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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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구경
  • 이수암 수필가
  • 승인 2020.03.1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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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암 수필가
이수암 수필가

 

안면도에서 국제 꽃 박람회가 열린다기에 꽃구경을 나섰다. 꽃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전시장에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누군가 뒤에서 꽃구경이 아니라 사람 구경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나도 저 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초라한 몰골이지만 옷깃을 여며보았다. 무엇을 구하려고 무엇을 찾으려고 저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모였을까? 나는 무엇을 찾으려고 이 많은 인파 속에서 떠밀려 가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꽃은 고향일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언제나 한없는 그리움으로 가슴 설레게 하는 고향 산야에 피어 있던 꽃들이 나를 여기까지 불러낸 것이 아닐까?

노랫말 몇 구절을 흥얼거려 본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능금꽃 복사꽃이 피는 내 고향”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고향을 그리는 아름다운 시어들이 우리들 마음속에 농축된 모습으로 남아있는 한 꽃구경은 언제나 성황을 이룰 것이다.

전시장은 여러 개의 실내 전시장과 실외의 화단과 조형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먼저 야생화 전시실에 들어갔다. 활짝 웃어야 할 꽃들이 어딘가 생동감이 없어 보이고 고향을 여읜 서러움에 떨고 있는 것 같았다. 들꽃은 들에 있어야 하는데 숨 막히는 비닐하우스 속에서 조롱 속의 새가 되어 아름다움을 자랑하기에도 몹시도 지쳐 있는 것 같았다. 그 많은 야생화 중에서 내가 이름을 알 수 있는 것은 열도 채 못 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무식이 부끄럽다기보다는 그만큼 자연과 먼 거리에서 살고 있었음이 서글펐다. 꽃 이름과 꽃을 맞추어 가다보니 동행했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남은 부분은 감상을 포기하고 일행을 찾아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꽃으로 수놓은 대형 지구본 앞에서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예를 갖추었지만 내심으로는 진행 속도가 너무 빨라서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없다고 투덜대고 있었다. 녹색 바탕에 노랑, 빨강, 보라 등으로 그려진 6대주의 모습은 참으로 걸작이었다. 수많은 작은 꽃들이 놓일 자리에 놓여서 조화의 미를 나타내고 있었다. 여기에 동원된 꽃들은 이미 꽃으로의 가치를 상실하고 있었다. 한 송이 한 송이의 개성미는 지구본이라는 꽃다발 속에 조화미로 흡수되어 하나의 구성 인자로 충실하고 있었다.

다음 전시실로 이동하는 사이에 튤립 화단을 만났다. 한 마디로 여군사관학교 열병식을 보는 것 같다. 같은 키에 같은 색깔의 제복으로 절제되고 통일된 모습이다. 가랑비에 함초롬이 젖은 모습이 더욱 윤택해 보인다.

꽃은 만나는 자리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진다. 박람회장에 전시된 꽃을 보고는 한 송이 값이 얼마나 될까하는 환금가치를 생각하고, 돌아설 길 없는 절벽 앞에 핀 꽃 한 송이를 보고는 그 거센 비바람에 용케도 살아남았구나 하는 탄성과 함께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희망과 용기를 주는 구원의 정화로 마음에 새긴다.

꽃의 아름다움은 형태미와 색상미로 나눌 수 있다. 아름다운 여인의 몸맵시에 마음을 빼앗기는가 하면 화려한 의상에 눈길이 머무는 경우가 있다. 꽃은 이 두 가지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 사람이 꽃을 반기는 것인지 꽃이 사람을 반기는 것인지는 확인 된 바가 없지만 만나면 반가운 존재다. 만나면 반가운 존재가 많을수록 풍요로운 삶이요 행복한 삶이다.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이든 동료이든 은은한 향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꽃밭이 아닐까? 내 주변을 꽃밭으로 만들기 위해 내 스스로 꽃이 되어야 할 텐데 나는 정말 어떠한 꽃일까?

망상에서 깨어나 다시 꽃을 본다. 온실 속의 꽃들이 곱게 분단장한 유리방 속의 여인들이 슬픈 미소로 손님을 부르는 모습 같아 서글펐다.

전시가 끝나갈 무렵이라 그런지 페튜니아 화단이 모두 시들어 버렸다. 내 옆에 있던 젊은 여인이 시들은 꽃을 그냥 두었다고 불평을 한다. 아름다움이란 영원할 수 없는 것일까?

꽃이 진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인데 왜 사람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싶은 것일까? 우중충하게 퇴색된 꽃들을 보며 내 나이를 세어본다. 이마의 주름을 더듬어 본다. 아직은 할 일도 많고 정렬도 남아 있지만 언젠가는 주변의 무거운 짐으로 변해갈 모습을 생각하며 씁쓸하게 웃어 본다.
곱게 곱게 시들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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