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의 왕(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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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왕(10)
  • 지옥임 수필가
  • 승인 2020.03.2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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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임 수필가
지옥임 수필가

성종과 함께 가장 왕비를 많이 12명 둔 중종왕
제11대왕 중종은 성종과 어머니 정현왕후 윤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성종의 차남이며 연산군의 이복동생이다. 중종은 박원종 성희안 등이 일으킨 중종반정으로 19세에 왕에 추대되어 즉위하였다. 재위 38년 3개월 왕의 자리를 지켰다.


성종 아버지에 이어 12명의 부인을 둔 아들 중종에게는 3명의 정실부인 외에 9명의 후궁들이 있다. 중종의 1비는 신수근의 딸 단경왕후, 2비는 윤여필의 딸 장경왕후, 3비는 윤지임의 딸 문정왕후다. 중종은 모두 9명의 아들을 낳았다. 장경왕후의 소생(12대왕 인종)과 문정왕후 소생(13대와 명종)을 각각 얻었다.


나머지 후궁들에게서 7명의 아들을 얻었고, 훗날(선조) 덕흥군이 그들 서자 중에서 막내인 일곱째다. 인종과 명종에게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명종이 보위를 이을 사람을 정하지 못하고 죽게 되자, 중종의 후궁인 창빈 안씨의 소생 덕흥군의 아들 선조를 들인다.


중종은 대군 시절(단경왕후) 신씨와 혼인했다. 단경왕후의 아버지가 연산군의 처남인 신수근인 까닭에 중종이 왕위에 오른 지 7일 만에 강제로 이혼을 당한다. 중종임금은 조강지처 신 씨(단경왕후)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으나 신하들의 득세로 인하여 어쩔 수가 없었다. 단경왕후가 바로 7일의 왕비 주인공이 되었다.


중종은 금술이 유난히 좋았던 정비(단경왕후 신씨)를 그리워하여 치마바위 전설을 남긴다. 이혼 후 중종임금은 시간만 나면 경복궁 누각에 올라 단경왕후가 쫓겨나 살고 있는 인왕산 근처를 올려다보았다. 그것을 알고 단경왕후는 바위에다 분홍치마를 펼쳐 놓았다. 그래서 치마바위라는 이름이 남게 된 것이다.


그 당시 단경왕후 신 씨의 친정에는 고모 되는 연산의 비 신 씨와 조카 되는 단경왕후 신 씨 두 분의 왕비가 폐비되었다. 단경왕후는 폐비가 되어 홀로 71세까지 살았다. 그리하여 단경왕후는 사후 친정 묘역 언덕에 묻히게 되었다.


그리고 중종임금의 3번째 부인 악독한 문정왕후가 있다. 문정왕후 이야기는 인종편에서도 했지만 다시 이야기 하자면, 명종이 중종 둘째 아들 문정왕후의 소생이며 인종의 이복동생이다. 명종은 형 인종이 죽자 12세에 왕위에 올랐다. 재위기간 22년, 부인 7명 ,자녀 1남, 순회세자 일찍 죽음.


아들 명종이 12살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오르니 문정왕후 시대가 열린 것이다. 명종이 즉위하자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으로 권력을 틀어쥔다. 명종은 학문을 좋아하고 총명했으나 그악스러운 어머니 문정왕후 때문에 평생을 눈물로 세월을 보내야 했다. 12세에 즉위하여 8년 동안 어머니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았다.


문정왕후는 친아들(명종)이 왕의 자리에 있을 때에도 8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고 권력을 누리면서도 친아들 명종의 종아리를 때리기도 하고 마음먹은 대로 안 되면 명종의 뺨을 때리며 권력을 휘두른 여인이었다. 불교를 열심히 믿었던 문정왕후는 봉은사의 보우스님에게 병조판서 벼슬까지 내리는 각별한 불교 신자였다.


문정왕후의 친동생 윤원형에게는 그 유명한 정난정이라는 첩이 있다. 정난정은 왕실을 드나들며 문정왕후를 조정하기도 했다. 문정왕후와 윤원형의 득세로 조정과 나라의 모든 것이 여유롭지 못한데다가 흉년까지 들어서 임꺽정 같은 도적떼가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관하에서는 임꺽정을 잡으려 하지 않고 의적이라 해서 오히려 도와주었다.


명종은 아들(순회세자) 하나를 두었지만 13세 때 세상을 떠났다. 명종임금은 아들을 잃으면서 마음의 병이 들었다. 그 와중에 외삼촌 윤원형과 외삼촌의 첩 정난정, 그리고 문정왕후의 휘둘림 속에서 힘든 세월을 살았다.


순회 세자가 죽고 2년 뒤 문정왕후도 65세에 세상을 뜬다. 문정왕후가 죽자 윤원형과 정난정은 유배를 가서 자살을 한다. 그제야 조정은 평정을 되찾았으나 그동안 어머니에게 시달린 명종은 병이 들어 어머니 문정왕후가 죽고 2년 뒤 명종도 34세에 세상을 뜬다. 결국 문정왕후는 본인의 꿈과는 달리 중종 곁에 묻히지 못하고 아들 명종과 함께 태릉에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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