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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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
  • 이종구 수필가
  • 승인 2020.04.09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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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 수필가
이종구 수필가

 

집 앞에 나가면 골목길에서부터 큰 도로까지 눈에 뵈는 게 현수막이다. 각종 상품의 세일 안내, 아파트 분양, 상점 개업에서 행정·질서·법률 안내 등 그 내용도 다양하다. 어떤 것은 삶에 도움도 되지만 대개는 별 도움 없는 것도 많다.


어릴 때였다. 쌀쌀해진 어느 날, 마을 도로 위로 길다란 헝겊에 ‘전국불조심강조기간’ 그리고 날짜와 계광중·천안고등학교라는 내용으로 된 글씨가 씌여진 것을 보았다. 우리 또래들은 그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읽곤 했다. 그것이 현수막이란 것을 한참 후에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데 길을 가로질러 걸려있는 현수막은 어린 우리들에게 신기한 볼거리이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현수막도 크기와 거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길을 가로질러 전봇대 등에 거는 고전적 방법에서부터 수층이나 되는 빌딩의 벽면을 모두 덮은 벽걸이형, 신문지 크기만 한 족자형 등이 도로의 안전시설까지 감싸고 있다.


절기에 따라 수 없이 내걸리는 현수막이 있다. 추석과 설이 되면 여러 의원과 지방자치의 장들이 추석 인사·설 인사용 현수막이 도로를 장식한다. 그런 현수막을 보면서 과연 저 인사말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을까 생각도 해본다.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제3조와 그 외 조항을 보면 현수막도 지방자치단체 장의 허가를 받거나 신고한 후 걸게 되어 있다.


그러나 현수막을 잘 살펴보면 허가나 신고하지 않은 불법 현수막이 많다. 또한 현수막은 반드시 지정된 게시대 걸어야 하는데 걸려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저 가로수나 도로 안전시설, 도로 분리대, 전봇대 등 불법으로 걸 수 있는 장소이면 가리지 않고 건다. 어느 아파트 분양 현수막은 같은 내용의 현수막을 두서 점씩 연이어 걸어 놓기도 하여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서대전 네거리에는 현수막 등 게시물이 없는 청정거리로 지정하고 위반 시 강력한 행정조치(벌금 등)를 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그 결과 산뜻한 도로변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통행이 많은 곳에 걸어 광고의 효율성을 높이고 싶겠지만 잘못 걸면 시민들에게 불편을 준다는 것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간혹, 현수막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횡단보도 위에 걸린 현수막은 늘어지거나, 줄이 끈겨 바람에 날리면서 현수막 양끝의 지지대가 행인에게 부딪치는 경우도 있고, 줄을 풀지 않고 끊어 버린 경우는 바람에 날려 눈을 다치게 하기도 한다. 족자형 현수막도 가끔 행인의 머리에 충격을 주기도 한다. 현수막에 가려져서 횡단보도에서는 차가 오는지 살펴보기도 어렵다. 뿐만 아니라 오래되어 퇴색된 현수막은 미관상으로도 보기 좋지 않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4월 15일 실시된다. 거리마다 자신을 알리려는 출마자들의 현수막이 걸렸다. 네거리의 횡단보도 위에 현수막이 걸렸다. 탄탄하게 잘 묶어 걸면 괜찮은데 느슨해진 줄로 통행에 불편을 준다.


현수막(懸垂幕)의 懸은 ’매달다‘, ’걸다‘의 뜻도 있지만, ’헛되다‘라는 뜻도 있다. 垂는 ’드리우다‘, 늘어뜨리다’라는 뜻 외에 ‘물려주다’라는 뜻도 있다.


선거용 현수막은 출마자의 소속 정당과 정책을 요약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국민의 지지를 받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당하게 걸고 바른 것을 제시하여 “헛된 것을 물려주는” 현수막으로 전락되어 지나는 행인들의 빈축을 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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