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내게 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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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내게 준 선물
  • 옥천향수신문
  • 승인 2016.04.2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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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이 일제히 소리치는 봄날에 바람은 자주 심술을 부렸다. 전신주에 매달린 줄은 윙윙거리며 울어댔고 꾹 눌러쓴 모자를 멀리 날아가 버리게도 했다.

전을 편 화장품에 흙먼지가 날아들어 손님이 집어든 화장품을 형편없는 물건으로 변하게 했다. 마른 바람에 손등이 갈라져 어디서고 손을 내놓기가 부끄러워 항상 손을 감추고 다녔다.

봄볕에 그을린 얼굴을 하얗게 한다고 내 나이 또래의 여자들이 피부과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것 또한 그런 화창한 봄날이었다. 그런 날은 집에 돌아가 거울 앞에 앉아 함부로 버려진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거리에 서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에 쓸려가며 눈이 오면 전을 펴고 있는 화장품과 함께 온몸이 꽁꽁 얼었던 겨울날이 있었다. 그래도 언제나 내 전을 찾는 사람들로 인해 늘 행복했고 감사했다. ‘이 추운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겠지’하는 감사한 마음으로 장을 떠돌며 장터에서 언젠가 생을 마감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살다 홀연히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온 천지가 환하게 꽃망울을 터트리던 3월의 어느 날. 거울 앞에 선 나는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내 나이가 아직 젊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 들어왔다. 그리고 내 살아온 날들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남은 날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보면 참으로 지독하게 쉬지 않고 일을 해왔다. 오죽하면 친정언니는 내가 불우했던 날에 대해, 억지로 살아도 그리는 못살겠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형제들은 저렇게 열심히 일을 하니 마음을 다주고도 또 주고 싶어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늘 죄스럽던 마음이 조금은 감해져 그제서 야 편안하게 다리가 풀렸다.

이제 그만 나를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그 때 들었다. 15년 동안 충청도 일대를 떠돌던 보은장, 금산장, 논산장, 영동장을 접고 옥천 장날이면 전을 펴던 농협 하나로마트 옆에 있는 가게를 얻게 되었다. 내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었던 옥천 장날이면 전을 펴는 자리와 근접한 곳이라 망설임이 없었다.

그래도 옥천장날엔 오랫동안 내가 일하던 장터에 서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 여전히 쏟아질 햇볕과 바람과 비와 눈을 잊지 않고 추억할 수 있는 곳. 가장 낮은 자리에서 먼 곳을 아련히 바라보며 봄이면 행락객들 틈에서 꽃 몸살을 앓으며 무거운 생을 짊어지고 이곳저곳 떠돌며 장을 찾아다니던 내 젊은 날들,생각하면. 생각하면. 더없이 빈곤했지만 그 하루하루에 희망을 부여하며 최선을 다했던 시간들. 이제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이다.

이런 저런 생각들로 그동안 짐처럼 무거웠던 삶의 무게들이 한 순간 몰려 온 탓인지 혼곤해졌다. 장을 접고 가게에 들어앉아 사나흘은 몸살을 앓았다. 가까웠던 동료 장꾼들과의 다정했던 날들에 대해 함께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혼자 쓸쓸해했다.

장날이면 몸이 성치 않음에 지팡이를 짚고 찾아와 주시던 단골손님들, 김장철이면 이것저것 먹어보라고 담아 오시는 참 따사로운 마음을 지닌 어머니들, 손수건에 떡을 싸가지고 오셔서는 새댁을 보니 고생하는 막내딸이 생각난다며 조금이라도 따뜻할 때 먹으라며 떡을 주저 없이 내놓던 할머니, 이제 인정이 넘치는 이 분들을 언제 또 다시 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우울하기도 했지만 다시금 찾아 와 줄 새 손님을 기다리면서 먼 길을 돌아왔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이제 사 내 자리로 돌아왔구나 하는.....가만히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이르게 가게 문을 열면 지금은 세상에 없는 어머니가 환히 웃고 계실 것 같은 마음이 따스한 곳, 이제 내 고향이 되어버린 옥천에서 환한 봄날에 근사한 화관 하나 선물받은 것 같은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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