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옥천의 명소로 많은 탐방객이 손쉽게 찾는 관광지로 옥천군 안남면 연주리 둔주봉에서 내려다본 한반도 지형과 군북면 추소리 12폭 병풍바위로 불리는 ‘부소담악’ 절경지가 각광을 받고 있고 ‘옥천9경’ 경관지도 또한 앞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옥천관광의 명승지로 자리 잡은 안남면의 둔주봉은 그곳 산정에서 내려다본 강 건너 동이면 청마리 갈마골의 지리적 지형이 마치 한반도 지형처럼 생겨 더욱 신비감을 자랑한다. 이곳 둔주봉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은 대청호의 아름다운 산수풍광과 어우러진 ‘한반도 지형’은 감탄과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둔주봉은 옥천군 안남면 면사무소가 위치한 와촌 서쪽 독락정 뒷산으로 해발 383m로 금강이 이 둔주봉 산기슭을 남쪽에서 서편으로 감싸 안고 굽이쳐 흘러 그 절경이 빼어난 풍광을 만든다. 이와 함께 금강 기슭은 깎아지른 층암절벽을 이루는 경관지이다.
이 산의 지명은 한국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지도에 ‘둔주봉’으로 표기하였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둔주봉’으로 불려진다. 둔주봉은 120여 년 전인 1900년 전후에 편찬된 지리서인 『조선지지(朝鮮地誌)』에 한자로 두우봉(斗牛峯)이라 기록하였고 한글로는 ‘둥쥬리봉’ 이라 기록하였다. 두우봉(斗牛峯)은 예부터 주민들에게 전해오는 ‘듕주리봉’에서 유래하여 한자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그 당시 ‘둥쥬리봉’을 한자화 하며 둥쥬리봉 <두우봉(斗牛峯) <둔주봉(屯駐峰)으로 음운변화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안남면 초계 주씨(周氏) 종중에서는 옛 조상들께서 족보 출판 때 등주봉(登舟峰)으로 한자화하여 기록하였다.
한편 주민들은 ‘둔주봉’을 이 산 형태가 둥실 둥실하다하여 보통 ‘둥실봉’으로 음운학상 쉽게 부른다. 둔주봉 정자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산수풍광은 금강이 휘돌아 가며 만든 한반도 지형이 펼쳐져 사시사철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둔주봉의 문화유적으로는 정자에서 서쪽으로 50m 떨어진 383m 정상에 삼국시대 산성으로 테미형 신라계 토성인 있다. 이 둔주봉산성은 이 산 서쪽 금강의 피실 나루를 통해 동이면 석탄리와 안남면 연주리를 통행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기 위한 망대나 망루지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산성은 조망권이 좋아서 동쪽으로 안남분지가 한눈에 들어오며 남쪽으로 독락정과 갈마골나루, 동이면 청마리 청동과 갈마골 마을 등 해발 4~500m 산지와 서측으로 피실나루를 감시하기에 전망이 좋다.
▲공자의 군자삼락에서 독락정 유래, 주몽득 장군, 조선인 포로 1천명 송환
둔주봉 남동쪽 금강 기슭에 절충장군 중추부사를 지내며 임진왜란 때 참전했던 주몽득(周몽득) 선생이 이곳에 아름다운 정자 독락정을 짓고 후학을 가르쳤다. 이 정자는 정면 3칸에 측면 2칸으로 팔작 형태의 목조 기와집으로 주변이 청량하고 경관이 빼어나서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다. 독락정(獨樂亭)은 공자의 『논어』 군자삼락 중에서 첫 장에 나오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 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학이편(學而篇)의 글귀에서 따왔다. 주몽득 선생은 임진왜란 직후 일본에 외교관으로 가서 조선인 포로 1,000여 명을 송환해 온 충신이다.
연주리 안남 면사무소 앞 넓은 잔디 광장에는 연주리의 옛 지명 ‘배바우’를 상징하는 커다란 ‘나룻배와 여인’이란 상징적 조형물을 만들고 안남면 각 마을에서 가져온 돌로 석탑을 만들어 놓아 신선한 정취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