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옥천의 금수강산 보오리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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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옥천의 금수강산 보오리에 산다
  • 도복희기자
  • 승인 2019.11.14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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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북면 보오리, 옛 이름 복골
마을자랑비 세우고 오손도손

네비게이션에 ‘보오리 마을회관’으로 검색하니 나오지 않았다. 이장님께 전화로 어떻게 찾아가야 하나 물으니 ‘군북면 옥지로 397’ 도로명 주소를 알려줬다. 옥천읍에서 차로 15분 정도의 거리였지만 마을은 또 다른 세상처럼 조용하고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졌다.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주민들이 오랫동안 소원했던 마을 현판과 자랑비가 세워진 날 보오리에서는 한바탕 잔치가 열렸다. 햇빛 눈부신 가을날 그곳에 갔다.

△가을날의 잔치
산으로 폭 둘러싸인 마을 보오리에 지난 8일 마을자랑비 개소식이 있어 찾아갔다. 산길을 한참 들어가니 마을 입구 ‘보오리’라고 쓴 커다란 돌비석 현판 앞에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주민들(이재성(71), 김광국(56), 김수복(58), 김종운(56), 이기석(55), 장귀석(57) 등)과 관계자들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절을 올리고 서로의 덕담이 오고 갔다. 마을회관에서는 부녀자들이 국수와 수육을 삶고 모두가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민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손을 걷어부쳤다. 음식을 만들고 나르며 서로 간의 안부를 묻고 마을의 평안을 기원했다. 팍팍한 세상에 아직까지 인정이 그대로 살아있는 모습이었다. 박희성(55) 이장은 “마을비가 있기는 한데 너무 작고 옹색해 오랫동안 주민들의 숙원사업이었던 마을의 자랑비를 세우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며 “우리 세대가 가더라도 이 비는 이곳에 남아 마을을 그대로 지켜줄 거라 믿는다”고 기뻐했다.

△마을 자랑비
다음은 자랑비의 내용이다. 보오리가 한눈에 그려진다.
“옛부터 우리나라를 금수강산이라 일컸었던가. 비단병풍처럼 둘러쳐진 높고 낮은 산과 들꽃이 만발하는 고장. 북으로는 고성재(할미성)가 마을을 지켜주고, 그 밑으로는 참샘골이란 차가운 물이 손발이 시리도록 솟는 샘물이 있다. 남으로는 두껍산이 마을을 내려다보며 서로는 금강상류인 서화천이 굽이쳐 흐르는 곳. 크고 작은 논밭에는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고장. 소박한 인심에 웃음꽃이 떠날 줄 모르는 자그마한 마을. 이곳 복골이야 말로 금수강산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 마을은 군북면 지오리로 되었으며 8·15 해방 행정상 보오리로 되어 지금도 복골이란 이름은 변함이 없다. 고성재(할미성)의 성터는 일천삼사백년 전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서쪽 환산(고리산)의 성과 성곽이 같은 것으로 볼 때 봉화를 올렸던 곳으로 추정된다. 약 500년 전에 동네가 들어섰으며 150여 년 된 은행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인 양 동네를 굽어보고 있다. 단합이 잘되고 인심 좋은 자그마한 금수강산 복골! 앞으로도 영원하리라”

△한편의 시(詩)에 그려진 보오리
마을길을 따라 더 올라가니 한 귀퉁이 작은 비석에 시 한 편이 새겨져 있다. 류재길 씨의 ‘대청호야 돌려다오’라는 시로 보오리에 대한 그리움과 마을의 정취를 노래하고 있다.

고향 냇물에 풍덩텀벙 멱-감으며
덤 바위서 세길 뛰어 두길 물속 드나들고
먼저 가려 쭈욱 뻗은 발 냅다 튀는 모래마주
돌아내려 흐르는 해질녘에 낚시터에는
하루살이 잡으려고 뛰어오른 은빛 잔치
두 마리다 야아 세 마리 휘어지는 대낚피리

봄이 오면 냇물 따라 천렵하는 노래소리
어두우면 아낙네들 땀 내리는 첨벙소리
징게미 잡고 다슬기 주우며 미소 짓던
듬뿍 정든 우리 냇물 흔적 없이 가져가니
대청호야 돌려다오 보고 싶은 복골냇--물

△보오리 주민들
현재 보오리에는 23가구 5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귀촌인이 5가구 나머지는 현지인이다. 박희성 이장은 “모두가 화목하고 가족적으로 지내고 있다”며 “오늘은 주민들이 오랫동안 이야기하고 합의해 온 마을 현판과 자랑비를 세우고 그 개소식을 하게 되어 더없이 뜻깊은 날”이라고 기뻐했다. 박 이장은 죽향초 65회 졸업생이고 옥천중과 충북산업과학고등학교(전 옥천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옥천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한동네에 살고 죽향초 동창인 이기석(55) 씨는 “박희성 이장은 50년 넘게 봐온 친구다. 모든 일에 적극적이며 특히 마을 일에 헌신과 노력으로 일해오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귀석(57) 씨는 대전과 무주에 살다가 이곳으로 왔다. 그는 “이 마을에 이종사촌 친척이 살고 있어 어린 시절 많이 온 곳”이라며 “몸이 아파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을 찾아 자연스럽게 이사하게 되었다”고 했다.
천정애(82) 어르신은 22살에 이곳 보오리로 시집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딸 다섯에 아들 둘을 낳아 먹이고 키우느라 누에치고, 담배 농사지으며 땅만 파고 살았지만, 마을 인심이 워낙 좋아 한세상 살아왔다”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육방자(89) 어르신은 16세에 보오리로 시집와 4남 4녀 8남매를 낳아 키웠다. “44살에 혼자되어 8남매를 성장시킨 이곳 보오리는 예전에는 길도 작고 소로 농사지었는데 비가 안 오면 벼도 심을 수가 없어 고생이 많았지만, 복 많은 동네로 인심이 좋아 서로 나눠 먹고 일도 도와주며 했다”고 옛날을 회상했다. 어르신은 자식들이 건강하고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뿐 이제 아무것도 바랄 게 없다고 했다. 박희성 이장이 셋째 아들이란다.

△보오리는
보오리는 지오리 북쪽에 위치하는 중산간 마을이다. 동쪽은 할미성이 있는 산줄기를 경계로 국원리, 남쪽은 산지로 용목리와 접한다. 서쪽은 서화천을 경계로 환평리, 북쪽은 산지로 추소리와 각각 접한다. 보오리는 복골이라 부른다. 보오골로 발음해서 클 보(甫)에 다섯 오(五) 자를 써서 보오리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행정리는 보오리이며 자연마을은 복골이 있다. 주요 성씨로는 경주김씨, 경주석씨, 전주이씨 등이 누대에 걸쳐 살고 있다. 큰덕골, 찬샘골, 두껍산, 떼방골, 명지골, 장고개, 할미성, 고성(古城)재가 주요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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