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성지 옥천, 故 정덕기 전 총장 필사인쇄본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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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성지 옥천, 故 정덕기 전 총장 필사인쇄본 발견
  • 임요준기자
  • 승인 2019.12.12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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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박물관 동학 관련 서적 찾던 중
故 정 전 총장의 ‘삼덕전중을가전’ 발견
수운 최제우의 탄생부터 소개한 필사본
수운교연술과 경전, 동학 부적까지 소장

박희구 관장 “민주혁명 동학의 성지에

소중한 자료들은 옥천 알리는데 큰 몫”

동학의 성지 옥천에서 관련 서적들이 대거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가산박물관 박희구 관장은 성지 옥천이라도 증명하듯 소장하고 있는 동학 관련 자료들을 꺼내 들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서적으로는 옥천 출신 전 충남대학교 총장인 故 정덕기 선생이 발행하고 옥천인쇄소 故 심재필 대표가 인쇄한 삼덕전궁을가전(三德田弓乙歌全)이다. 옥천이 동학 성지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하는 귀중한 서적으로 평가된다. 가산박물관 민주혁명 동학 속으로 들어간다.

동학은 그 교지(敎旨)가 시천주(侍天主) 신앙에 기초하면서도 보국안민(輔國安民)과 광제창생(廣濟蒼生)을 내세운 점에서 민족적이고 사회적인 종교다. 교조 최제우가 서교(西敎 천주교)의 도래에 대항해 동쪽 나라인 우리나라의 도를 일으킨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으로, 1905년에는 손병희(孫秉熙)에 의해 천도교(天道敎)로 개칭됐다.

창도 당시 동학은 한울에 대한 공경인 경천과 시천주신앙을 중심으로 모든 사람이 내 몸에 천주(한울님)를 모시는 입신(入信)에 의해 군자가 되고, 나아가 보국안민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경천사상에 바탕한 나라 구제의 신앙이었다.

그러나 제2대 교주인 최시형(崔時亨)에 이르러 ‘사람 섬기기를 한울같이 한다(事人如天)’는 가르침으로 발전하게 되고,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의 산천초목에 이르기까지 한울에 내재한 것으로 보는 물물천 사사천(物物天事事天)의 범천론적 사상(汎天論的 思想)이 널리 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손병희는 더 나아가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을 동학의 종지(宗旨)로 선포했다. 동학의 사회사적 의의는 양반사회의 해체기에 농민대중의 종교가 된 점에 있다. 동학사상과 동학운동은 서민층의 반왕조적인 사회개혁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동학의 기본사상은 최제우의 저술로 전해지는 두 가지 경전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용담유사 (龍潭遺詞)에 나타나 있다. 동경대전은 한문으로 된 글로서 포덕문·논학문·수덕문 등이 포함되어 있다. 용담유사는 한글 가사체로 되어 있으며 용담가·안심가·교훈가·권학가·흥비가·도수가·몽중노소문답가·도덕가 등이 있다. 용담유사는 풍월을 노래한 가사가 아니고, 자신의 사상을 도인들에게 전하려고 지은 일종의 사상가사이다. 이 가사체는 무학의 서민과 아녀자들이 읽고 음송하는 동안에 외워서 동학의 사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가사체의 문체도 훌륭해 문학적인 가치도 인정받고 있다. 그 운율은 3·4조, 4·4조가 우세해 조선시대 후기의 것과 같다. 최시형이 피신하여 다니면서 포교하던 시절, 1880년 5월 강원도 인제군에 경전간행소를 만들어 동경대전을 간행하고, 다음해 충북 단양에서 용담유사를 간행하였으나, 현재 전하는 목판본은 1883년 옥천에서 간행된 것과 경주판이 남아있다.

가산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동학 경전으로는 1927년 간행된 궁을대전2경으로, 동경대전과 궁을경이다. 최제우의 탄생에서부터 그의 삶을 필사해 복사본으로 남긴 수운교연술(1918년), 천도교창건사(1934년), 천도교경전(1949년) 등은 매우 소중한 자료로 남아있다.

또한 최제우가 기도하며 계시로 쓴 동학 부적은 아픈 사람이 이 부적을 태워 그 재를 물과 함께 마시면 병이 나았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전투에 임할 때 용담염원(1904년)을 소지하면 죽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금의 이원면으로 추정되는 이면 이리에 사는 노성득의 명첩과 이원형의 교첩도 있다.

특히 故 정덕기 총장이 발행하고 옥천인쇄소 故 심재필 대표가 인쇄한 삼덕전궁을가전(三德田弓乙歌全 1965년)은 삼덕전궁을가를 비롯해 시운가 등 6개 노래가 실려 있다.

故 정 총장 여동생 풍기(71)씨에 따르면, 故 정 총장은 당시 29세로 공군 대위로 복무중이었다.

안내면 도농리가 고향인 그는 한국사 중 사회경제사를 전공했다. 한국의 사회경제사 학도인 그에게 동학사상은 흥미 이상의 정신적 사상에까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측된다.

정풍기 씨는 “언니의 시할아버지는 동학전투에 나가 싸우다 돌아가셔서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한국의 사회경제사를 연구한 오빠에게 동학사상은 특별했을 것”이라며 이 서적을 발행하게 된 의미를 전했다.

故 심재필 대표의 아들 심대보 전 옥천문화원장은 “선친께서는 시조에 많은 관심을 가지셨다. 옥천시조협회장도 역임하시고 문화원 옆에 시비도 세워져 있다”며 “아마도 두 분은 이런 인연으로 발행과 인쇄가 이뤄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희구 관장은 “옥천은 동학 기포령이 내려진 곳으로 성지나 다름없다. 그런 옥천에 동학 관련 서적을 발행하고, 지금은 많은 자료들이 전해져 오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며 “동학 옥천을 알리는데 큰 몫을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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