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청산군 한말의병 활동(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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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청산군 한말의병 활동(5)
  • 전순표 시인 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 승인 2020.03.1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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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표 시인 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전순표 시인 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군대해산과 정미의병 1907~1911년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일제는 1907년 6월 고종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군대해산 등으로 식민지화를 가속화하였다. 군대해산으로 촉발된 정미의병은 1907~1910년까지 조선이 망국하는 경술국치, 한일합병 이후까지 벌어진 의병전쟁이다. 정미의병은 구한말에 군대가 해산되면서 구한국군이 의병에 합류함으로써 소총으로 무장하고 군조직도 어느 정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1895년 을미의병, 1905년 을사의병 때의 의병장은 양반들 일색이었으나, 1907년 정미의병 때는 군인들이 대거 동참하며 평민, 포수까지 참가해 대규모 항일전을 펼치게 되었다. 정미의병의 편제는 제천 유인석 의병부대의 부장이었던 이인영이 총대장에, 허위를 군사장으로 하여 전국 의병부대를 24진으로 편성하여 340여 개 전국의 군이 참가하였고 의병 1만여 명이 경기도 양주에 집결, 한양으로 진격했다. 그러나 막강한 일본군에 패해서 각 지방으로 흩어진 의병들은 산발적인 유격전을 펼치며 1908~1909년에 이르러 정미의병의 절정기를 맞는다.


일본군은 1909년 9월 1일 의병에 대한 대토벌전을 벌여 의병 근거지를 초토화함으로써 잔여 의병들은 만주로 피신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한다. 1907년부터 1911년에 걸쳐 의병단체는 600개에 이르렀고 1개 의병부대나 단체는 3,000~6,000명이며 대표적인 의병장은 민종식, 허위, 최익현, 류인석, 이강년, 기삼형, 민긍호, 홍범도 등이다.


△옥천·청산군 정미의병과 국책보상운동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되자, 1907년 3월 3일 정덕용 등이 옥천군 국채보상단 연의무회를 개최, 국채보상을 결의하고 4월 들어서 이규연, 정덕용 등이 해창호 상점에서 국채보상단 연의무회 사무실을 옥천구읍에 개설하여 모금하였다.


옥천에서는 이규연 10원, 정진용 3원, 독립지사 전좌한 작은 할아버지 전흥규 참봉 3원, 이영갑, 금영석, 류병헌이 각각 1환씩을 냈고, 정태국(정지용 부친) 등이 50전씩 냈다. 각 마을들에서도 동참하여 1907년 5월 4일 옥천군에서 거둔 국채보상모금액은 모두 2백 5환 55전으로 애국심이 담긴 옥천군민의 성금이다.


1907년 3월 25일 무주, 진안, 옥천, 청산, 영동, 금산에서 활약이 컸던 문태서 의병장 휘하의 김부개, 장한갑, 등 의병 50명이 총 35정과 곤봉으로 무장하고 옥천군 양남면 필력촌 용산리(현재 영동군 학산면) 홍 판서 집에 들어가 협박하여 군용자금 30원을 받아갔다. 또 6월 15일에 문태서 의병장이 총과 칼로 무장한 의병과 함께 옥천군 양내면 가곡리(현재 영동 양산) 이 모씨 집에 들어가 20원을 강취하였다.


△이원역 기습, 덕유산 문태서 의병
1909년 9월 하순(음력) 옥천군 양남면 지내리(영동 학산)에 옥천 출신 박선보 의병 등 32명이 대담하게 경부철도 이원역을 기습하여 철도 통신을 불통케 만들었고 이원역을 불태우고 일본인 역무원에게서 200원을 탈취해 갔다. 1907년 8월에는 의병 7명이 옥천군 이남면 계촌리(이원 평계)를 습격, 8월 24일 조석우 의병장 등 20명이 옥천군 양내면 누교리(현 영동)를 습격, 민가에 불을 질렀다. 1907년 8월 문태서 의병부대는 영동, 청산, 옥천, 보은, 상주, 금산 산간지역에서 의병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장운식 의병 이원 구룡 곽준희 11명 체포
1909년 4월 13일 영동경찰서 발신 제864호에 의하면 충북과 전북에서 활동하는 의병들을 수사하던, 중 지난달(3월) 9일 이후 장운식의 부하 11명을 체포하여 역시 공주 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 송치하였다. 이때 체포된 의병은 옥천 출신 의병으로 군서면 은행리 양심이 마을 주영식(20세), 군북면 증약리 김성녀(24세)과 강운필(29세), 김화선(31세) 등이다. 상해임정의 임시의정원 비서장였던 곽중규 선생의 부친인 곽준희 선생은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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