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를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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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를 아는가
  • 오희숙 수필가
  • 승인 2016.06.1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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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의 유행도 가지가지다. 지금 같이 빠르게 도는 유행은 따라 잡기 조차 버겁다. 비싼 가전제품도 봄, 가을로 바뀌니 말이다.

내가 처녀 때 유행은 남자는 장발에다 긴 나팔바지를 입고 온 동네를 휩쓰는 것이 유행이었다. 여자들은 가수 윤복희가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깜찍한 모습으로 김포공항에 나타나고부터 시작되었다.

서울부터 시작한 열풍은 온 나라를 휩쓸었다. 경찰이 가위를 들고 남자들 장발과 여자스커트 자르려고 호루라기를 불며 따라오면 있는 힘을 다해 도망가는 시대였다. 여자들 머리는 지바고 머리, 몽키 머리, 거지 커트까지 유행을 했다. 한때 살림하는 것까지 유행했다. 지금 박사님들이 보면 깜짝 기절했을 것이다. 1970년대 예쁜이 비누를 아는가.

짙은 진달래색에 작고 동글게 생긴 값이 싼 향이 좋은 세숫비누가 있었다. 이 비누는 세수보다 그릇 닦는 재료로 더 사용했다. 닦기 어렵다고 놋그릇이 스테인리스에 밀려났을 때다.

결혼할 때 스테인리스 반상기는 어렵게 사갔지만 세트로 된 냄비나 솥은 너무 비싸 사지 못했다. 비누로 알루미늄 냄비나 솥을 스테인리스같이 반짝반짝 빛나게 광을 내는 것이다.

연탄불에 그을린 솥과 냄비를 설거지할 때마다 쇠 수세미에 예쁜이 비누를 묻혀 반짝반짝 닦아 장독 위에 올려놓는다. 춘천서 살 때는 군인가족 여섯 집이 한 집에 세 들어 살았다.

수도가 마당 한 가운데 하나가 있었는데 설거지가 끝나면 장독이 빛나는 냄비 모자를 쓰고 가족사진을 찍는다. 한 번은 새 솥을 사와 일부러 코팅을 벗기느라 간이 뒤집힐 뻔 했다.

지금은 다 유통기한이 있어 버려야 된단다. 스테인리스는 8년이고 알루미늄 같은 것은 얼마를 썼건 코팅이 벗겨지면 바로 버려야 한단다. 구멍만 안 나면 쓰던 우리 시대와는 완전히 다르다. 딸들은 와서 "엄마 버려"하고 버리고 가면 다시 주워다 쓰는 것이 우리들이었다. 그 속에 안 좋은 암을 유발하는 수은과 독이 있어 코팅을 하는 것이다.

깨끗하게 잘하고 산다는 것이 독을 먹고 살았다. 아이들을 지금 같이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지도 않았다.

그저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놀다 해지면 “엄마”하고 들어와서 수도 틀어 입대고 수돗물 마시고 들어왔다. 그래도 건강하게 잘들 자랐다.

요즘 100세 시대에 들어와서 아는것이 참 많아졌다. 티브이와 카톡으로 의학정보가 많아 모두가 학위 없는 박사다.

산 같이 많은 지식 중에 자기에게 맞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피부과에서는 햇빛을 보면 안되니 나갈 때는 썬 크림을 바르고 마스크 하고 모자 꼭 쓰고 나가란다.

정형외과에서는 먹는 것으로는 비타민D를 채울 수가 없으니 살을 내놓고 하루 30분은 햇볕을 쬐어주어야 골다공증 예방이 된단다. 그러니 피부가 약하면 바르고 뼈가 약하면 빛을 쬐고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노년들은 절약하며 사는 것이 지혜인 줄 알고 살았다. 지금 같이 모든 것이 소비를 해야 소통되어 살아간다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시대 따라 살아오면서 젊었을 때를 돌아보았다. 머릿속에서 많은 것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데 밖으로 나오려면 막힌다.

소통이 안 된다. 단어가 나오지 않아 막힐 때 생각의 뇌졸중을 앓는다. 우리 시대는 아무리 좋은 직장이라도 결혼을 하면 그만두고 나와야 되었다.

지난해 서울 갔다가 친구와 국방부 앞을 지나는데 “나 저기 다녔는데 지금 같으면 연금타고 잘 살았을 텐데”했다.

남편에게 순종하고 자식 키우고 고생이라 생각지 않으며 동기간 섬기며 사는 것이 우리 시대 아니었던가. 여자는 독일간호사로 남자는 광부로 사우디로 월남으로 외화벌이의 주인공이었다. 이제는 백세 시대의 주인공이 되어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고심 중이다.

어제 친구에게 들렀다. 서울 딸이 오라고 해서 가니 맛있는 것 잘 먹이고 좋은 옷 사주고 용돈 주면서 하는 말이 “엄마 외할머니만큼 오래 살지마” 하더란다.

2년 전에 102세로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아픈 동안 집안이 말이 아니었단다. "얘, 그런데 큰일 났다. 우리 외할머니도 92세에 돌아가셨거든. 이거 어떡하면 좋니.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잖니?”해서 한바탕 웃었지만 큰 숙제 하나가 남았다. 이 숙제 하나를 잘 해서 잘살다 갔다는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희망사항이다. 신이시여, 내 기도 들어주소서….

 

 

■ 약력
· 대전대학교 평생교육원 수료
· 옥천군평생학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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