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흐르듯 양수리 할매들의 인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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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흐르듯 양수리 할매들의 인생사
  • 도복희기자
  • 승인 2020.03.05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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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넘게 아래윗집 친자매 같은 이웃
“다 다녀 봐도 양수리 같은 마을 없어”

 

마을은 사람을 품고 그 품에 깃든 사람들은 마을을 만들어간다. 열아홉, 스무살에 시집 와 한평생 아이들을 낳고 기른 어르신들의 삶은 엇비슷해 보여도 같은 인생이 없었다. 양수리 지역에서 앞뒷집 이웃으로 살아가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해 온 그들은 서로의 낯빛만으로도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냈다. 30~40여년 같이 한 세월 동안 쌓아놓은 정이 가득한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옮긴다. 그 누구의 인생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팔순을 넘기고도 고운 미소를 가진 옥천읍 양수리 어르신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양수리 어르신들
천복순(87) 어르신은 21살에 양수리로 시집와 66년을 살면서 4남매를 낳아 길렀다. “처음 왔을 때와는 딴판으로 길도 잘나고 집도 잘 지어졌다”며 “양수리는 마을 사람들이 다 온순해 서로 의지하고 맘을 맞혀 살아왔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아들 딸들이 잘 자라줘 고맙다고 전했다.

김점순(83) 어르신은 22살에 시집와 61년을 살면서 3남 2녀를 키워 출가시켰다. “예전에는 기와집이 한 채 밖에 없는 산속 지역으로 콩, 나락, 고추 등을 농사지어 자식들을 키웠다”고 옛날을 회상했다.

이춘분(74) 어르신은 마암리에서 살다가 20년 전 양수리로 이사 왔다. 1남 4녀, 5남매를 이곳에서 키웠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와서는 어색하고 낯설었는데 지금은 정이 들어 이웃이 다 좋다”며 “우리 마을은 단합이 잘 되고 주민들이 이해심이 있어 서로 양보하며 분란이 없다”고 마을에 대한 자랑이 이어졌다. 이어 “딸들이 주말마다 찾아와 엄마가 할 수 없는 것들을 도와줘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이교석(81) 어르신은 20살에 시집왔다. 4형제를 양수리에서 키웠다. 이곳은 산이 좋고 인심 좋은 마을이라고 했다. 아들들에게 사랑한다는 마음을 전하며 엄마는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환하게 미소지었다.

차언예(82) 어르신은 20세에 시집와 62년을 살면서 아들 넷을 키워 출가시켰다. 10년 전 돌아가신 시어머니, 시아버지를 끝까지 모시며 며느리와 부모, 아내로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차 어르신 역시 “아들 며느리에게 항상 고맙고 이곳에서 엄마는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고진순(81) 어르신은 22세에 시집와 아들 둘, 딸 둘 4남매를 키웠다. 양수리는 이웃 간에 싸움 한번 안 하고 산 마을이라고 했다. 이어 타지에 살고 있는 자식들에게 “너희들만 건강하면 바랄 것이 없다”는 말을 전했다.

김동순(88) 어르신은 26세에 이곳으로 시집왔다. 2남 3녀, 5남매를 키웠다. 양수 2구 아들네 가까이 이사하고 나서도 친구들을 보러 양수리 마을회관에 자주 찾아간다. 그곳에 가면 편안하다고 했다.

유길자(84) 어르신은 24살에 시집와 1남 3녀를 키우며 양수리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권해준(86) 어르신은 다른 곳에서 살다가 이사 온 후 양수리에서 50년 넘게 살며 3남 1녀를 키웠다. 이웃 친구들이 이해심이 많고 서로 우애 있게 지낸다고 했다. 권 어르신은 타지에 살고 있는 자식들에게 “엄마에게 잘해줘 고맙고 자주 전화해주고 생각해줘 고맙다”며 사랑한다는 말로 자식에 대한 애틋한 정을 표현했다.

김서운(85) 어르신은 양수리가 고향이다. 18살에 청마리로 시집갔다가 21살에 양수리로 이사와 3남 2녀를 키웠다. 어르신은 “다 다녀 봐도 우리 동네만큼 좋은 곳은 없더라”며 “친구들도 하나 같이 이쁜 마음을 가지고 화기애애하게 지낸다”고 전했다.

강을석(85) 어르신과 김홍림(86) 어르신은 아래윗집에 사는 친구 사이다. 고향인 양수리에서 평생을 살아왔다. 김 어르신은 21세에 가화리로 시집갔다가 2년 후 고향으로 이사와 2남 3녀를 키웠다. 55세에 혼자된 어르신은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이 많았지만 돌아보니 감사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어릴 적 고향 친구였던 두 사람은 결혼 후에도 아래윗집에 친자매처럼 살며 싸움 한번 안하며 지낸단다. 

△양수리는
옥천읍 서부에 위치하며 면적은 2.55㎢, 인구는 1,135명이다. 동쪽은 마암리, 남쪽은 마항리, 서쪽은 군서면 오동리와 하동리, 북쪽은 가화리와 인접한다. 양수리는 조선 후기 ‘여지도서’에는 수정리(水井里)라 했으며 현재 마항리와 양수리가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강제 통폐합으로 양수리라 하고 마항리는 분리해 마암리에 속했다. 일찍이 1968년 양수리 출신인 기업가 정순조가 ㈜배창공장(현 국제종합기계)을 마을 동쪽 들에 세우면서 옥천의 공업지대가 되었다. 양수리는 윗수정(上水井)과 아랫수정(下水井)을 합해 두 양兩 자와 물 수水 자를 써서 양수리兩水里라 했다. 삼국시대부터 삼성산성에서 물을 길어 먹던 좋은 샘이 있었기 때문에 수정이라 했다. 양수 2리가 있다. 자연마을은 윗수정, 아랫수정, 못골, 새마을, 군인주택, 고려아파트, 수정아파트 등이 있다. 문화유적은 양수리 입석(선돌), 용봉산성이 있다. 특히 양수1리는 양수리 남부에 위치하며 양수리 본 마을로 동쪽은 마암리, 남쪽은 마항리, 서쪽은 군서면 오동리와 하동리, 북쪽은 양수2리와 접한다. 유적지로 수정각과 월암사지가 있다. 동부는 공업지역으로 ㈜국제종합기계를 비롯한 공장들이 입주해 있고 예비군 훈련장이 있다. 자연마을로 윗수정, 아랫수정, 못골이 있다.
/도복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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