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정신 깃든 가위질로 '46년째' 세월을 깎는 이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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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정신 깃든 가위질로 '46년째' 세월을 깎는 이발사
  • 이성재기자
  • 승인 2016.05.2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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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졸업하고 이발 기술 배우기 시작
문화원장 권유 지용제 ‘추억의 이발소’ 참여
멀리서 오시는 고객을 위해 이발가격 고수

긴 가죽 띠에 면도날을 다듬고 난로에 비누거품을 데워내던 동네 이발소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첨단시설로단장한 미장원에 밀려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추억의 이발소를 30년 가까이 같은 장소에서 운영해 온 주인공이 있어 그 추억을 더듬어 봤다.                                                   <편집자 주>

■ 12남매 중 셋째로 생계 위해 이발 기술 배워

추억을 다듬는 이발사가 단골손님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굳이 스타일을 말하지 않아도 이발사는 녹슬지 않은 기량을 자랑이라도 하듯 노련하게 손님의 머리를 깎아낸다.

손님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움직이는 손은 서두르거나 허둥대는 법이 없다. 여유 있게 일하는 모습에 오랜 내공의 깊이가 느껴진다.

옥천읍 상계리(구읍)에 있는 '바다이용원'. 네댓 평이 되지 않는 작은 이발소는 주인 조길현(61)씨가 26년째 운영하고 있다. 앞서 안내·안남 등에서 운영했던 이발소까지 합하면 40년이 넘는다. 수십 년을 이어 온 단골손님들은 여전히 조씨의 이발소를 찾는다.

친구들은 중학교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할 때 12남매 중 셋째였던 그는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생계를 위해 국민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옥천읍 수북리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던 사촌형님의 권유로 잔심부름을 하며 이발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조씨는 “곧바로 기술을 배울 줄 알았는데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일은 수건을 세탁하는 일, 손님들 머리 감겨주는 일, 이발하고 난 뒤 머리카락 치우는 일만 했다”며 “월급은 고사하고 밥 먹여 주는 것을 고마워하며 10년 가까이 이발기술을 배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눈썰미와 손기술이 좋았던 그는 가족과 사촌형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더 열심히 이발 기술을 익히는데 노력했다.

조씨는 “하나하나 기술을 배우고 습득하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꼈다”며 “하루 일과를 마친 후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그 날배운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 “아무리 힘들어도 고무풍선을 불어놓고 면도질 연습을 하던 시절이 그립다”고 덧붙였다.

■ 1991년부터 현 자리에서 26년째 이발소 운영

조씨는 군대를 가면서 사촌형님의 이발소를 떠나게 됐다. 군대에서 그는 병사들의 머리를 잘 깎는다고 소문이 나면서 군 생활도 그리 힘들지 않게 보냈다. 전역 후 그는 사촌형님의 이발소에서 독립해 안내면 도이리에 처음으로 본인의 이발소를 열게 됐다. 이후 옥천읍, 안남면 등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다 1991년부터 현재의 자리에서 26년째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조씨는 “이발소 운영이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었는데, 단 한 번도 다른 직업을 찾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며 “집안 어른들께서 항상 길현이는 기술도 좋고 수완도 좋아 성공할거라는 말을 자주 들어서 이발사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말했다.

이발사가 천직이라는 자부심은 4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가위와 빗을 한시도 놓지 않게 한 원동력이다. 그는 “요즘 자기 일에 보람을 느끼면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한 가지 기술을 익혀 평생을 연마하면서 사는 것도 행복한 일”이라고 말했다.

남들보다 빨리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또 그것이 적성에 잘 맞았던 탓에 그는 남들보다 경제적으로 일찍 독립할 수 있었고 동생들에게도 든든한 형과 오빠로 살 수 있었다.

