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세계로 투영한 이타와 욕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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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세계로 투영한 이타와 욕망에 대하여
  • 박용진 시인
  • 승인 2020.03.2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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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 시인
박용진 시인

 

 

1993년 국내에 개봉된 베를린 천사의 시는 1987년 영화감독인 빔 벤더스와 페터 한트케의 공동 판타지 시나리오 작품으로 영화의 원제는 <Der Himmel über Berlin(베를린 위의 하늘)> 영어로는 <Wings of Desire(욕망의 날개)> 국내 개봉 시에는 <베를린 천사의 시>였다.


130분간의 영상은 세 부분으로 나뉘며 긴 서사시의 영화로 첫 번째 단계에서 천사의 독백 두 번째는 인간의 고뇌를 들여다보는 천사의 소망(욕망) 세 번째는 인간이 된 천사의 행보를 보여준다.


영화 중간에 출연시켜 천사에서 인간으로 탈바꿈한 형사 콜롬보(피터 포크)는 천상계와 인간계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가 되는 내용이 전개된다.


베를린에 내려온 두 천사 다미엘과 가서엘은 인간 세계의 여러 장소 많은 사람을 살피면서 인간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나는 누구인가” “우주의 끝은 어디인가” 원초적인 근원의 물음을 읊으며 인간 고뇌의 시작을 알린다.


천사 다미엘은 “영원은 더 이상 싫다 나도 아픔을 느껴 보고 싶다”며 고독과 직업의 어려움, 오늘 같이 달이 뜨는 밤이면 나는 추락할 것이라며 공포에 휩싸이는 서커스단의 여자 공중 곡예사 마리온을 사랑한다는 마음을 내비친다. 또 다른 천사 가서엘은 “보고 모으고 지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며 만류하지만 영원할 삶을 포기하고 육화한 천사는 길을 잃을지도 모를 노매드를 선택한다. 보상 심리를 제거한 창조주의 상징이다. 유한해도 좋을 물질세계에 투영한 소망은, 국가마다 영화의 제목을 다르게 설정하는 건 왜일까.


먼저 미국에서는 욕망의 날개(Wings of desire)라고 하였다. 고뇌하는 여인 마리온을 향한 측은지심에서 비롯되어 천사의 생을 벗어나 인간화하는 과정을 미국인들의 현실적인 사고와 즉물적인 태도를 물질적 욕망으로 본 것이다. 천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의 대표 격이다. 실재라고 여겨지는 물질세계와 부딪히며 파생하는 천사의 고뇌, 이타심을 엿보게 된다. 갤러리 세인에 초대된 김명리 시인에게 이타심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인가라고 질문을 했다. 이에, “이기심과 마찬가지로 이타심 또한 욕망에서 발원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수많은 비유들이 있으려니와 보다 세밀하고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고뇌하는 인간에 대한 이타심이 욕망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가짐은 허상을 배제한 주변의 많은 시행착오와 오류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왜 베를린 천사의 시詩라고 하였을까.
영화엔 詩의 요소로 가득하다. 시를 쓰려고 시안을 열 땐 어린아이의 눈으로 사물을 거꾸로 뒤집어 보라고 한다. 영화엔 어린이의 언급이 많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질문의 연속이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사과와 빵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아이란 걸 모르고 세상에 대한 주관도 없이 완벽한 인생인 줄 알았다’ 끔찍한 사고 현장과 침실, 도서관에 자주 나타나는 천사는 시인의 외형이다. 천상에서 내려와 양분된 베를린과 2차 대전 후의 공허해진 세상을 떠돌면서 인간을 향한 무한 애정 표시를 독백과 방백으로 표현하는 서사시로 본 것이다.


꿈, 상상, 소망, 자각몽 같은 상념체들은 현실세계에서 비물질로 간주되어 우리에게 불안과 궁금, 신비를 부추기는 존재다. 변화와 소멸을 겪지 않는 천사는 물질세계에서 천사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받는 어린이의 눈에만 보인다.


지팡이를 짚은 늙은 학자의 “내게 힘을 주던 처음처럼”이라며 중얼거림은 매우 인상적이다. 어쩌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인간 사랑에 대한 초심을 잃지 말라는 폭넓은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기심은 물질 사회의 아노미가 낳은 욕망이다. 하지만 천사에게선 극단의 욕망과 이기심을 찾을 수 없다. 보상 심리를 지운 이타심이라면 순수 의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얘기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 된 후 추위에 떨며 커피를 마시는 다미엘은 톨스토이의 작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나오는 하늘에서 죄를 짓고 지상으로 내려온 천사 미하일을 생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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