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벼농사와 학이 노닐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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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벼농사와 학이 노닐던 마을
  • 도복희기자
  • 승인 2019.12.1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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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끝낸 마을은 조용했다. 콩 농사를 많이 지은 한 농가에 모인 어르신들은 쭉정이 콩을 골라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농가의 주인이 내온 진한 대추차를 마시면서 잠깐 쉬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차를 마신 후에는 다시 콩을 고르는 데 집중했다. 화학1리의 겨울이 한가롭게 지나가고 있었다. 낮은 산자락이 마을을 에워싼 고즈넉한 동네였다. 바람소리 가득한 한적한 마을 그곳에 깃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젊은이들 북적이는 마을 되었으면
현재 화락1리 엽성골에는 18가구. 학촌에는 27가구, 마느실에 20가구 100여 명의 주민이 살아가고 있다. 귀농 2가구, 귀촌 1가구로 다른 지역에 비해 귀농·귀촌인 인구가 현저하게 적은 것은 내놓은 땅이나 매물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제판권(59) 이장은 “마을에 젊은이들이 없어 안타깝다”며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야 하는데 빈집으로 있어도 외지에 나가 있는 자녀들이 팔지 않고 그대로 두기 때문에 마을은 마을대로 비어간다”며 현지 실정을 전했다. “귀촌이나 귀농을 원하는 분들은 농토를 사서 집을 들어와 텃밭을 가꾸며 살아가는 게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한 “주민들은 인포리에서 안내중학교 위쪽부터 화학산성을 지나 화인산림욕장, 하마산, 조헌선생 묘소로 이어지는 등산코스 개발을 원해 안남면 지역발전위원회에 권했지만 성사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청정한 공기 압권
마을을 못 미쳐 화인산림욕장(대표 정홍용)에는 메타세콰이어 1만여 그루가 조성된 산림욕장이 있다. 이곳의 청정한 공기를 맡으며 천천히 산책할 수 있는 코스는 압권이다. 화학1리의 자랑이기도 하다. 이 마을은 안남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도로변이 유달리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다. 예부터 옥수수와 콩, 잎담배 등을 농사짓고 있다. 잎담배는 현재 제판권 이장과 몇 가구만 농사짓고 있는데 그 양이 상당하다고.
제 이장은 “우리 마을은 청정지역으로 공장 유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마을 발전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화인산림욕장이 활성화되고 화학산성이 정비되어 연계 개발한다면 안남면 전체 관광명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마을이 발전되려면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고 젊은 친구들이 많이 들어오는 것이 급선무인데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예전에는...
정천용(안남면 노인협의회장 겸 화학1리 노인회장·78) 회장은 화학리에서 태어나 주민등록 한번 안 옮기고 이곳에서 살아왔다. “옛날 우리 마을은 안남면 전체에서 단합도 제일 잘되고 충북에서 퇴비증산도 1등 했다”며 “1960년부터 1970년대는 아이들도 많은데 교육열이 높아 80%에서 90%의 어른들이 잎담배 농사를 지어 자녀들을 교육시켰다”고 회상했다.

△주민 이옥희 어르신
엽성골에 24살에 시집와 지금까지 살고 있는 이옥희(78) 어르신은 “젊은 시절 남편이 죽고 3남 1녀를 잎담배 농사를 지어 교육시켰다”며 “어떻게 지나갔는지 아득한 세월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자손들이 건강하게 잘 지내면 된다.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며 여전히 자식들을 위한 한결같은 사랑을 전했다.

△대보름 행사
마느실과 학촌, 엽성골 마을이 돌아가면서 음력 1월 15일 대보름 행사를 한다. 이날은 모든 마을 주민들이 모여 점심을 같이 나눠 먹고 윷놀이와 노래자랑을 펼친다. 마을 주민 간 화합의 장으로 이날 제일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화학1리는
학촌과 마느실은 화학리 서부에 위치한다. 동쪽은 수일리, 남쪽은 청정리, 서쪽은 안내면 인포리와 현리, 북쪽은 안내면 현리와 방곡리가 접한다. 학촌(鶴村)은 학이 마을에 날아들어 유래한 지명이다. 뒷산을 학지산으로 부른다. 학촌고개 북동쪽에 있는 산으로 무송 유씨 종산이 있다. 화학리 중심 마을로 안내면 인포리에서 안남면 청정리로 넘는 학촌고개 도로변 북동쪽 계곡 안에 있는 마을이다. 학촌고개(돌고개)는 안남면의 북쪽 관문으로 마느실 남동편인 학촌 입구에 있는 고개다. 인포리에서 청정리를 잇는 지방도 고개로 옛날에 주막이 있었다. 마느실 앞뜰은 남쪽과 서쪽으로 난 긴 들로 지방도로 좌우측의 들이다. 학촌고개가 늘어진 북쪽 마을로 석회석 광산이 있었다. 엽성골은 학촌 고개마루 남쪽 마을이다. 노적봉은 학촌의 서쪽 산으로 볏단을 쌓은 노적가리처럼 생겼다. 절골은 화학리와 청정리 경계 도로가에서 서남쪽으로 들어간 절골이다. 화학리와 청정리 도로 경계지 부근에 약물내기라는 샘물이 있었다. 성재는 화학리 산성 부근 고개로 북서쪽으로 안내 소재지인 현리 창말로 넘는다. 포이성(浦李城)은 화학리 산성으로 임진왜란 당시 주민들이 쌓았다고 전한다. 화학리 산성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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