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불의 향연으로 빚어내는 ‘자연의 그릇’ 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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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불의 향연으로 빚어내는 ‘자연의 그릇’ 옹기
  • 이성재기자
  • 승인 2016.04.15 1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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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토기’ 최길동(73) 옹기장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생업이 천직으로 ···

“예전에는 옹기 일 자체가 힘들고 더럽고 험한 작업이라는 편견이 있었어요. 어린 나이에 무시 받고 힘이 드는 옹기일이 싫어서 서울 등지로 무작정 새로운 일을 찾아 갔었지요. 그런데 배운 게 별로 없어 잡일만 하다 보니 고향 생각과 옹기 생각이 더 나더라고요.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지요.”

옥천군 안내면에 위치한 ‘안내토기’를 운영하고 있는 최길동(73) 옹기장은 옥천에 유일한 전통 옹기장이다. 그는 학교를 제대로 다닐 여력도 없던 시절에 집안에서 하는 일이 옹기 업이라 어려서부터 거들던 집안 일이 평생의 천직이 됐다. 그는 철이 들기 전부터 부친이 하던 옹기 일을 거들어야 했던 가정형편에서 성장했다.

그의 부친은 원래 보은 내송리 자안이라는 지명을 가진 곳에서 옹기 굽는 일을 하다가 해방 후 경북 상주 화령지방으로 옮겼고, 6.25한국전쟁 후에 보은읍 학림이라는 곳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최 옹기장의 옹기 일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갈 무렵 옹기굽는 일이 천한 일이라는 사실을 듣게 돼 다른일을 찾고자 서울 등지로 몇 차례 도망을 다니고 했었다. 배운 게 별로 없어 이일저일 손을 대보았지만 결국 귀향하게 되지만 그가 없는 동안 집안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최 옹기장은 지금의 ‘안내 토기’가 있는 곳으로 옹기 일을 배우러 오게 됐다.

당시 이 공장은 그의 고모부가 운영하던 곳으로 고모부 밑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배우고 옹기 일이 익숙해질 무렵 고모부가 돌아가시고, 고종형은 옹기공장을 제대로 꾸리지 못해 최 옹기장이 공장을 인수해 현재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시절 옥천, 보은 인근에 옹기공장 7곳 중에 ‘광명단 사건’과 플라스틱 용기 열풍으로 현재 안내토기를 제외하고 전부 문을 닫게 됐다.

▲ '안내토기' 최길동(73) 옹기장

“옹기는 스테인리스나 플라스틱 그릇과는 근본이 달라”

“요즘엔 옹기 쓰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가볍고 편리하다고 스테인리스나 플라스틱 합성수지제품을 많이 쓰지요. 하지만 천연 재료를 사용해 만든 옹기는 들숨, 날숨을 자유롭게 쉬는 그릇이라 근본부터 달라요. 옹기조각에 손을 베어도 덧나는 법이 없지요.”

옹기는 한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독자적인 문화로 주로 발효음식 및 곡물 등의 저장용기로 사용돼왔다. 된장, 김치 등 발효음식은 냄새가 심해 냉장고나 보관 용기에 냄새가 배는 경우도 있고 쉽게 변질되기도 한다. 그러나 옹기에 보존한 발효음식은 쉽게 변하지도 않고 냄새 또한 막아주는 이유는 옹기가 숨을 쉬기 때문이다. 옹기는 고운 흙으로 만든 청자나 백자와는 달리 작은 알갱이가 섞여 있는 질(점토)로 만들어지는데, 가마 안에서 구워질 때 질(점토)이 녹으면서 미세한 구멍이 형성된다. 이 구멍으로 공기·미생물·효모 등이 통과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마 안에서 구워지면서 발생하는 검은연기가 그릇 내·외부에 침투해 방부제 역할을 한다. 특히 세균이 옹기에 서식할 수 없어 위생상으로도 안전하다.

음식을 담는 그릇은 순수해야만 ···

“광명단(납을 산화해 만든 화공약품)이 무해하다는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고는 있었지요. 저도 한 때 겉만 번드르르한 광명단 옹기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 잠시 만들기도 했었지만 바로 그만 뒀어요. 조금의 납이라도 음식을 보관하는 그릇에 쓰고 싶지 않았지요. 광명단을 사용한 옹기는 김치나 간장을 오래 저장하면 맛이 변해요. 또 산이나 열에 약해 불에 올리거나 김치와 같은발효식품을 담아두면 납 성분이 녹아 몸에 해롭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전통 옹기를 빚는데 최선을 다했지요.”

