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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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의 변화
  • 옥천향수신문
  • 승인 2016.05.0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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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던 발길을 멈추게 하듯 이제 내 나이도 중년이 넘어 가끔은 쉼표가 필요할 때라 본다. 한참 아이들 키우며 일할 때는 왜 그리할 일도 많고 갈 곳도 많은지? 어쩌다 조금 늦게 집에 오면 눈을 부릅뜨고 혼내는 남편 눈치 보랴, 토끼눈을 뜨고 기다리는 두 녀석들 등살에 어떻게 흘러갔는지 몰랐다.

변하는 세월 속에 어느덧 본 책에 덧붙는 부록 같은 나이다. 이제 녀석들 각자 제 몫을 하기 위해 부모와 같이 있는 시간도 적어지고 품안에 자식이란 말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여자라는 존재는 변함없이 아내와 엄마 역할을 잘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

요즘 나오는 많은 드라마 속에도 주인공 어머니들은 구속에서 벗어나 일탈의 쾌락을 처음 맛보고 즐거워 하는 것을 본다. 항상 똑같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열망이 표현이 되지 않았을 뿐 항상 잠재되어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한동안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오늘 같은 봄날평생 잊지 못할 거짓말을 하고 1박 2일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 온 적도 있었다.

도저히 남편이 허락은 하지 않을 것같아 고민 끝에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벌써 10여년이 지난일이다. 모 전자회사에 근무 하고 있을 때 1박 2일 교육이 있다고 문서를 작성해서 우편으로 발송했다.

보낸 곳은 (주)00전자 받는이 000라고 써서 빨간 우체통에 쏙 넣고 조금은 떨렸다. 그 다음날 여지없이 우편물은 우리 집으로 발송 됐고 그것을 식탁 위 남편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았다.아니나 다를까 퇴근하고 오자마자 우편물을 보고 ‘당신 1박 2일 교육 가는 거야?’ 하고 묻는다. ‘글쎄 가기 싫은데 어쩔 수 없잖어’ 태연하게 보면서 능청을 떨었다. 아이들 반찬이랑 간식거리와 기타 등등 잘 챙겨 놓았는지 검토하고 잘 다녀오라고 했다.

그날 밤 어찌나 밤이 길던지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갔다. 내가 제일 먼저 와서 기다렸다. 다들 바쁘게 서둘러서 왔다고 수다를 떨었다. 오늘 친구들은 최고로 예쁘게 화장도 하고 가벼운 봄 옷 차림으로 제일 멋지게 입고 온 것 같았다.

누가 기다려 주지도 않았고 반겨 주지도 않았지만 처음으로 외박하는 날이라 기분이 들떠있었다. 휴게소에 들러 맛있는 호두과자랑 호떡 오뎅 등을 사먹고 즐겁게 갔지만 저녁을 먹고 다들 하나 같이 푹 숨이 죽어 있었다. 집에 있는 가족들 생각에 너나 할 것 없이 전화하는 소리만 들릴 뿐 출발할 때 즐거운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참 여자란 다 그런 거구나 집 떠나오면 편하고 즐거울 줄 알고 손꼽아 기다리고 대단한 거짓말까지 하고 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집 생각에 맘이 편하질 못했다. 그렇게 편하지 못한 여행을 마치고 집에 와서 또 다시 자유롭지 못한 시간에 쫓기며 살았다. 아무리 배가 고파 견디기 힘들어도 내가 늦게라도 와서 밥을 차려 줘야 먹는 그런 남편과 살아 온지도 벌써 30년이 지났다.

살면서 많이 다투면서 그렇게 구속 하던 남편이 어느 날부턴가 변하기 시작했다. 이제 남편도 중년이 훨씬 넘은 나이라서 그럴까? 늦는 다고 전화하면 라면 끓여 먹을 테니 천천히 조심해서 오라고 하며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 주지도 않고 먼저 자기도 한다. 막상 자유를 얻고 보니 그리 갈 곳도 없고 불러주는 데도 별로 없다.

가끔씩 남편 때문이라고 투정 아닌 투정도 부린다. “예전에 당신이 너무 구속을 많이 해서 지금 아무도 불러 주지 않는다고” 어처구니없는 투정인줄 알지만 웃으면서 받아준다. 그 시절 바쁜 생활 속에 왜 그리 갈 곳도 많고 할 일도 많았는지 언제나 자유를 원하며 불평 속에 살아 왔던 날 들이었다.

요즘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이 지구상에 발 딛고 살아가는 사람 그 누구도 나와 무관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거다. 아주 커다란 끈으로 만난 남편을 때로는 소중이 여기지 못한 내 잘못을 스스로 꾸짖기도 한다.

화창한 봄날 베란다에 널려있는 남편의 티셔츠가 봄바람에 살랑 인다. 그때 그 추억을 떠올리며 커피 한잔을 마셔본다. 봄의 움직임 속에 얼어 죽은 듯 말없던 나뭇가지 끝에 숨이 차오르고 꽃이 먼저 피었던 봄꽃들이 연둣빛 새순으로 머리를 내민다. 부록처럼 남은 세월이 있어 덤으로 사는 기분도 들지만 30년 만에 변화된 남편을 생각하면서 행복한 웃음도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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