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 수집은 나의 행복이자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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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 수집은 나의 행복이자 소망"
  • 천성남 기자
  • 승인 2016.02.29 1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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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기(61·서예가) 머문시간갤러리 관장
▲김구 시대 당시 유행했던 검은 둥근테안경.

 

 

어떤 분야에서 기예가 뛰어나 유명한 사람을 명인이라 하고 한 가지 일에 몰두해 창작하는 예술가를 두루 일컬어 장인이라 한다. 각고의 땀과 노력으로 이뤄낸 예술성으로 오롯이 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은 그래서 늘 아름답다. 본란은 지역민과 출향인을 비롯 두루 고유한 예술성으로 옥천을 빛내고 있는 명인장인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책부터 생활용품 등 다양하게 수집… 역사적 산물자부심"
"조선시대 서예가 김규진 작품·이승만 사진 등 보물급 진열"

◇ 5개월간 조선 23대 순조임금 상량문필사본 완성
  옥천읍내 명가로 자리 잡은 ‘마당넓은 집(향수길 45· ☎ 043)732-5815)’ 에는 30여 년간 인고 속에서 묵향을 풍기며 예인의 길을 걸어온 평거 김선기(61) 서예가가 있다. “내 생애에서 가장 영예스러웠던 그 때의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며 5개월간에 걸쳐 조선23대 순조임금 상량문필사본을 900㎝붉은 비단에 한자 한자 완성 봉안했던 그의 인생에서 인연처럼 다가온 또 하나의 자식 같은 애장품(?)에 얽힌 사연을 털어놨다.

▲광무10년 7월 17일자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독립투사 민영환이 '동포에게 전하는 글'이 그대로 보전돼 있다.

 

 

 

 

 

 

 

 

▲김선기 서예가가 한 정치인으로부터 얻은 수첩에서 당시 거물급 정치인인 윤보선, 이기붕, 이승만 등의 전화번호가 적힌 주소록을 펼쳐 보이고 있다.

◇골동품은 장차 아이들에게 정직한 역사적 산물
  “수십여 년 간 별다른 취미 없이 서예에만 몰두하다 보니 절로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술·담배도 안하고 여기저기 마실 다닐 일도 없었지요. 자연히 스트레스 해소할 방법이 필요했어요. 그럴 때 저에게 기쁨과 위안을 안겨준 것이 바로 골동품이었어요. 처음엔 공부를 위해 찾아다녔던 고서(옛날책)였지요. 책을 찾기 위해여러 지역을 안간데 없이 뒤지고 다니다보니 눈에 띈 것이 바로 아깝게 버려지는 옛 물건들이었어요. 각종 책에서부터 시대변천에 따라 더 이상 쓰여 지지 않게된 다양한 생활용품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옛 물건들과 인연이 되었어요. …
 아, 저 물건들을 가져다 놓고 깨끗이 보존해 놓는다면 언젠가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나 사람들에게 조상들의 생활상을 보여줌은 물론 정직한 역사적 산물이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박물관 내에 전시되어 있는 50~60년대 이발소


 

▲조선광문회는 1910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한국고전간행단체, 최남선(崔南善)등이 고문헌의 보존과 반포, 고문화의 선양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사진은 당시에 사용했던 서고.

