이에 있는 여울이다.

강이라는 것은 강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또한 불편을 주기도 한다. 가장 큰 불편은 외부와의 단절이다. 큰물이라도 나면 빤히 보이는 강 건너가 천리다. 그 강을 건널 수가 없으니 산길로 해서 외부로 나가야 한다. 겨울에 얼음이 얼어 배를 놓지 못하고 얼음을 탈 수도 없을 때에는 여울이 통로 역할을 한다.

아무리 추운 날에도 그 여울을 건넌다. 겨울에 여울을 건너다보면 흘러내리는 얼음장들에 허벅지와 장딴지를 긁혀서 채칼로 친 것 같이 상처가 나기도 했다. 아주 추운 날은 여울을 건너서 강가로 나오면 발바닥에 자갈이 쩍쩍 들러붙었다. 그런 때 여울을 쳐(건너) 보아야 진짜 겨울 여울 건넜다는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겨울 여울은 처음 들어갈 때만 이를 악물고 참으면 한참 후엔 다리감각이 마비돼서 나중엔 시린지 저린지 분간도 못한다. 여울을 다 치고 나서 빨갛게 언 다리에 마비가 풀리고 나면 신기하게도 그렇게 시원하고 개운할 수가 없었다. 그 시원한 기분 때문에 고통을 참고 여울을 건넌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로 우리 동네에 사는 한분은 다른 사람이 하도 추워서 건너길 거리낄 때도 유독 여울을 잘 건너다닌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 별명을 동네사람들이 개구리라고 붙여 주었다. 개구리처럼 물을 좋아한다고 붙인 별명이다. 그 사람도 겨울 여울 건넌 후 이 시원한 기분 때문에 남들이 건너길 거리끼는 여울을 그렇게 잘도 건너다닌 건 아닌지 모르겠다.

누가 헛소리를 하면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 한다고 했었다. 강가 사람들은 도깨비들도 여울을 건너다닌다고 말했다. 노래를 시켜서 못하면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라도 해보라고 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동네 사람 중에 도깨비들이 늦은 밤에 여울을 건너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술 취한 사람이 헛것을 보았거나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했지만 어릴 땐 그 이야기를 그대로 믿었다.

겨울엔 나뭇지게를 지고 하루에도 두어 번씩 여울을 쳤다. 그리고 살을 매어 밤에는 살에 걸린 고기를 따러 어른들은 몇 번씩 여울에 나갔다. 또 더디기여울엔 내가 어릴 때부터 보를 막아 물레방아를 놓아서 거기에서 방아를 찧었다. 그 물레방아가 동네 방앗간으로서 임무를 마친 것이 대청댐이 생기고 부터다. 그 후 대청댐은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첫째는 그 여울을 빼앗아 갔다. 둘째는 아름다운 모래밭을 앗아갔다. 셋째는 강다운 모습을 망가트렸다.

여름 장마에 강물이 불어 물레방아를 돌리지 못할 때에는 할 수 없이 안남 쪽으로 나무배에 보리나 나락가마니를 싣고 몇 집씩 어울려 방아를 찧으러 갔다. 안남 쪽 방앗간에 방아거리가 밀리면 며칠씩 걸릴 때도 있었다. 한번은 동네사람들이 그곳으로 방아를 찧으러 가다 물살이 센 여울에서 나무배에 물이 차 곡식 가마니를 전부 물에 빠트린 적도 있었다. 그걸 꺼내서 강가에서 말렸다. 고단했던 강가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이런 것에서 엿볼 수 있었다.

더디기여울은 봄부터 가을까지 올뱅이를 줍는 곳이기도 했다. 여울 올뱅이가 다른 곳에서 잡은 것보다 구수한 게 맛이 더 좋았다. 그 여울 올뱅이를 삶아서 탱자나무 가시로 알을 까먹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24절기 중 곡우쯤 밤에 여울에 나가 활채(강바닥을 쓸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그물 망)로 쓸면 ‘꽃고기’라는 게 많이 잡혔다. 많이 잡힐 땐 몇 사발씩 잡았는데 비가 오려고 구름이 끼고 저기압인 날 많이 잡혔다. 몸길이가 어른 새끼손가락만 해 배도 따지 않고 고추장에 버무려 소주 안주로 많이 먹었다. 봄 산란기에 여울가 얕은 곳 작은 돌을 뒤집으면 동자개가 엄청 많았다.

알을 낳기 위해 여울 얕은 곳으로 모여든 것이다. 그런 것들이 대청댐으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돼서 그런지 통 보이지를 않는 것 같아 너무나 안타깝다.

강에 나오면 힘차게 흐르는 여울 물소리, 그 소리는 강에 생명을 불어넣는 소리였다. 밤에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청량감과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는 말처럼 정체됐던 강물이 여울에 이르러 다시 생명력을 얻는다. 대청댐이 생긴 이후에 그런 여울의 모습이 사라져 아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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