■ 대부분 15~25년 된 단골로 각별하게 느껴져

조씨는 조금은 이른 오전 6시에 이발소 문을 열어 오후 8시가 넘어야 문을 닫는다. 12시간이 넘게 서 있어야 하는 그에게 체력적으로 무리가 있을 법 한데도 옥천군 전 지역과 영동, 보은, 대전 심지어 청주에서도 오는 손님들이 있어 이발소 문을 일찍 열고 늦게 닫는다.

조씨는 “단골손님들과 주민들이 이발을 하려고 찾아오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마을 이야기, 사회, 정치, 경제 등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이발소를 방문하기도 한다”며 “우리 이발소가 단지 머리를 깎는 장소가 아닌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발소는 일요일에도 영업을 한다. 예식장, 돌잔치, 칠순잔치 등 여러 행사가 있는 단골들을 위해서 몸은 조금 힘들지만 이발소 문을 연다.

그는 “손님들 대부분이 15~25년 된 단골들이라 세월을 같이 동반해 각별하게느껴진다”며 “나와 손님의 얼굴에 생기는 주름을 보며 지난 시간들이 제 인생에 후회나 회한으로 남지 않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방문 이발도

조씨는 김승룡문화원장의 권유로 지난해부터 ‘추억의 이발소’라는 행사 명칭으로 지용제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처음 하는 행사라 부담이 컸지만 방문객의 호응이 굉장히 좋아 부담을 덜었다”며 “외지에서 오신 방문객과 축제에 온 주민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지용제를 방문해 머리를 깎은 손님이 다시 이발소로 찾아 온 경우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바다이용원'은 20년 가까이 이발비용을 인상한 적이 없다. 멀리서 일부러 차비를 들여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어 가격을 올리지 않고 있다. 조씨는 “다른 이발소에서 왜 가격을 올리지 않느냐는 말도 듣고 있지만 멀리서 오시는 손님과 단골들을 위해 앞으로도 올릴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발소를 찾아와 이발하기 힘든 환자나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위해 직접 방문해서 이발을 하고 있다. 옥천 지역이라면 어디든지 가리지 않고 마을을 찾아가 이발소에서 받는 가격 그대로 머리를 깎아주고 있다.

그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있는 분이라도 전화만 주신다면 매장가격으로 언제 어디든지 찾아가서 이발을 해드리겠다”고 말했다.

■ 미용실에서 일하는 딸과 서로 조언 주고받기도

조길현씨의 딸 다혜(34)씨는 서울 종로의 대형미용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딸이 직업을 선택하는데 그의 조언이 있었다.

조씨는 “같은 계통의 직업에 있다 보니 서로 조언도 주고받기도 하고 좋은 제품도 알려주고 하다 보니 딸과의 사이가 더 돈독해진 거 같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아들 현주(33)씨 또한 아버지의 직업을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는 “아들이 명퇴나 퇴직 이후에 고향으로 돌아와 나에게 이발 기술을 배워서 나와 함께 이발 봉사를 다니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라며 “그런 일이 실현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애비의 직업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웃으며 말했다.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기술을가지고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직업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조씨는 “주위의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보면 대부분 퇴직하고 한가로이 시간을 때우기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하지만 내 기술을 활용해 남은 시간을 손님들과 소통하는 일이 즐겁고 늦은 나이까지 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이발 후에 손님들이 본인의 얼굴을 보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볼 때마다 내가 이 일을 선택한 것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이발 외에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고 싶어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발소보다 미장원을 선호하고 있다. 이발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도 대부분 미용학원이나 미용실을 찾는 경우가 많고 이발소는 추억의 대상으로 여기고 노인네들이나 머리를 깎는 장소로 인식한다.

조씨는 “손님들에게 정으로 다가갈 수 있는 오래된 이발소가 마을의 활력이 되고 마을사람들이 대화의 장소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나이가 더 들어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시골마을이나 외진 곳을 찾아가 거동이 불편하거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방문 이발봉사를 다니고 싶다”고도 말했다.

‘바다이용원’은 정지용 문학관 인근 옥천읍 상계리 96-3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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