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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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선물
  • 김명순 약사
  • 승인 2020.04.23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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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순 약사
김명순 약사

 

“달빛 부서지는 강둑에 홀로 (…) 내 마음 민들레 홀씨 되어 강바람 타고 훨훨(…)” 시적인 이 노래가 유행하던 대학 시절,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가 주는 감성을 오롯이 느낄 수만은 없었다. 민들레의 학명과 약리작용―포공영은 국화과의 민들레 Taraxacum platycarpium H. Dahl.와 흰민들레 T. coreanum Nakai 전초를 건조한 것으로, 소염·건위·이담·이뇨·항균작용이 있어 유종(乳腫)·편도선염·간염·급성기관지염에 효과― 등 암기해야 할 부분이 가사를 흩어 버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홀씨’가 ‘열매’의 오용임을 알게 됐을 땐 노래가 엉키고 가뭄 든 논이 내면에 똬리를 트는 기분마저 느꼈었다. 生藥學 공부가 감성은 메마르게 했어도, 자연은 조물주의 선물로 가득하고 생물들은 모양이나 이름으로도 가치를 드러낸다는 신비로운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풀 한 포기도 존재의 이유가 있음이었다.


일례로 흔히 볼 수 있는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특효약인 ‘아르테미시닌’을 추출해내 1990년대 이후 말라리아 퇴치에 기여한 중국 투유유 교수가, 그 공로로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미 개똥쑥―동의보감·향약집성방에 수록된 淸熱藥―은 한의학에서 학질(말라리아)과 허열 등의 치료에 사용되고 있었다. 수상자도 1600년 전 고대 의학서에서 영감 받은 이 연구 결과는 현대과학과 전통의학의 결합 산물이라고 자평했다. 또한 천수근(악마의 발톱) 뿌리에서 추출한 ‘하르파고사이드’의 항골다공증 효능이 밝혀져 부작용 적은 골다공증·관절염 등의 치료제가 개발됐고, 자생척추관절연구소의 이 논문은 2018년 미국 생약학회의 상을 받았다. 그 외의 다양한 한방약과 건강식품 원료를 보면 자연은 선물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독성 생물의 존재는 우리를 자중하게 만드는데, 이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교훈인 듯하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의학계에 비상이 걸렸음에도 한방병원의 의료지원과 한의사들의 진료 자원(自願)은 묵살돼 버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대구로 모인 자원봉사 한의사들은 거의 생업을 포기하고 집이나 격리시설에 있는 확진자들을 전화 진찰 후, 처방약(규격화된 제약회사의 엑기스제제만)을 하루 2~3백 명 환자들에게 직접 배달하며 열심히 투약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봉사에 대한 기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뿐더러, 국민적 응원하에 고생하는 의료진들과 확연히 다른 처우에도 한의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병원 현장에선 한약을 복용하고 증상이 마스킹 되면 환자 상태 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반입 금지한다면서, 공진단은 받는다니 아이러니하다. 의사들은 한방 침구요법을 모방한 진료를 하면서도, 의학서적 최초로 유네스코 기록 유산에 등재된 〔동의보감〕마저 폄하하며 근본적으로 한의학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AI가 인간의 메타포를 이해 못하고 진화론자들이 창조론을 반박하는 것처럼. 과학적인 진화론도 불완전한 이론이어서 ‘지적 설계론(유사 창조론)’으로 보충돼야 한다는 학설도 있는데, 과연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면 다 틀린 것일까?


현재 기존의 과학과 의학으로도 정복하지 못한 질병들이 많다. 그러므로 신종 질환엔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적합한 치료제도 없이 대증요법만을 시행하는 이 난감한 상황에 양약·한약 병용 투여와 침구치료 등의 다양한 협진은 완치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대구 코로나 확진자들이 한약 복용 후 쾌유된 사례가 많다―한의사들이 꾸준히 봉사할 수 있는 원동력―고 하는데, 개똥쑥의 경우처럼 어떤 한약재엔가 항코로나바이러스 성분이 함유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생각·기억·마음의 존재를 당연시하고 신경과학에서 기억·망각의 메커니즘(핵심효소는 칼시뉴린)도 밝혀낸 것처럼 ‘氣’도 과학적으로 증명될 때가 분명 올 것이다. 화학첨가물 제로와 자연유래 성분의 친환경 상품이 각광받는 요즘, 한의학은 이미 재조명되고 있는 게 아닐까? 과거부터 누적돼 온 한의학적 치료법들을 우리만의 자산으로 인정하고 협진하며 불치에 도전하는 진취적 의료현장이 조성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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