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앞에서 짝짜꿍~”…작곡가 정순철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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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앞에서 짝짜꿍~”…작곡가 정순철을 말하다
  • 도복희기자
  • 승인 2019.12.1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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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인물 정순철 연극 ‘어른 아이’ 상연
윤극영·방정환과의 만남…색동회 창립 재조명

“누군가의 인생을 100분 안에 정리할 수 있을까” 옥천이 낳은 천재 동요 작곡가 정순철 이야기는 그러한 생각에서 출발한 시도였다. 마지막 인생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한 예술가의 삶을 연극으로 보여준 작품 ‘어른 아이’가 옥천문화예술회관에서 상연됐다. 충북대표문화제작 지원사업 선정작 ‘제151회 극단 시민극장’의 정기공연이었다는 점에서 뜻깊은 작품이었다. 연극을 보고 나오는 옥천여중 김정민, 황다빈, 정민서 학생은 “시대적 배경이 다름에도 공감 가는 부분이 많이 있었어요. 작품 요소요소에 노래가 들어가 있어서 흥미로웠고 옥천이 고향인 정순철 선생님 이야기를 극화한 것이어서 더 의미 있었어요”라고 소감을 한 목소리로 전했다. 작가와 연출가 배우들의 목소리로 작품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장연우(배우 주호성) 작가
동요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분이다. 주옥같은 곡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수많은 이들의 정서를 풍요롭게 한 작곡가. 옥천 중심의 인물 중 가장 아름답고 맑은 작품을 남긴 이가 정순철 동요작가다. 그의 삶을 연극으로 만들고자 평전을 살펴보았다. 일생을 살필 수 있는 유일한 서적이었으나 ‘정순철 평전’을 통해 본 인생은 연극으로 만들기에는 그리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자세한 묘사도 없고 개인적인 고뇌조차 엿볼 수 없었다. 험난했던 일제 말기 동경유학을 두 번이나 다녀오며 한민족이 겪어야 했을 서러운 고통을 받고 살다가 해방을 맞은 기쁨도 잠시, 한국전쟁 발발 후 월북이었는지 납북이었는지 별다른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인물, 그가 남긴 동심의 세계만 노래로 남아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그 동심을 연극의 주제로 삼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있을 동심, 그를 등장시키고 싶었던 것. 정순철 선생은 동요를 만들기 위해 어린 시절을 마음으로 돌이키려 했을 것이다. 그 안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동시대를 살았던 손병희 선생과 방정환, 윤극영, 윤석중 선생 등과 함께 민족의 미래인 어린이를 사랑한 그 마음을 옮겨 놓았다. 이 연극을 만들게 해준 옥천군과 연출해 준 장경민 연출가를 비롯한 배우들에게 무한 감사를 전한다.

△장경민(시민극단 대표) 연출가
‘시민극단’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옥천문화예술 상주 예술단체다. 2017년도에 옥천의 상주예술 단체로 정순철 작가를 소재로 연극공연을 한 적이 있다. 올해 충북대표문화공연 사업에 선정되면서 2017년 당시 공연 중 느낀 것을 정리해 정순철 작가를 소재로 한 색다른 작품을 올리게 되었다. 동요 작곡가로서 성장배경 요인과 손병희, 방정환, 윤극영 선생 등 당시 주변 인물들의 영향 관계를 극의 요소로 비중 있게 다뤘다. 또한 짝짜꿍, 졸업 등 대표 동요를 만드는 과정을 극화시켜 보여주고 있다. ‘시민극단’이 3년간 상주예술단체로 활동하면서 8개 공연을 올리고 관객을 많이 만나면서 옥천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이 남아있다.
옥천은 정지용 시인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그에 반해 정순철 작가에 대해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웠다. 이번 공연 기회를 통해 더 깊은 이해가 되었길 바란다. 한국을 대표하는 훌륭한 작곡가가 지역에서 탄생하고 활동했다는 것에 대해 지역민으로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배우 주현우(정순철 역)
사실 연극을 하기 전 동요는 알고 있었지만 정순철 작곡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납북 후 그의 인생을 모르지만 분명 감사한 존재다. 연극 연습을 하면서 한 작곡가의 삶과 정신세계를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 동요가 즐거워서 연습 과정도 즐겁게 했다. 옥천에는 공연을 위해 한번 왔을 뿐인데 친근하게 느껴진다. 잘 모르던 지역에서 대단한 작곡가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아이들을 위해 곡을 만든 작곡가를 생각하면서 관객들 앞에 섰다. 작품을 통해 어렸을 때 기억을 상기시키고, 연극이 끝나고 나가면서 즐겁기를 바란다.

△배우 최민혁(윤극영 역)
윤극영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작가로 ‘반달’, ‘따오기’, ‘고드름’ 등을 지은 작곡가다. 정순철, 방정환 선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 유학 중 우리 아이들의 정서적인 것을 챙기기로 결심하고 동요작가로 활동했다. 실제로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는데 극 중 피아노를 연주해야 하는 장면이 있어 연습을 많이 했다. 음악적으로 편곡해서 소화하기 힘들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정순철, 방정환 선생과 뜻을 같이해 색동회 멤버로 활동하던 모습과 정순철 작곡가를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대전 용운동이 고향이어서 옥천은 늘 가깝게 느낀다. 정순철, 정지용 선생과 같은 대한민국 최고 예술가의 고장에서 공연할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공연을 통해 고장의 인물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본다.