통상 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으로 구분된다. 질그릇은 질(점토)만으로 반죽해 나무를 많이 넣은 뒤 아궁이와 굴뚝을 막아 구운 것으로 숨도 많이 쉬고 습도 조절능력도 뛰어나지만 표면이 거칠다. 오지그릇은 바람이 통하는 상태에서 오짓물(잿물)을 입혀 굽기 때문에 표면이 매끄럽고 윤기가 있다.

근대화 이후 질그릇은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오지그릇은 일제 강점기부터 번거로운 잿물대신 사용이 수월한 광명단(납을 산화해 만든 화공약품)이나 망간을 사용하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만, 1977년 발생한 일명 ‘광명단 사건’으로 옹기업계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최 옹기장도 찾는 사람이 많아져 잠시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납의 해로움을 알고 더 이상 제작을 하지 않았다.

 

 

 

 

 

좋은 약토 찾아 전국 방방곡곡 누벼

“1988년부터 재래 토기인 무공해 옹기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재래 유약을 만들 수 있는 질 좋은 약토를 찾아 강원도, 전라도, 충청도 등 전국 방방곡곡 안다녀 본 곳이 없었지요. 여기저기 좋은 약토를 찾았지만 거리도 그렇고 운송수단도 여의치 않고, 고생 좀 했지요. 약토를 구하기 위해 며칠씩 집을 비우면서 아내에게 미안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약토 찾기를 멈출 수가 없었지요.”

질 좋은 점토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가마 그리고 유약 이 세 가지 조건이 반드시 충족되어야만 비로소 숨 쉬는 무공해 옹기가 만들어진다. 최 옹기장이 전국을 다니며 약토를 찾는 이유도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 발품생활이 지쳐갈 무렵 그는 강원도에서 좋은 약토를 발견했지만 거리도 멀고 운송도 힘들어 포기하고, 다시 몇 개월을 수소문하고 발품을 팔며 돌아다니다 거리도 비교적 가깝고 운송도 수월한 서산시 갈산면에서 강원도에 버금가는 약토를 찾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옹기는 불과 흙, 유약이 중요한 요소이다.

옹기를 빚고 굽기 전에 유약을 바르는데 유약을 바르는데 유약은 나무와 짚, 콩깍지 등을 태운 재를 물에 푼 잿물을 약토와 섞어 만든다. 이 때 좋지 않은 유약을 사용하면 옹기의 색도 바래고 숨구멍도 줄어들어 제대로 된 옹기는 나오지 않는다.

 

 

 

 

 

 

 

 

 

 

■ 현대생활에 맞는 다양한 종류의 옹기 생산

“간장 · 된장 등을 담그는데 쓰이는 커다란 독은 이제 거의 팔리지 않지요. 장독대 자체가 사라져가니까요. 몇몇 전통적인 방법으로 장을 만들어 대량으로 파는 사람들이나 사가지 개인들은 거의 사가지 않지요. 하지만 작은 단지 종류를 현대생활에 맞게 고안하고 옹기의 효능을 널리 알린다면 옹기 사용이 많아지겠지요.”

아파트, 빌라 등의 주택이 보편화되면서 장독대는 주거공간에서 더 이상 설자리를 잃어버렸고 서구음식에 익숙한 세대들은 장을 담글 줄도 모를 뿐만 아니라 장으로 맛을 내는 전통도 가볍게 생각한다. 이러한 변화로 옹기 제품은 서서히 사람들에게 잊혀 가고 있다. 최 옹기장은 이러한 변화를 인식하고 제품을 다양화해서 옹기를 만들고 있다. 현재 ‘안내토기’에서 판매하고 있는 옹기제품은 쌀독, 김칫독, 약항아리, 어항, 뚝배기 등 50여 종의 옹기를 생산하고 있다.

사라져가는 전통의 맥을 잇는 진정한 장인

“옹기는 우리네 전통 문화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요. 그런데 정작 배우려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어요. 옹기 일을 배우겠다고 찾아오곤 하지만 힘들고 어렵다며 금방 그만두고 나가는 게 태반이고요. 아들이 묵묵히 옹기를 만드는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대견하고 고맙지요.”

그는 비록 '명장'이나 '장인' 등 화려한 수식어가 붙지는 않았지만 2대째 가업을 이어 50년이 넘게 옹기를 만든 최길동 옹기장의 장인정신은 아들이 이어받았다. 현재는 그의 뒤를 이어 아들 최민호(36)씨가 전통옹기를 생산하고 있다. 최 옹기장은 옹기공장에서 재래식 옹기를 현대사회에 어울리는 생활용기로 개발해 사라져가는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진정한 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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