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 들어오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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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들어오던 날
  • 동탄 이흥주 수필가
  • 승인 2019.11.2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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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 이흥주 수필가

사십년도 넘은 옛날을 회상해보려 한다. 시골은 모두가 희미한 호롱불 밑에서 살 땐데 어느 날 우리 동네도 전기가 들어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첨엔 맡기지 않았지만 그게 차츰 현실이 되어갔다. 옥천금강유원지 쪽에서 전기를 끌어오는데 우리 동네까지 여섯 개 부락이 선정된 것이다. 윗동네에서 우리 동네까진 거리로도 이 킬로 정도 되고 강도 건너야 하는데 선정된 게 다행스러웠다. 밑으로 여러 동네가 있었지만 우리 동네가 끝번이었으니 행운이었다.

당시만 해도 다리가 없어 강가까지 가져온 전봇대를 목도로 여울을 건너 운반해야 했다. 그때가 추울 때라 인부들은 가슴까지 올라오는 신발이 달린 고무 옷을 입고 여럿이 목도로 그 무거운 전봇대를 강 건너로 운반을 했다. 그것을 보는 우리는 그들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이제 전기 들어오는 게 시간문제라고 가슴들이 설렜다. 사실 꿈인가 생신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일단 여울을 건넌 전봇대는 어찌 산으로 운반을 하는지 궁금했다. 산등성을 몇 개나 넘어야 하니 난공사 중에 난공사다. 험악하고 아주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길도 없는 산까지는 역시 목도 운반이었다. 그들이 구령을 부르며 무거운 전봇대를 메고 산을 오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고 구령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그들은 목도에 이골이 난 것처럼 보였다. 험한 산에서 목도를 하는 그들을 보면 가슴이 짠했다.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그렇게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어깨에 메고 여까지 이루어 놓은 게 아닌가.

지금은 모든 게 기계화 되어 사람이 하는 일이란 기계를 조종하고 부리기만 하면 되지만 당시는 삽과 괭이로 전봇대 세울 구덩이도 팠다. 산을 넘고 도랑을 건너고 논밭을 지나 질서 정연하게 전봇대는 우리 동네로 뻗어왔다.

인부들의 식사는 어찌 해결하였을까. 우리 마을 공사할 때는 삼십여 호가 조금 넘는 동네 집집마다 하루씩 돌려 인부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누구하나 이론이 없었고 기꺼이 그 많은 인부들의 식사를 있는 반찬 없는 반찬 만들어 보리밥이지만 정성스레 대접했다. 우리에게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고생을 한다는 생각으로 그들과 스스럼없이 친해졌다.

산에 전봇대를 세우고 집집마다 옥내 전기 설비를 했다. 집안에 설비를 하는 사람들도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당시는 나무를 때서 밥을 하고 구들을 데워 난방을 하느라 집집마다 집이 검댕으로 시커멓게 그을렸던 때다. 배선을 하느라 어둡고 지저분한 지붕 밑을 기어서 힘들게 몇 번씩 들랑거리면 옷이며 얼굴에 검댕이 묻어 일하는 사람들이 흑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오직 사람의 힘으로만, 온몸을 다 움직여서 해야 하는 최악의 조건에서도 공사는 쉼 없이 착착 진행되었다.

이윽고 산을 넘는 외선 공사나 옥내배선공사가 마무리 되었다. 겨울 세밑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며칟날 인가 전기를 넣는다고 했다. 그날 온 동네 사람들은 다 어린아이가 되어 설레는 가슴으로 눈 말똥거리며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땅거미가 질 즈음 갑자기 온 동네가 번쩍하며 천지개벽을 했다. 집집마다 “와!”하는 소리가 일시에 쏟아져 동네를 번쩍 들었다 놓았다. 그 함성은 영점 몇 초도 늦거나 빠르지 않았다. 그날 밤으로 석유를 넣어 밤을 밝히던 호롱불은 역사의 뒤쪽으로 자취를 감췄다. 호롱불은 끄름이 나서 아침에 가래를 뱉으면 새카만 게 나왔다. 그것과의 영원한 이별을 한 날이었다.

전기가 들어오니 삶 자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발로 밟던 탈곡기도 전기모터에 줄을 걸어 돌리고, 그 당시 흔한 건 아니었어도 전기제품이 하나둘 생기니 삶에 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손부채로 더위를 쫒다 선풍기로 시원한 여름을 난 건 물론이다.   힘든 일을 다 몸으로 때우고 그 무거운 시멘트 전봇대를 목도로 강을 건너서 산 위로 끌어올리던 시절, 보리밥으로 배를 채웠지만 잘 살겠다는 일념은 하늘을 찔렀다. 길을 낸다면 너도나도 땅을 내놓았으며 인심은 겨울날 아랫목처럼 따습기만 했다.

나만 갖겠다는 아우성도 없었고, 나 잘났다는 독불장군도 적었다. 정치적으로는 혼란을 거듭했지만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방위비 더 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대한민국은 지금 정말 부자 나라가 되어있다. 한우전문음식점엘 가면 그중에서도 가장 연하고 좋은 부위를 찾느라고 눈들을 말똥거린다. 과장 좀 해서 거리엔 사람보다 차가 더 많다.

복 받은 나라에서 복 받은 시대를 사는 우리는 자학을 하거나 서로 갈등으로 날을 지새워서는 안 된다. 진정 자부심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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