◇시간에 따라 쌓여져가는 ‘애장품1호’로 행복
  “그러다보니 집안 구석구석에는 한군데 성한 곳 없는 고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만 갔어요. 그럴 때마다 집사람의 성화는 날로 거세지고 종일 어디로 치워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려야 했어요. 그러나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도 그것들은 어느덧 나의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기쁨이 되고 행복감을 주는 ‘애장품1호’가 되더군요. 시간관계 없이 글을 쓰다가 힘이 들때 면 아무도 몰래 조용히 골동품을 애만지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보면 놀랄만큼 충족감이 깊은 곳에서 올라왔어요. 지금도 변함없이 골동품과의 대화는 큰 위안과 기쁨이고 가장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됐어요.”
◇아내 몰래 숨기며 살아온 골동품과의 갈등
  “어떤 분이 저를 보고 묻더군요. 그게 그렇게 좋으냐고요. 25년 전쯤, 형편이 매우 어려웠던 시절, 한 작은 아파트에서살 때였어요. 골동품 때문에 집사람에게 늘 미안할 때였어요. 좁은 집안에 무차별 들여오는 각종 고물들과의 갈등 때문이었지요. 틈만 나면들이지 못한 고물들을 집밖에 숨겨두고 집사람이 장을 보러나갔을 때 얼른 아파트 밑바닥 모래에 감춰놓은 고물을 가져다가 정성스레 씻고 말리고 닦아서 열심히 진열했던 기억이 나요. 집사람이 ‘이건 못 보던 건데’하면 ‘저쪽에 있던 것을 옮겨놓은 거야’라며 너스레를 떨었어요. 당시는 운영했던 학원에 진열만 해 놓아도 행복할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 물건들과 함께 세월이 흐르다보니 이제는 산더미만큼 귀한 역사적 사료가 되었어요. 지금도 변치 않고 솟구치는 ‘골동품 사랑’은 나의 즐거움자체입니다. 죽을 때까지요.”
◇이시종 지사, 누더기 이불만지며 어머니 ‘회상’
  “일전에 ‘머문시간 갤러리(박물관 명칭)’를 방문하셨던 이시종 도지사님이 자연색 그대로를 염색해 만든 누더기 이불을 보시고 ”이 이불을 보니 어머님이 생각난다“며 무던히도 향수에 빠졌던 일화가 생각나네요. 아마 검은 무채색에 누덕누덕 기운 이불이었지만 그 자체로 사람들의 생각이 머물고 싶은 아련한 추억 속으로 빠지게 만드는 마력이 있거든요. 이것이 골동품이 주는 색다른 경험입니다.
지금도 지인들이나 예서제서 사람들이 방문하면 언제나 귀한 애장품들을 모아 놓은 갤러리를 상시 개방하면 좋겠다는의견을 내시더군요.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봐요. 그 때는 제가 글 쓰는 것을 내려놓게 되는 날이 아닐까요.(웃음)”
◇처음 공개되는 정지용시인의 고자료 등 다수
  “아직 공개되지 않은 깜짝 물건들이 많아요. 임금님이 신하에게 내리신 ‘교지’라든가 적어도 공개하기 어려운 골동품들이 있어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옥천이 낳은 정지용 시인의 고 자료부터 각종 희귀서책들… 옛날 순찰병이 야경돌 때 ‘딱딱‘ 소리 내던 박달나무 물
건, 조선시대 책표지 인쇄기인 ‘능화판’, 오랜 연대로 추정되는 천 씌운 등잔대, 점술가들의 점술통, 망자의 일대기 담은 ‘지석’, 80년 전 추정 중국집간판, 시어머니가 물려준 곳간열쇠, 60년 전 택시미터기, 경성고무 만월표 검정고무신 등을 바라보면 신기하게도 과거 속의 생활상들이 스물 스물 기어 나와요.”

▲대통령에 기호1 이승만박사를, 부통령에 기호2 리기붕을 뽑아주자는 당시 선거포스터.

 ◇대한제국에서 1990년대의 귀한 보물들 진열
  “방문객들이 매우 좋아하는 것은 지금은 볼 수 없는 작은 레코드판들이지요. 가요반세기 가요를 풍미했던 황금심의 ‘피리 불던 모녀고개’, 박재란의 히트앨범, 고복수 최숙자 히트앨범 등 다양한 레코드판을 보며 당시 유행했던 노래들을 추억할 수도 있어요. 소뿔로 만든 상투커버, 김구선생시대 까맣고 둥근 안경테, 선비들이 과거보러 갈 때 소맷부리에 넣고 다닌 작은 벼루, 한 정치인으로부터 얻은 어떤 수첩은 당시 윤보선, 이기붕, 이승만등 거물급 정치인의 전화번호가 실린 주소록이었어요. 모아진 고품들을 하나하나 시대별로 보면 아마 1897년대 대한제국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지금은 볼 수 없는 귀하고 귀한 시대의 보물들이지요.”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독립투사의 글 그대로
  “서예작품으로 조선시대 서예가 해강 김규진의 작품, 석재 서병오 작품이 액자 그대로 보존돼 있고 대한민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사진이 색 바랜 채로 액자에 보존돼 있어요. 또, 광무10년 7월 17일자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독립투사 민영환의 ‘대한제국 동포여러분…’이란 기사가 그대로 보존돼 있고 88올림픽 상징물인 굴렁쇠, 삼양회사 아이스깨끼통 등 당시 시대상을 말해주는 역사적 보물들이 저의 자부심이 됐지요.”
 숨어있는 골동품을 찾아나서는 데는 힘들고 애틋한 사연도 많지만 인생에서 두 번째 찾아온 기쁨이자 그의 소망인 골동품이 장차 후손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조상들의 귀한 역사적 산증인임을 알기에 언제까지라도 수집 행보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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