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뿌리고 가소, 그라면 나오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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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 뿌리고 가소, 그라면 나오니께.
  • 문현숙 수필가
  • 승인 2020.04.0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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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수필가
문현숙 수필가

 

 

출근하는 남편의 등 뒤로 ‘잘 다녀와’라며 인사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모든 일상이 셔터를 내린 것처럼 중단됐다. 벚꽃이며 목련, 개나리, 라일락에 이르기까지 모든 봄꽃이 자연에 순응하며 피어나는 4월, 우린 여전히 집안에 갇혀 있다.


3월 28일까지 ‘사회적 거리 두기’, 즉 ‘대구 328운동’이 종료되던 날, 남편과 함께 팔공산엘 올랐다. 물론 기존의 대면 방식에서 벗어나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차에 타 있는 상태인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차를 마시고 풍경을 만나고 돌아왔다. 하지만 저녁 뉴스를 통해 흘러나온 “힘드신 줄 알지만, 불특정의 한 감염자가 전파를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감염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살펴 시민 모두가 다시 일주일 더 참아내자”라는 대구시 행정부시장의 당부는 개미지옥에 든 것처럼 우리들을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한다.


연이어 미국에서 귀국한 뒤 코로나 19의 증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4박 5일간 제주도를 여행한 유학생 모녀에게 비난 여론이 별처럼 쏟아져 내렸다. 접촉자 중 수십 명에 이르는 사람들에게 격리조치가 취해졌고 모녀가 묵었던 호텔과 리조트엔 임시휴업이라는 안내문이 세워지면서 다시, 제주도가 온통 시름에 잠겼다.


껴안을수록 더 멀어지는 세상인 듯, 이제야 숨통이 트이나 싶었는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코로나 19발 기차는 종횡무진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겨우 추스른 마음이 다시 소란스럽다.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폐쇄돼 텅 빈 성당 앞에 마련된 특별 제단을 찾아 기도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과 함께 그의 행복 십계명이 떠오른다. “자신의 삶을 살고, 부정적인 태도를 버리고 남을 개종시키려 하지 말고 남의 신념을 존중하라. 조용히 나아가라. 자연을 존중하고 보호하라.” 텅 빈 로마거리를 흰옷을 입고 걷는 교황의 모습이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그려 내는 듯 보인다.


‘쉬 더운 밤이 쉬 식는다.’라고 한다. 기둥과 서까래와 들보가 뼈대를 이루는 나무로 지은 집들은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우두둑 소리를 낸다. 전문가들은 그 소리를 뼈를 맞추는 소리라고 부른다. 바람에 흔들리며 뼈를 맞추어 가는 과정을 겪은 나무집은 조금씩 밀착되며 더욱 튼튼하고 견고한 집으로 거듭난다고 한다. 겪어본 적 없는 일들과 마주하고 있는 요즈음 우린 지금까지 제대로 맞춰지지 않았던 것들을 코로나 19를 통해 단단히 맞춰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밤새 한숨 쉬느라 쉬이 한숨에 들 수 없는 불면의 밤들, 한밤중에 깨어나 앉아 이미 몇 번이나 읽은 ‘아침의 피아노’를 펼쳐 든다. 미학자이며 철학아카데미 대표였던 고 김진명 선생의 첫 산문집이자 유고집으로 암 선고 이후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쏟아부은 정직한 기록이다. 임종 3일 전 섬망이 오기 직전까지 13개월 동안 병상에 앉아 메모장에 썼던 234편의 애도 일기가 담겨 있다. 마음이 소란하거나 답답할 때면 이내 평온해지던 몇 구절을 옮겨 적어본다.


“보리수, 아침 차 안에서 슈베르트를 듣는다. 성문 앞 보리수를 찾아가듯 그날 이후 텅 빈 채 흘러간 한 달의 날들을 돌아본다. 뭔가 부글거리는 것들이 그 안에 있다. 나는 살고 싶은 것이다. 일하고 싶은 것이다. already but not yet(이미, 그러나 아직)/ 슬퍼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아침 베란다에서 거리를 내다본다. 파란색 희망버스가 지나간다. 저 파란 버스는 오늘도 하루 종일 정거장마다 도착하고 떠나고 또 도착할 것이다./ “얼마나 걸어가야 절이 나오나요?”라고 물으면 촌부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자 뿌리고 그냥 가소. 그라면 나오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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