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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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일까
  • 옥천향수신문
  • 승인 2016.04.07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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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 수필가
▲ 김정자 수필가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오후다. 창밖으로 보이는 만개된 벚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벚꽃이 절정으로 핀 것 보다 꽃잎이 바람에 살짝 날리는 걸 더 좋아 한다.

마침 오늘 오랜만에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벚 꽃잎이 하얀 눈발처럼 날려 빗물에 떨어지는 것이 눈물 나게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잠시 일뿐 하얀 비늘처럼 길 가 물위에 잔뜩 떠 있는 꽃잎들이 왠지 처연하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나의 기억력도 마치 꽃잎이 떨어지듯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에서일까?

한때는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라고 남들이 부러워하기도 했다. 자동차 번호를 줄줄이 외우고 많은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암기해 별도의 전화번호를 기록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오직 스마트 폰에 의지해 전화를 걸고 가족의 단축번호 몇 개만 기억하는 사람이되어 버렸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기억은 오직 기억을 위해서만이 필요한 게 아니라 뇌기능을 활성화 하고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 하다는 것이 나의 지론 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아침에 오늘 할 일을 생각하고 출근해서 조회가 끝나고 나면 뭘 해야 망설이다 집으로 온 적도 있었다.

어느 날 누군가가 왜 암기를 하지 않느냐고 묻자 지금은 스마트폰이 뇌의 일부분인데 암기가 왜 필요하냐고 되묻기도 했었다. 어릴 적부터 암기력이 좋아서 한번 들은 노래 가사를 기억해서 옛날 노래를 많이 암기하고 언제 어디든 음정 박자는 틀려도 신청곡은 끝까지 부르기도 했다. 이제는 노래방이 생긴 일로 기억력의 존재성은 빛을 잃고 금방 들은 노래도 잃어버리곤 한다.

노래방 문화가 안방 문화처럼 익숙해지는 동안 나의 기억력도 잃어 가고 노래방 기기의 만능성에 젖어 한곡도 가사를 떠올리지 못한다. 또 요즘 들어서는 인터넷 세상이 열리고 이메일을 주고 받다보니 이름조차 기억하기 힘들 때도 있다. 책에서 지식을 구하고 지식으로 지혜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책을읽겠다고 가방 속에 넣고 다녔지만 가방속에 책이 있는 것 조차모르고 다녔다.

요즘은 너무 많은 지식들이 해일처럼 밀려오는 세상이고 필요한 지식들은 그때 그때 인터넷 지식 검색을 통해 실시간으로 해결 할 수 있기에 다행이다. 아무것도 기억 할 필요가 없고 무엇이든 척 척 알아서 가르쳐주는 기계에 의한 기계적 인간으로 변해 가고 나의 존재도 하나씩 떨어지는 꽃잎처럼 잃어 가고 있다.

유년시절 펜팔로 여러 사람과 편지를 주고받기 위해 정성들여 종이 편지를 써놓고 예쁜 꽃잎과 낙엽을 주워 꼼꼼하게 꽃 이름과 꽃말을 적어 편지와 함께 보냈었다. 그 시절 그토록 무성 했던 풀과 꽃들 풀벌레 울음소리가 아련하다. 연녹색 이파리들이 조금씩 초록으로 물들고 활짝 핀 꽃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계절이다.

이맘때쯤이면 그래도 잊혀 지지 않고 기억에 남는 것은 시골의 자연 속에서 풋풋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엄마를 기다리다 잠이 들은 기억만큼은 짙게 남아 있다. 포근한 모성의 느낌들을 가만히 떠올려 보니 구구단을 먼저 외고 자랑스럽게 집에 온 딸을 위해 감자를 쪄놓고 기다리던 엄마의 모습도 아련하다.

벚꽃이 눈송이처럼 날리는 나무 밑에서 친구들과 놀 때는 오로지 벗이 열려 열매가 익기만을 기다렸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꽃잎이 떨어지는 것만 봐도 울적하고 열매가 맺으면 내 젊음도 달아나는 것 같아 겁이 난다.

이제는 중년이 되어 높은 벼랑 끝에 서있고 또 하루가 멀어져 가고 매일 무언가 이별하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은 온통 한꺼번에 피는 봄 꽃 으로 아름다운데 나의 아름다운 기억들은 왜 스스로꽃잎처럼 낙화하는 것일까.

늦은 밤까지 봄비가 오락가락 하면서 너무 쉽게 꽃잎들을 허공에 날려 보낸다. 화려하기도 하지만 슬프도록 아름답기도 하다. 어쩌면 움츠리고 있는 꽃잎들은 위를 보라고 내 앞에 화려한 장관을 연출했는지도 모른다. 조금씩 달아나는 기억력을 되찾아 포근하고 희망이 가득한 모습으로 꽃과 하늘을 보며 나는 누구일까. 다시한번 내 모습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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