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구읍 고택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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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구읍 고택 (4)
  • 전순표 시인 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 승인 2020.04.23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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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표 시인 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전순표 시인 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문정리 춘추민속관, 김규흥 생가

-1760년대 김치신 정언이 건축
문향헌은 옥천읍 문정리 6-1번지 이문거리에 위치하며 일명 춘추민속관이라 불려지는 옥천의 명소다. 조선 후기 금산군수와 무주도호부 부사를 지낸 김술로 부사의 유지에 따라 아들인 김치신 정언이 옥천구읍을 세거지로 정하고 1760년대에 건축하였고 자신의 호를 따서 문향헌(聞香軒)이라 지었다.


문향헌은 안채는 극념재(克念齋)라 하며 현판이 남아있고 극념재는 ㅁ자형 한옥구조이며 팔작 기와지붕이다. 문향헌은 현재 안채와 별채, 곳간, 뒷간 등 49칸이 남아있다.


별채는 상량문에 1856년(철종 7년, 崇禎起源後四丙辰十二月) 12월 증축하였다고 기록되었다. 이후 대한제국에서 1906년 정3품 비서감승을 지냈고 상해 임시정부의 「연통제」 함경북도 책임자였던 오중묵 선생이 1911년 매입하여 살았다. 소유주가 몇 번 바뀐 후에 2000년대 정태희 씨가 사서 춘추민속관이라 명명하였고 이후 중국인 조선족 김00 씨가 매입하였다. 한편 별채의 사랑채는 옛날에 해체하여 옥천읍 매화리 신각휴 전 국회의원 댁 한옥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문향헌을 건축한 정언 김치신의 장남은 군북면 석호리 금강 기슭에 청풍정을 지은 시인 김종경 선생이다. 명월암 기슭의 청풍정은 금강 상류의 기암절벽에 지어진 정자로 상쾌한 바람과 탁 트인 시원한 대청호 풍경이 장관이다. 그의 동생 김종도 시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옥천구읍 8경의 경치를 詩로 지은 ‘유거팔경(幽居八景)’과 많은 시문을 남겼고 문집으로 『청풍세고』가 있다. 김종도 선생이 문향헌에서 바라본 옥천 읍내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유거팔경’은 다음과 같다.


제1경은 구읍 문정리 자기 집 문향헌 뜰 앞에 떨어지는 꽃 –영정전낙화(呤庭前洛花)라 읊었고, 제2경은 구읍 서쪽 서산(골프랜드 부근)에 지는 노을 –영서산낙조 (呤西山落照), 제3경은 관청 누각의 새벽 호각소리 읊었다 -영관루효각(呤官樓曉角), 제4경은 동쪽 나부티 고개의 하얀 달 –영동령호월(呤東嶺晧月), 제5경은 앞 시내의 늘어진 실버들 -영전계세류(呤前溪細柳), 제6경은 농막에 비 개임 -영농서제우(呤農墅霽雨), 제7경은 넓은 문정들과 교동들 들녘에 내려앉은 저녁 안개 –영평교모연(呤平郊暮煙), 제8경은 먼 장령산맥의 산봉우리에서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구름 –영원수숙운(呤遠峀宿雲)이라 읊었다.


문향헌은 김규흥 선생의 생가로 그는 옥천 구읍에 죽향초등학교의 전신인 사립 ‘창명학교’를 1906년에 설립하였다. 이후 중국 1911년 일어난 신해혁명에 참가하고 중국 상해, 천진 등지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이 문향헌은 1901년 1월 23일자 등 3회에 걸쳐 황성신문에 “문향헌은 97칸 한옥으로 85칸 기와집, 12칸은 반기와, 반초가집이다”라는 신문광고가 났었다.


문향헌의 마당에는 수백 년 된 선비를 상징하는 아름드리 회화나무가 있어 고풍스런 운치를 더하며 조선 선비의 기상을 말해주는 듯하다. 문향헌 문정리의 춘추민속관은 현재 옥천군향토유적 제5호이다.


일찍이 일제강점기에 춘추민속관 대문 앞 샘거리 맞은편 부근에 일본인 순사인 안본 주재소장이 집이 있었는데, 그는 늘 긴 칼을 차고 다녔고 동네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면서 누구, 누구를 요즘 본 적이 있느냐고 탐문하며 이곳 춘추민속관을 드나드는 인물들을 감시했다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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