△잊혀진 이름, 정순철
우리에게 ‘정순철’이라는 이름은 생소하다. 그러나 이 땅에 태어난 사람 중 정순철 선생이 작곡한 노래를 부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짝짜꿍’, ‘새나라의 어린이’, ‘갈잎피리’, ‘형제별’, ‘자장가’ 등 이 노래를 부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졸업식장에서 울면서 부르던 ‘졸업식 노래’ 역시 정순철 선생이 작곡한 노래다. 노래는 기억되고 있지만 그는 잊혀져 있던 것이다.

△최시형의 외손자 정순철
정순철 선생은 1901년 옥천 청산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최윤은 동학의 2세 교주인 해월 최시형의 딸이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면서 최시형은 쫓겨 다녀야 했다. 부인 김 씨와 딸 역시 몸을 피해 다니다 붙잡혀 옥천 관아에 갇히고 말았다. 옥천군수는 아전인 정주현에게 최윤을 데려가 살라고 내주었고, 정순철은 이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났다.

△색동회 창립주역
보통학교에 다니던 정순철 선생은 학교를 중퇴하고 집을 나와 옥천역에서 화물차를 몰래 숨어 타고 서울로 올라간다. 천도교 3세 교조인 의암 손병희의 배려로 보성중학교에 입학한다. 거기서 선생은 손병희의 셋째 사위인 방정환 선생과 친하게 지내며 ‘천도교소년회’에 입회해 활동하다 방정환과 같이 일본으로 유학한다. 동경음악학교에서 공부하다가 1923년 방정환의 주도로 진장섭, 손진태, 고한승, 정병기 등과 함께 ‘색동회’를 만든다. ‘어린이’라는 말을 만든 방정환과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제정, 기념식을 하고 어린이 문화운동과 어린이 인권운동을 시작한다. 이들은 ‘어린이’라는 잡지를 만들어 어린이들이 읽을 작품을 쓰고 소개하기 시작한다. 정순철은 이 잡지에 어린이들이 부를 창작동요를 작곡하여 발표, 보급하는 데 앞장선다. 정순철은 1939년 다시 동경으로 건너가 3년 동안 음악공부를 하고 귀국해 1942년부터 중앙보육학교(중앙대학교 전신) 음악교사로 재직한다. 학교에 재직할 때 그의 별명은 ‘한국의 베토벤’으로 훌륭한 음악교사였다.

△한국전쟁 납북, 북에 행적 묻혀
9.28수복 이후 인민군이 후퇴할 때 납북되어 그 뒤 종적은 알 수가 없다. 전쟁과 분단의 비극이 아니었다면 그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작곡가로 우리 곁에 있었을 터. 이번 공연은 정순철을 어떻게 재조명하고 재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까지 간접적이나마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념이나 사상을 떠나 한 예술가의 존재에 대한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 가늠하기 위한 최초 극적 시도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준다.

△작품의 의미
정순철 선생은 ‘반달’의 윤극영, ‘오빠생각’의 박태준, ‘봉선화’의 홍난파 등과 함께 1920년대를 대표하는 동요작곡가다. 본관은 연일(延日)이고, 어릴 때 이름은 분답, 자는 성춘(星春)이다. 1930년 초에 경성보육학교에서 보육교사를 가르치며 ‘녹양회’라는 동극단체를 만들어 소나무, 백설공주, 파종, 금강산 등의 동화극과 학교극을 발표한다. 어린이 잡지에 어린이들이 부를 창작동요를 작곡해 발표, 보급하는데 앞장서고, 동경유학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와서도 서울 경운동의 천도교 대교당을 중심으로 각종 어린이 운동을 전개한다. 6.25 전쟁 이후 납북이든 월북이든 북쪽으로 간 사람들을 거론하는 것이 금기시되면서 그의 이름과 행적은 서서히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가 작곡한 노래를 많은 국민들이 오랜 세월 동안 기쁨으로 눈물로 불렀으면서도 우리는 그의 이름을 잊고 살아왔다.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문화와 역사가 있다. 충북 옥천의 위대한 작곡가 정순철. 잊혀진 이름을 다시 찾아 기억할 때이며, 그 뜻을 기려야 할 때”라며 작품을 올리게 된 의미를 상기시켰다.

△극단 시민극장
창단 50년을 맞는 충북 최고의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극단 시민극장은 정부가 최초로 실시한 제1회 전국 소인극 경연대회(문화공보부 주최)서 ‘새마을 여행’(쏜톤와일더 작/임해순 연출)과 제5회 전국소인극 경연대회서 ‘옹고집전’(김상렬 작/장남수 연출)이 2회에 걸쳐 최우수단체상(문화공보부 장관상)과 1981년 전국연극경연대회서 ‘날개’(정하연 각색/ 장남수 연출)로 최우수단체상(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지역 최고의 극단으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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