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넘어 우리로 닿는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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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넘어 우리로 닿는 시간들
  • 우중화 시인
  • 승인 2020.01.0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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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화 시인

‘가난한 집안에서 어릴 때 입양된 아타오. 양부는 일제 침략기 때 살해되었고, 능력 없는 양모는 그녀를 양씨 가문으로 보냈다. 아타오는 그곳에서 60년간 식모로 살았다‘

이것이 아타오의 이력이다. 홍콩영화 <심플 라이프 Simple Life 2011>에서 그녀의 이력은 이렇게 담담할 정도로 심플하다. 그녀는 어렸을 때 입양되어 결혼도 하지 않고 혈연관계의 가족 한명 없이 일흔이 넘는 평생을 가정부로의 생을 보내게 된다. 가족들의 입맛이나 취향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아타오는 양씨가문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고, 특히 그 집 장남인 로저의 까탈스러운 입맛과 투정을 누구보다도 잘 받아준다. 일 때문에 독립하여 혼자 살게 된 로저를 아타오는 친아들처럼 그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묵묵히 다 들어주고 함께 해준다. 출장이 잦았던 로저가 집에 돌아온 어느 날, 그녀는 로저가 좋아하는 음식을 하다가 중풍으로 쓰러져 몸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게 된다. 영화 속의 아타오는 가족이 없다. 그녀는 사지를 못 쓰게 되자 로저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요양병원에 가기를 원한다. 로저는 그렇게 그녀를 보낸다. 그러나 로저는 인간적인 정리를 차마 저버리지 못하고 그녀를 돌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타오를 돌보며 로저는 인간적인 성숙함을 지닌 따뜻한 사람으로 변하게 되고, 아타오가 자신에게 중요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새로이 깨닫게 된다.

아타오의 일생은 요즘 시대에서 흔히 말하는 성공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어려서부터 남의 집에 살면서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한 그녀는 결혼도 못하고 그래서 자식도 없고 당연히 나이가 들어도 그녀를 돌보아줄 가족이 없다. 당장 생활이 궁핍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은 생을 살만한 여유로운 삶도 아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아타오의 삶은 대부분 요양병원에서의 생활이 대부분이고 그래서 그렇게 밝고 희망차 보이지는 않는다.

또 여기 한때 눈물바다를 만들었던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가 있다. 이 소설은 서울에서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면서 남은 가족들이 모여 역순행적으로 엄마와 관련된 각자의 엄마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엄마의 진짜 생일은 언제인지, 엄마의 건강 상태가 얼마나 안 좋은지, 엄마가 좋아했던 게 무엇인지, 얼마나 가족을 사랑하고 그리워했는지를. 그러나 남아 있는 가족들은 엄마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다. 모든 가족들이 제 할일에 바빠서 엄마에 대한 건 무관심했던 것이다. 엄마는 늘 그 자리에 항상 있는 사람이었다. 9개월 동안 엄마를 찾지 못했다는 소설의 설정 자체가 평생을 희생한 엄마의 생을 본다면 더없이 마음이 아프면서 서로가 무기력해지게 만든다.

<심플 라이프>,<엄마를 부탁해>는 결코 가볍게 보고 읽을 수가 없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는 계속해서 우리를 불편 하게 하는 주요문제들이 등장하며 나를 툭툭 건드린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직면해있는 노인문제, 가족문제, 돌봄의 문제들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해준다. 나이 듦과 질병, 죽음, 그리고 그들을 돌봐야 하는 남은 가족들. 이 이야기들은 결코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누구나 가족으로 엮어져 있다면 가정 속에서 이러한 일들은 무수히 발생되고 반복되어질 것이다. 누군가는 혈연으로 엮어져 있어도 돌봄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혈연은 아니지만 어떠한 인연이 되어 그 돌봄이 계속해서 이어지기도 한다.

가족이란 의미는 결국 무엇인가? 사실 가족은 태어난 순서에 따라, 성별에 따라, 부모의 혼인 관계에 따라 맺어지기는 하지만 매우 다른 삶들을 서로 경험하게 된다. 어떤 이는 더 희생을 하게 되고, 어떤 이는 별 희생 없이 좋은 삶을 물려받기도 한다. 어쩌면 가족이라는 것은 끈끈한 공동체가 될 수도 있지만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남보다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돌봄의 역할을 해야 된다. 그 돌봄은 누가 어떠한 방식으로 하는가는 현대사회의 큰 문제가 되었다. 돌봄은 물론 가족 안에서도 이루어지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듯이 가족관계를 넘어서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렇듯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꼭 필요한 돌봄을 서로가 나누지 못한다면 결국 사람들 사이의 평등한 관계 역시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친정엄마가 아프시다. 여든이 훨씬 넘으신 엄마는 갑작스레 큰 수술을 하게 되셨고 재활치료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요양병원에 계셔야하는 시간들을 맞으셨다. 자신이 지키던 평생의 둥지를 떠나 도시의 낯선 공간 속으로 옮기시게 되신 것이다. 이렇게 나이 드신 부모님의 돌봄이 필요한 건 현실이 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닥치게 되는 돌봄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러나 평등의 관계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 시간들을 받아들이고 나눠가져야 한다. 결국은 가족이든 아니든 이타의 삶으로 가야한다. 나를 넘어서 나의 가족을 넘어서 현 시대에 이타의 관심과 사랑은 꼭 필요한 것이리라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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