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 명승지 ‘용호8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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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 명승지 ‘용호8경’
  • 전순표 시인·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 승인 2020.01.0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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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표 시인·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용호8경(龍湖八景)은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 용호, 석호, 소정리 일대의 강과 산의 풍광을 읊은 8경을 말한다. 이곳 용호, 석호리는 1980년 이전에는 금강이 굽이쳐 흐르는 계곡으로 지금은 대청호가 되었으나, 그래도 그 산과 강의 어우러진 멋진 경관은 보는 사람들에게 경탄을 자아내는 경관지 이자, 명승지이다.

△명승지 용호8경
▲제1경 옥봉야월(玉峰夜月)은 이슬봉에 뜨는 달을 말하며 ▲제2경 적성조일(赤城朝日)은 군북면 중앙부에 우뚝한 99봉의 환산성(고리산성)에 눈부시게 비추는 아침 햇살이다. ▲제3경 방포어화(芳浦漁火)은 용호리 꽃산이 앞 금강에서 불을 밝히며 밤고기 잡는 광경이고 ▲제4경 용강지주(龍江之舟)는 용호리 금강에서 고기잡이 일엽편주 배이다.
▲제5경 갈평고담(葛坪古潭)이라 즉 금강 가 용호늪에 능수버들이 넓은 용호 늪의 아름다운 풍광이고 ▲제6경 동구괴목(洞口槐木)은 용호리 마을 어귀에 서있는 마을을 지켜주는 회화나무 괴목의 풍치와 ▲제7경은 태동폭포(態動瀑布)로 여름철 소나비기 온 후, 마을 뒷산인 1,500년 고찰 가산사가 자리한 안내면 답양리의 채운산 가산봉과 마을 앞산 고리산의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수를 말함이다.     
끝으로 ▲제8경은 향치막운(香峙莫雲)으로 마을 동편 막지리 장고개 막지봉(성지봉)에 걸친 뭉게구름이 저녁노을에 찬란한 빛을 발하며 산봉우리로 피어오르는 멋진 마치 피어오르는 구름 풍경을 말한다. 

△용호산수기–석호리 용호, 막지 명승 소개
조선 후기 성리학자와 문신으로 당대에 이름을 날렸던 대사헌 송명흠 선생은 이곳에 낙향해 살면서 1722년 용호산수기를 지었다. 그는 이 글에서 이곳 용호리 동편 석호리 진걸 마을의 금강과 산수를 “옥주는 산과 물이 어우러진 고장, 땅이 비옥하고 넉넉하다 ~ ~ 옥주 관아에서 십여 리 떨어진 마을, 금강과 산이 가로막혀 금강 물에 덮여 입구 외에는 마치 섬 같고 금강 물은 동남쪽에서 흘러와서 서북쪽으로 흐른다”라고 석호리 산수풍광과 지리를 이렇게 기술하였다.
풀이하면 “옥천 구읍 관아에서 북쪽으로 난 옛 37번 국도를 따라 교동저수지 지나서 늘티재 너머 국원리, 석호리 그 반도 끝은 구불구불 금강, 지금은 대청호가 휘돌아 가니, 진걸 마을 섬 같고 오직 트인 곳은 남쪽 국원리뿐이고, 이곳 석호리 진걸은 하염없이 금강이 남에서 서북쪽으로 흐르누나!”

△조선 영조 때 문신 송명흠 선생 낙향
송명흠(宋明欽) 선생은 1705년(숙종31)~1768년(영조44)를 산 문신으로 1721년(경종 1년) 신축사화 때 아버지를 따라서 옥천군 군북면 석호리 도곡(진걸) 금강 기슭에 낙향하여 학문에 전념한 유학자로 호는 역천(櫟泉), 자는 회가이며, 본관은 은진이다. 동춘당 송준길 선생의 손자인 송요좌 군수의 아들로 1705년(숙종31) 10월에 서울 제생동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영특하였다.
1746년(영조 22년)에 시강원 자의, 익위사 종부 주사, 충청도사, 사헌부 지평, 장령, 군자감정을 하였다. 이후 1760년(영조40) 찬선으로 경연관을 지냈다. 시호는 문원(文元)이며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묘소는 충남 연기군 동면 부강에 위치하고 유고집으로 「역천집」 10책이 전하며 경남 함양 안의면 성천서원에 제향 되었다. 그는 영조 때 노론을 대표하는 학자로 정조의 스승으로 도암(陶菴) 이재(李縡) 선생의 수제자이다. 한편 송명흠 선생의 동생 한정당 송문흠 글씨는 서예 전서에 조예가 깊어 여러 집안의 금석문 가운데 그가 쓴 작품이 많으며 이인상의 전서와 더불어 조선 후기 3대 서예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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