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렁골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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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렁골 아이들
  • 이수암 수필가
  • 승인 2019.12.1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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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암 수필가

푸렁골은 옛 이름 그대로이다. 1914년에 청동(靑洞)이라고 한자화 되었지마는 지금도 이 지역 사람들은 푸렁골이라고 부른다. 참 아름다운 이름이다. 푸른 산 저 너머에 깊숙이 숨어 있는 인간 세상과는 격이 다른 선경 같은 느낌을 준다.

내가 이곳에 근무할 때는 푸렁골에서 세 아이가 학교에 다녔는데 모두 한집에 사는 오누이였다. 학교에 오려면 산 고개 두 개를 넘어야 했는데 옷은 어느 도시아이보다도 단정하게 입었는데 신은 언제나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에 감정 고무신이었다. 시장에 나가도 고무신 장수를 찾기가 쉽지 않고 옥천에서만 해도 알록달록한 운동화만 신고 다녔던 때였다. 급변하는 세대를 살면서 문명의 혜택에서 멀어진 아이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렸다. 6.25 때 내가 신고 다녔던 검정 고무신이 지금까지 존재한다니 세월의 흐름을 잊은 것 같았다.

교실 옆 골마루에 놓인 신장을 본다.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가 검정 고무신이다. 고무신 바닥이 다 달아서 구멍이 나도 그냥 신고 다닌다. 흙모래와 풀이슬이 범벅이 되어 고무신 바닥에 굳어 있다.

가끔 운동화가 신장에 한두 켤레 보일 때도 있지만 삼일 이내에 다시 고무신으로 바뀐다, 이슬에 젖은 운동화는 빨아야 하고 고무신만큼 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푸렁골 아이들은 공부도 잘 하고 우애도 남달랐다. 등굣길엔 항상 6학년 누나가 앞장서고 2학년 막내가 가운데 서고 4학년 작은 누나가 뒤 따랐다. 안전을 위한 그 엄마의 배려였다.

집에 갈 때도 셋이 같이 갔다. 수업이 끝난 막내는 6학년 누나가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학교에서 놀았다. 야외 학습장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포충망을 들고 곤충채집을 하기도 했다. 가끔 누나네 교실 창 너머로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누나네 선생님과 마주치면 얼른 피하곤 했다. 누나 공부하는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공부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알고 있었다.

고개를 두 개나 넘어야 학교에 오지만 맑고 깨끗한 아이들이었다.

제일 먼저 학교에 도착한 오누이는 샘가에서 발 씻고 교실로 가서 창문을 열고 골마루에 찍혀 있는 자기 발자국을 열심히 닦아 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푸렁골 냄새가 나는 것 갈다. 앞에도 뒤에도 모두가 산인데 무슨 산 냄새가 저리도 좋을까?

칡 향기 그윽한 푸렁골의 마음이 저런 것이 아닐까? 푸렁골을 잊고 산 지 꽤 오래 시간이 흘렀다. 너무도 급변하는 세상이어서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사람 냄새 진하게 번지는 이름다움을 기억해 내기엔 너무도 때 묻은 가슴을 탓해야 할 것 같다. 지금 그 아이들 어디에서 잘 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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