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의 세상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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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의 세상 속으로
  • 김선환 한남대학교 화학과
  • 승인 2020.04.23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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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환 한남대학교 화학과
김선환 한남대학교 화학과

 

코로나가 아니라 트로트가 대유행을 한다. 나이 든 이는 말 할 것 없고 젊은이들도 새롭게 좋아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사실 트로트 뿐 만 아니다. 과거의 다양한 문화가 신선한 눈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다.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는 일이다. 먹고사는 일이 어느 정도 해결되면 과거의 시절이 그리운 것이다. 투박하지만 정감 가는 당시 생활상들이 우리의 감정을 순수하게 정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도시를 떠나 시골 산속에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 것인가. 인적이 별로 없는 산길을 걸으며 흐르는 물을 보면 무슨 생각이 스쳐지나 갈까. 아득히 오래된 기억 속에서 부모의 손에 이끌려 올려다보던 어린 시절의 어느 때이거나 가족과 같이 소풍 갔던 일들이 생각날 수도 있다. 아니면 젊은 시절의 중요한 어느 때 일 수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어려웠던 시절의 고생이 떠올라 가슴 아픈 기억일 수도 있다. 어느 것이든 과거의 기억은 지워지고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세상살이에 묻히게 되어 잊어버린 것이다. 그 기억이 문득 돌아오는 시간은 옛 노래를 듣거나 옛날 것을 모아 놓은 추억의 문화공간이나 과거와 유사한 자연경관을 접하게 될 때이다. 아무리 고생스런 시간이라 할지라도 대부분은 그러한 시절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회고함으로서 마음의 위안을 갖게 된다. 최근에 나이든 이의 주요한 일과 중의 하나는 자식의 자식을 돌보는 일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 모두들 이야기하고 손사래 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 않은 것 같다. 나름 즐거움이 있지만 간직하고 싶어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아주 갓난아이부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돌보는데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의 과거도 같이 돌아보게 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고 당시의 순수한 마음이 가슴을 적셔온다. 세상을 보는 투명한 어린 두 눈으로 온통 의문투성이의 세상을 바라보는 나를 볼 수 있다. 어른이 되었을 때와 비교해서는 맑고 유연하고 순수한 마음의 눈이다. 모든 세상살이가 그때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 시절은 그리움의 대상인 것이다. 이 시간여행을 하는 일은 단지 생각해 본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몇 가지 매개체가 필요하다. 추억을 불러올 그 무엇이 있어야 가능하다. 머리는 생각할 뿐 과거로 가지 않는다. 가슴으로 느끼는 그것이 있어야 한다. 아이를 돌보며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거나 아기나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노래나 동화 동시를 읽어줌으로써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의 탑승이 가능하다. 노래로 본다면 트로트에서 동요나 어린이 노래로 더 깊이 바닥으로 내려가야 한다. 당시 부르던 노래에서 가졌던 정감이 그대로 살아 돌아올 것이다. 동화도 마찬가지다. 동화의 세계는 호기심이 그득한 세상이었으며 단순하고 명쾌한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중에는 알게 되지만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에는 그런 세상이 살아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생각했던 세상을 나이가 든 지금에도 당시 생각대로 살아보고 싶은 충동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암암리에 각 개인의 마음속에 살아남아 그 꿈을 이루고 있는 이들도 많이 있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거나 전원주택생활을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어린 시절 자신이 꿈꾸어왔던 것을 하나씩 실천하는 이들도 주변에 많다. 덧붙여 추억으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면 크레용을 사용해 보는 일을 추천하고 싶다. 아이들처럼 무엇이든 그려 보는 일이다. 도화지에 집도 그리고 꽃과 사람도 그려보고 색칠해 본다면 추억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취미거리가 될 수 있다. 크레용 냄새에 함께 따라오는 그것은 과거의 기억이며 과거의 내 마음이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동시도 아이들만의 것은 아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내가 동시를 읽는 것이다. 읽다 보면 한 번 써 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동시는 아이가 쓰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으로 어른이 쓰는 시이기 때문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그 이유는 자명하다. 우리는 위안이 필요하고 스스로 자기를 위안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험난한 세상 속 왜곡된 내가 아니라 동심 속의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아보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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